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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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씨 明成太皇后 閔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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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소개== | ||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 아내 |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 아내, [[순종]]의 어머니이며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후이다.(추존) | ||
그리고 그 당시 나라를 포함해서 현재의 한국에까지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매국노 | 그리고 그 당시 나라를 포함해서 현재의 한국에까지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매국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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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 ==현실== | ||
같은 마지막 왕비인 마리 앙뚜아네뜨완 정 반대테크를 탄 존나 운좋은 케이스, 동 시대의 청나라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서태후 뺨아리 후려갈기는 여자. | |||
생일 잔치로 포탄값 날려서 청일전쟁 말아먹었다는 서태후는 이여자에 비하면 개념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 |||
이 년은 조선의 수많은 치맛바람을 휘날린 왕아내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막장짓을 저지른 썅년이다. | 이 년은 조선의 수많은 치맛바람을 휘날린 왕아내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막장짓을 저지른 썅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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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가 전해질정도로 이 년의 악행은 그 당시에도 하늘을 찌르고 땅을 갈랐다. | 일화가 전해질정도로 이 년의 악행은 그 당시에도 하늘을 찌르고 땅을 갈랐다. | ||
ㄴ근데 이 출처가 황현의 매천야록이다. 매천야록이란 책 자체는 야사집으로 썰모음집 성격이 강하고, 황현이 민비까의 전형인 양반이라 어느정도 걸러듣긴 해야할것이다. | |||
근데 확실한건 당시 민씨 척족이 고종을 대신해 욕과 어그로는 다 쳐먹고 있었으므로 민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민비 죽었을때 황현처럼 생각한 백성이 한둘이 아니었던건 확실할거다. 아무리 유림이라도 왕을 직접 까진 못하거든. 그러니 전 국민 스포츠로 왕비를 씹어야 제맛이지. | |||
==을미사변== | |||
임오군란때도 디질뻔 했지만 궁녀로 변장해 살아남은 적이 있었다. 민비는 을미사변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탈출을 꾀하엮으나, | |||
낭인들이 조선왕실에서 궁녀로 일한적이 있었던 일본여자를 대동했거나 혹은 현장에 있던 일본인 궁녀가 저 여자가 왕비라고 지목했다고 한다. | |||
그리고 칼로 푹찍을 당하고 석유로 소각되었다. 이 사실은 당시 교관이나 고문관으로 파견되어 있던 러시아인과 미국인등 외국인들이 목격하고 | |||
증언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 |||
==을미의병== | |||
흔히 을미의병은 국모의 원수를 갚자고 일어난걸로 착각들 하기 쉬우나. 을미사변 이후 을미개혁때 단발령이 시행되자 들고일어난 거다. | |||
사실 구한말 의병의 주역들은 유림이 주축이었는데, 유림들이랑 민비랑은 존나게 사이 않좋았다. 위의 매천야록쓴 황현도 이 케이스. | |||
즉 이때당시 의병세력들은 왕비목숨보다 지들 머리카락의 가치가 더 높았던 것이다. 이것만 봐도 다들 민비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수있다. | |||
==다른학설== | ==다른학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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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 민비의 막장행각의 최종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고종이었다. 고종이 절대로 마누라한테 휘둘리던 병신이 아니라는것. 유교가 중심사상이던 헬조센에서는 아무리 왕이라도 애비한테 직접 개기는것이 좋게 보일리가 없었고 애비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고종이 민비와 외척세력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민비의 친척들을 대거 등용한것도 흥선대원군의 측근들에 대항하여 민비의 친척들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양성하려한 계획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래봣자 멍청이 남편 휘둘러 나라말아먹은 썅년에서 나라말아먹은 부부로 바뀌는거지만 | 우선 저 민비의 막장행각의 최종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고종이었다. 고종이 절대로 마누라한테 휘둘리던 병신이 아니라는것. 유교가 중심사상이던 헬조센에서는 아무리 왕이라도 애비한테 직접 개기는것이 좋게 보일리가 없었고 애비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고종이 민비와 외척세력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민비의 친척들을 대거 등용한것도 흥선대원군의 측근들에 대항하여 민비의 친척들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양성하려한 계획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래봣자 멍청이 남편 휘둘러 나라말아먹은 썅년에서 나라말아먹은 부부로 바뀌는거지만 | ||
==그래도 좇본새끼들은 싸가지가 없다== | |||
왕비가 좇같으면 폐출, 서인으로 강등 시키거나 사형때리거나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나라 국왕, 즉 왕비 남편의 고유 권리이다. | |||
남편이 쫓아낼 생각이 없다면 신하들이 신하들도 못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켜 왕비 모가지를 따면 된다. | |||
실재로 양귀비도 호위병들이 반란 일으켜서 목딴 선례가 있다. | |||
당대 좇본새끼들의 행위는 확실히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뜨악 할 정도로 ㅄ 짓이자 싸가지 없는 짓거리로 받아들여졌다. | |||
이를 우아한 한자말로 풀이하면 명백한 내정간섭 행위이다. | |||
물론 이건 이거고 민비가 ㅄ인건 변함이 없긴 하다. | |||
고로 반인반신의 그분과 함께 죽을 타이밍을 기막히게 잘 선정한 예라고 하겠다. | |||
2015년 9월 12일 (토) 20: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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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씨 明成太皇后 閔氏
본명:알수없음
황후마마!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푹!푹!푹! - 좆본 폭력배 데라자키 민비에게 작은 칼침을 꽂으며
소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 아내, 순종의 어머니이며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후이다.(추존)
그리고 그 당시 나라를 포함해서 현재의 한국에까지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매국노
매체에서의 민비
이상하게 희대의 썅년인 민비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나쁜 시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뮤지컬의 민비가 좋게 나온거랑 뮤지컬에서 나온 민비가 마지막에 뒈짖할때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개드립을 처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민비 죽인 좆본 나빠요 하며 좆본은 까지만 이 희대의 썅년 악행은 어느정도 묻히는 감이 있다.
