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토론}} | {{다른뜻|[[부여군]]}}{{토론}}{{혐오|[[중화인민공화국|{{색|red|침략근성에 목이말라 지네역사로 강제편입시켜버린 좆짱퀴벌레새끼들}}]], [[선비족|{{색|red|학살하고 5만가까이나 되는 자국민을 강제이주시킨 오랑캐새끼들}}]]|이문서에서 다루는 나라}} | ||
{{ | |||
{{국가 정보 | 추가사진 = 초기 삼한의 형성 2.png | 국가명 = 부여(扶餘) | 영어국가명 = Buyeo Kingdom | 글씨색상코드 = #000000 | 배경색상코드 = #f6e63b | 수도 = 부여성(扶餘城) | 대륙 = [[동북아시아]] | 체제 = 연맹 왕국 | 언어 = 고대 부여어 | 인종 = 한민족(韓民族) | 종교 = 무속 신앙 }} | {{국가 정보 | 추가사진 = 초기 삼한의 형성 2.png | 국가명 = 부여(扶餘) | 영어국가명 = Buyeo Kingdom | 글씨색상코드 = #000000 | 배경색상코드 = #f6e63b | 수도 = 부여성(扶餘城) | 대륙 = [[동북아시아]] | 체제 = 연맹 왕국 | 언어 = 고대 부여어 | 인종 = 한민족(韓民族) | 종교 = 무속 신앙 }} | ||
2018년 6월 21일 (목) 16:52 판
이 틀을 보고도 계속 남아있다가 이문서에서 다루는 나라에게 살해당해도 디시위키에서는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 부여(扶餘) Buyeo Kingdom | |
| 기본 정보 | |
|---|---|
| 수도 | 부여성(扶餘城) |
| 대륙 | 동북아시아 |
| 인종 | 한민족(韓民族) |
| 추가 정보 | |
| 체제 | 연맹 왕국 |
| 언어 | 고대 부여어 |
| 종교 | 무속 신앙 |
| 한국사의 시대구분 | ||||
|---|---|---|---|---|
|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진 · 주호 · 우산 |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우산 두막루 |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 탐라 · 소고구려 · 소백제 · 보덕국
|
후삼국시대 신라 · 발해 태봉 · 후백제 (반란세력) |
| 통일왕조 시대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대한광복군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 |
오늘날 만주[1]와 한반도 동북부 (함경북도)[2] 부근에 존재하였던 고대 연맹 왕국 혹은, 만주 지방의 북부여와 두만강 유역의 동부여를 걸쳐서 부르는 말이다. 백제와 고구려는 부여에서 기원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훗날 삼국 시대 때 백제가 잠시 남부여라고 칭한 적도 있다.
수도는 길림시 용담산성에 두었다가 장춘의 농안으로 수도를 옮겼다. 초기 부여의 무덤군인 유수노하심유적과의 거리는 용담산성쪽이 더 가깝다.
부여족은 일찍이부터 만주에 정착해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 신분계급은 왕과 그 아래에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등의 4가(四加)와 대사(大使), 사자(使者) 와 같은 지배층, 그 밑에 하호(下戶)라고 불리던 농노와 노예로 구성된 피지배 계급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은나라의 역법인 은력(殷曆)을 사용하며 궁궐이나 성책, 감옥, 창고 등의 발달된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4가(四加)는 국왕의 통치을 받으나, 각기 소속의 호족과 하호들을 통치하여 영주와 영읍과 같은 관계를 가졌다. 부여는 집집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백제 왕족이 사용하는 부여씨라는 성씨가 있었는데,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씨다. 일본으로 넘어가서 당시 일본 수장의 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일본의 수장이 되었다. 즉 부여씨는 백제가 망한 후에 일본으로 ㅌㅌ해서 지금의 일본 일왕가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진무일왕'이라고 주장한다.)
부여씨는 부여 서씨로 계승되었다.
주인님이 죽으면 주인님의 노예를 죽여 같이 묻는 풍습이 있었다. (순장)
기록이 남아있는게 많지 않아서 인지도는 시망수준이지만 왕년에는 잘나가던 나라였다. 당장 고구려부터가 부여에서 따까리들이 튀어나온 얘들이었고 고구려 대무신왕때 부여랑 맞짱떠서 왕 모가지를 짤랐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고구려가 졌다고 나올 정도로 국력차이가 컷으며 이 국력차이는 꽤 오랬동안 유지되었다. 심지어 한나라한테도 개겨볼 정도로 강했었으나 5호16국시대의 혼란기의 와중에 여러 나라들에게 털리면서 찐따국가가 전락해버린다. 참고로 이때 본진이었던 길림이나 대짱깨무역루트로 쓰인 쓰핑+철령지역을 고구려한테 상납했다.
사실 고구려도 고국원왕때 털리고 겨우 살아남은건 똑같았지만 이후에 부국강병을 위해 개혁하려는 노오력을 해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때의 전성기의 기반을 닦았지만 부여는 그러지 못한걸 보면 윗대가리들이 대국적이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라가 멸망할 뻔한걸 고구려의 속국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명맥은 유지하지만 장수왕의 손자인 문자명왕때 선비족의 침략을 받아서 땅을 다 뺏기고 고구려에 투항하여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도 따져보면 500여년 이상은 유지되었던 나라니 생각보다는 오래 해먹었다.
선비족들한테 본진 개털리고 나서 5만여명이 요서로 압송당했는데, 이 사람들이 차오양 시 베이퍄오에 있는 라마동에 정착촌을 만들어 살면서 대규모 무덤군을 만들었다. 여기서 나온 인골들 가지고 부여인은 한민족의 조상이란 팩트가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