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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시대에는 수도가 난징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던 [[위안스카이]]의 반대로 인하여 수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1928년 [[중국 국민당]]의 북벌로 인하여 수도는 그대로 난징으로 간다. 그리고 이 시기에 베이징은 베이핑({{Lang|zh|北平}})으로 개칭된다. |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시대에는 수도가 난징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던 [[위안스카이]]의 반대로 인하여 수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1928년 [[중국 국민당]]의 북벌로 인하여 수도는 그대로 난징으로 간다. 그리고 이 시기에 베이징은 베이핑({{Lang|zh|北平}})으로 개칭된다. | ||
중일전쟁시기에는 일본군이 점령하였으며, 이후 도시 이름을 베이징으로 환원한 뒤에 이 곳에 중화민국임시정부({{Lang|ja|中華民國臨時政府}})라는 괴뢰정권을 수립시킨다. 그러다가 중화민국이 다시 수복한 이후 베이핑으로 다시 개칭된다. | 중일전쟁시기에는 일본군이 점령하였으며, 이후 도시 이름을 베이징으로 환원한 뒤에 이 곳에 중화민국임시정부({{Lang|ja|中華民國臨時政府}})라는 괴뢰정권을 수립시킨다.<ref>그리고 이 정부는 후에 중화민국남경국민정부({{Lang|ja|中華民國南京國民政府}}), 일명 왕징웨이 정권이라는 일본 괴뢰국 산하로 편입되어 사라진다.</ref> 그러다가 중화민국이 다시 수복한 이후 베이핑으로 다시 개칭된다. | ||
[[중화인민공화국]]의 점령 이후에는 이 곳의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으며, 이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Lang|zh|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를 통하여 베이징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 결정된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점령 이후에는 이 곳의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으며, 이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Lang|zh|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를 통하여 베이징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 결정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