민영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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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문관.
== 탐관오리란 주장에 대한 반박 ==
애비새끼가 조선의 상병신성 증명한 [[임오군란]] 원인을 만든 탐관오리 민겸호다.


[[연좌제]]의 나라 개조선 아니랄까 봐 단순히 탐관오리의 아들이란 이유로 백성들에게 미움받았다.


{{빛과 어둠}}
심지어 [[전봉준]]이 봉기할때 공표한 부패관료 목록에 이새끼 이름 있다.


대한제국 대신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저승에서 응원할테니 모두 독립을 위해 힘내라고 하고 자살했다.
이 탓에 지 친척인 [[민비|민자영]]처럼 타이밍좋게 죽어서 미화된 놈이란 말도 있다...는 ㅅㅂ 개지랄


얘가 쓴 편지에 살기를 바라는 자는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삶을 얻는다고 써있는데 사실 살고 싶었나보다.
세도가문인 여흥민씨란 이유만으로 탐관오리일 거란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조선 왕가가 병신이라고 [[세종대왕]]까지 병신일 거란 개소리랑 동급이다
 
'''민영환은 오히려 대한제국의 진정한 충신이었다.'''
 
백성들한테 미움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탐관오리였을 거란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최고 반례로는 바로 [[김홍집]]이 있다.
 
이분은 심지어 백성들한테 맞아죽었다.
 
아니, 그럼 김홍집은 [[한명회]], [[김자점]], [[이완용]] 뺨치는 조선의 최고 간신이란 말인가?
 
아무튼 민영환은 [[이괄]] 뺨칠 정도로 진급이 엄청나게 빨랐는데, 20대에 호조판서, 병조판서 모두 꿰차고 30대 초에는 형조판서까지 꿰차게 된다.
 
이분은 지금으로 치면 20대~30대 초 나이대인 기재부장관, 국방부장관, 법무부장관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런 요직을 다 차지하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친척이자 온건개화파의 영수였던 [[민영익]]이 정쟁에서 밀려난 이후 그 포지션을 대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애새끼 때부터 정부의 요직 다 해드시며 중앙에서 뺑뺑이 돌았는데, 과연 백성들을 괴롭힐 뭔 껀덕지가 나올진 의문이다.
 
당장 [[동학농민운동]]의 트리거였던 [[조병갑]]만 하더라도 지방의 수령인 고부군수였다.
 
그래도 중앙 통제에서 벗어난 지방고을 수령이어야 뭔가 백성들 괴롭혀서 해먹을 껀덕지가 나온다.
 
근데 상술했듯 민영환은 쪽쪽이 떼고 걸음마할 때부터 이미 중앙 관료가 되어 노예로 구르고 있었다.


참고로 전봉준이 봉기할때 공표한 부패관료 목록에 이새끼 이름 있다. 지 친척인 민자영처럼 타이밍좋게 죽어서 미화된 놈
물론 지 애비도 중앙의 관료이면서 해먹은 케이스긴 하지만... 애초에 그 새낀 뭘 해먹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있잖아?


민비 일가의 주축으로 재평가할 여지도 없다. 나라 조져놓고 자살한게 업적이다.
근데 민영환은 딱히 뭘 해먹었단 기록이 없다.


교과서에 민영환의 자살을 애국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이딴 개새끼는 빨리 뒈지는 게 나라를 위한 길이다.
근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민영환이 탐관오리란 건지;


참고로 이새끼 애비가 조선의 상병신성 증명한 임오군란 원인을 만든 민겸호다.
차라리 애새끼 때부터 요직 다 해드셨다고 세도정치 낙하산인사라고 까는 거면 모를까;
== 자결 ==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저승에서 응원할테니 모두 독립을 위해 힘내라고 하고 자살했다.


ㄴ그가 젊은 시절에 여흥 민씨 척족 중 한 명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가 민씨 세도(勢道) 기간 중 그가 직접 저지른 과오라고 할 만한 점을 지적하기가 어렵고, 전봉준 등 동학 세력이 민영환을 매관매직을 일삼은 부정부패의 우두머리로 지목한 것 또한 그가 민씨 척족의 대표로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지목된 것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민씨 척족은 당시 수구 세력의 대표격으로 알려져 있었던 반면, 민영환이 보여준 행보는 그와는 거리가 먼 개화파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얘가 쓴 편지에 살기를 바라는 자는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삶을 얻는다고 써있는데 사실 살고 싶었나보다.


ㄴ또한 이시기 나라를 망친 것를 사죄한답시고 자살하거나 용서를 구한 고위층은 그가 거의 유일했다
이시기 나라를 망친 것를 사죄한답시고 자살하거나 용서를 구한 고위층은 그가 거의 유일했다

2022년 9월 3일 (토) 17: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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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문관.

탐관오리란 주장에 대한 반박

애비새끼가 조선의 상병신성 증명한 임오군란 원인을 만든 탐관오리 민겸호다.

연좌제의 나라 개조선 아니랄까 봐 단순히 탐관오리의 아들이란 이유로 백성들에게 미움받았다.

심지어 전봉준이 봉기할때 공표한 부패관료 목록에 이새끼 이름 있다.

이 탓에 지 친척인 민자영처럼 타이밍좋게 죽어서 미화된 놈이란 말도 있다...는 ㅅㅂ 개지랄

세도가문인 여흥민씨란 이유만으로 탐관오리일 거란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조선 왕가가 병신이라고 세종대왕까지 병신일 거란 개소리랑 동급이다

민영환은 오히려 대한제국의 진정한 충신이었다.

백성들한테 미움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탐관오리였을 거란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최고 반례로는 바로 김홍집이 있다.

이분은 심지어 백성들한테 맞아죽었다.

아니, 그럼 김홍집은 한명회, 김자점, 이완용 뺨치는 조선의 최고 간신이란 말인가?

아무튼 민영환은 이괄 뺨칠 정도로 진급이 엄청나게 빨랐는데, 20대에 호조판서, 병조판서 모두 꿰차고 30대 초에는 형조판서까지 꿰차게 된다.

이분은 지금으로 치면 20대~30대 초 나이대인 기재부장관, 국방부장관, 법무부장관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런 요직을 다 차지하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친척이자 온건개화파의 영수였던 민영익이 정쟁에서 밀려난 이후 그 포지션을 대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애새끼 때부터 정부의 요직 다 해드시며 중앙에서 뺑뺑이 돌았는데, 과연 백성들을 괴롭힐 뭔 껀덕지가 나올진 의문이다.

당장 동학농민운동의 트리거였던 조병갑만 하더라도 지방의 수령인 고부군수였다.

그래도 중앙 통제에서 벗어난 지방고을 수령이어야 뭔가 백성들 괴롭혀서 해먹을 껀덕지가 나온다.

근데 상술했듯 민영환은 쪽쪽이 떼고 걸음마할 때부터 이미 중앙 관료가 되어 노예로 구르고 있었다.

물론 지 애비도 중앙의 관료이면서 해먹은 케이스긴 하지만... 애초에 그 새낀 뭘 해먹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있잖아?

근데 민영환은 딱히 뭘 해먹었단 기록이 없다.

근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민영환이 탐관오리란 건지;

차라리 애새끼 때부터 요직 다 해드셨다고 세도정치 낙하산인사라고 까는 거면 모를까;

자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저승에서 응원할테니 모두 독립을 위해 힘내라고 하고 자살했다.

얘가 쓴 편지에 살기를 바라는 자는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삶을 얻는다고 써있는데 사실 살고 싶었나보다.

이시기 나라를 망친 것를 사죄한답시고 자살하거나 용서를 구한 고위층은 그가 거의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