현실
같은 마지막 왕비인 마리 앙뚜아네뜨완 정 반대테크를 탄 존나 운좋은 케이스, 동 시대의 청나라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서태후 뺨아리 후려갈기는 여자.
생일 잔치로 포탄값 날려서 청일전쟁 말아먹었다는 서태후는 이여자에 비하면 개념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이 년은 조선의 수많은 치맛바람을 휘날린 왕아내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막장짓을 저지른 썅년이다.
왕도 그랬지만 이년도 없는 국가살림 지 사치질하는데 몽땅 써먹었고 제사 지낸다고 멀쩡한 쌀가마니를 한강물에 퐁당! 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더욱이 이년만 막장인게 아니라 이 년이 들인 일가친척도 싸그리 막장이라 대한제국이 있었을때는 민씨 일가에서 저지르는 부정부패로 악명높았고
한일합방 이후에는 대부분 친일파가 되어 나라를 팔았다. 물론 민비 일가친척중에는 민영익 같은 개념인도 있었지만 막장이 하도 많아서 아이고 의미없다.
오죽했으면 좆본폭력배랑 그에 협력한 조선인들이 민비에게 칼침을 놔줬을때도 민비가 뒈짖해서 좋아해야할지 아니면 국모가 뒈짖해서 슬퍼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일화가 전해질정도로 이 년의 악행은 그 당시에도 하늘을 찌르고 땅을 갈랐다.
ㄴ근데 이 출처가 황현의 매천야록이다. 매천야록이란 책 자체는 야사집으로 썰모음집 성격이 강하고, 황현이 민비까의 전형인 양반이라 어느정도 걸러듣긴 해야할것이다.
근데 확실한건 당시 민씨 척족이 고종을 대신해 욕과 어그로는 다 쳐먹고 있었으므로 민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민비 죽었을때 황현처럼 생각한 백성이 한둘이 아니었던건 확실할거다. 아무리 유림이라도 왕을 직접 까진 못하거든. 그러니 전 국민 스포츠로 왕비를 씹어야 제맛이지.
을미사변
임오군란때도 디질뻔 했지만 궁녀로 변장해 살아남은 적이 있었다. 민비는 을미사변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탈출을 꾀하엮으나,
낭인들이 조선왕실에서 궁녀로 일한적이 있었던 일본여자를 대동했거나 혹은 현장에 있던 일본인 궁녀가 저 여자가 왕비라고 지목했다고 한다.
그리고 칼로 푹찍을 당하고 석유로 소각되었다. 이 사실은 당시 교관이나 고문관으로 파견되어 있던 러시아인과 미국인등 외국인들이 목격하고
증언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을미의병
흔히 을미의병은 국모의 원수를 갚자고 일어난걸로 착각들 하기 쉬우나. 을미사변 이후 을미개혁때 단발령이 시행되자 들고일어난 거다.
사실 구한말 의병의 주역들은 유림이 주축이었는데, 유림들이랑 민비랑은 존나게 사이 않좋았다. 위의 매천야록쓴 황현도 이 케이스.
즉 이때당시 의병세력들은 왕비목숨보다 지들 머리카락의 가치가 더 높았던 것이다. 이것만 봐도 다들 민비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수있다.
다른학설
최근에는 이년이 썅년이 아니라 고종이 흑막이었다는 설도 있다. 민비가 외척들을 등용시키고 시아비랑 개싸움을 벌인것도 다 고종의 계획대로라는것
우선 저 민비의 막장행각의 최종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고종이었다. 고종이 절대로 마누라한테 휘둘리던 병신이 아니라는것. 유교가 중심사상이던 헬조센에서는 아무리 왕이라도 애비한테 직접 개기는것이 좋게 보일리가 없었고 애비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고종이 민비와 외척세력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민비의 친척들을 대거 등용한것도 흥선대원군의 측근들에 대항하여 민비의 친척들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양성하려한 계획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래봣자 멍청이 남편 휘둘러 나라말아먹은 썅년에서 나라말아먹은 부부로 바뀌는거지만
그래도 좇본새끼들은 싸가지가 없다
왕비가 좇같으면 폐출, 서인으로 강등 시키거나 사형때리거나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나라 국왕, 즉 왕비 남편의 고유 권리이다.
남편이 쫓아낼 생각이 없다면 신하들이 신하들도 못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켜 왕비 모가지를 따면 된다. 실재로 양귀비도 호위병들이 반란 일으켜서 목딴 선례가 있다.
당대 좇본새끼들의 행위는 확실히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뜨악 할 정도로 ㅄ 짓이자 싸가지 없는 짓거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우아한 한자말로 풀이하면 명백한 내정간섭 행위이다.
물론 이건 이거고 민비가 ㅄ인건 변함이 없긴 하다. 고로 반인반신의 그분과 함께 죽을 타이밍을 기막히게 잘 선정한 예라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