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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이후 사리원읍이 [[사리원시]]로 승격되면서 13면을 관할하게 | [[8.15 광복]]이후 사리원읍이 [[사리원시]]로 승격되면서 13면을 관할하게 되고 [[소련군정]]과 [[북괴]]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하여 서종면, 초와면, 덕재면, 쌍산면, 기천면, 영천면 2개리, 문정면 태봉리가 [[재령군]] 삼강면 4개리, 은룡면 4개리에서 은파군이 분리되었다. | ||
==경제== | ==경제== | ||
2019년 8월 24일 (토) 14:28 판
| 자치시 | 해주시 · 사리원시 · 송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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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군 | 벽성군 · 연백군 · 금천군 · 평산군 · 신계군 · 장연군 · 송화군 · 은율군 · 안악군 · 신천군 재령군 · 황주군 · 봉산군 · 서흥군 · 수안군 · 곡산군 · 옹진군 | |
| 참고 |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밑줄: 도청소재지 | |
봉산탈춤에서 봉산이 여기다.
서북쪽에 큰 평야가 하나 있다.
역사
지탑리, 송산리, 무정리 주성(主城)등지에서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중에서 규모가 쩌는건 지탑리였다.
이후 청동기시대에도 지탑리, 송산리등지에선 청동기시대 부락이 형성되었고 고조선시기 주요 부락이 되었다. 고조선이 무너진 뒤 지탑리, 토성내동, 구룡리에선 낙랑군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중 지탑리토성이나 사리원시 당토성이 대방군의 소재지였던 대방현(帶方縣)이 존재했다.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함락되면서 고구려의 땅이 되었다. 고구려에선 조파의(租坡衣)라고 불렸고 고구려는 동선면 선령리일대에 휴류성(鵂鶹城)을 쌓고 그 일대에 휴암군(鵂巖郡)을 세웠다. 이시 유적으론 대청리 고분군이 있다. 고구려 멸망이후 762년 5월 신라가 휴류성을 다시 쌓아 군을 복구했고 경덕왕식 한자명으로 서암군(棲巖郡)이라 불렸다.
고려초기 봉주(鳳州)로 승격되었다. 995년 방어사가 파견되었으나 현종초기 방어사가 폐지되고 황주목의 속주가 되었다. 충렬왕시기 지봉양군사(知鳳陽郡事)로 고쳤다가 후에 봉주로 바뀌었다. 1413년 州를 山, 川등으로 바꾸는 지명개편에 따라 봉산군이 되었다.
1523년, 전염병때문에 백운산 아래에 있는 지금의 봉산읍으로 치소를 옮겼다. 임진왜란시기 의병장 김만수가 봉산지역 의병을 지휘하며 좆본군의 임진강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참전하기도 했다. 15~19세기까지 황해도지역 백자생산의 중심지였다.
조선후기 이지역 장시를 기점으로 봉산탈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사리원면이 개발되면서 좆망행을 탔다.
8.15 광복이후 사리원읍이 사리원시로 승격되면서 13면을 관할하게 되고 소련군정과 북괴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하여 서종면, 초와면, 덕재면, 쌍산면, 기천면, 영천면 2개리, 문정면 태봉리가 재령군 삼강면 4개리, 은룡면 4개리에서 은파군이 분리되었다.
경제
서북쪽평야외에 동남쪽에도 평야가 큰게 놓여져있으며, 재령강과 은파천같은 큰강이 흐르기 때문에 농업이 발달했다. 특히 이근방 서흥, 황주, 봉산에선 밀이 재배됬다고 한다.
아웃풋
- 주시경
- 이덕기: 지역 유지
- 파평윤씨 원래 종친회 머장. 북괴땜에 월남해서 지금 고양의 한 아파트에 거주중이라고 한다.
- 김석황
- 강명구
- 김정호
통일이후
| 이 문서는 예토전생했습니다! 이 문서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오랫동안 사망했다가 최근 다시 살아났습니다! ???: 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
상기한 대로 밀, 과일 같은 농업+물류업으로 국민들 등쳐먹기+경의선 버프로 통일 초기 꽤나 잘나갈 것이다. 철스퍼거의 성난 불방망이를 재워야 한다느 것이 문제지만........
진짜 입지조건이 좋아서 토건충들또한 미쳐날뛸 것이다. 그래서 땅값이 고속상승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