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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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태사공서에 집중하며 한무제도 까는 글도 썼지만, 무제는 아버지의 업을 고자까지 되가면서 쓰는 사마천을 죽이진 않았다. | 그렇기에 태사공서에 집중하며 한무제도 까는 글도 썼지만, 무제는 아버지의 업을 고자까지 되가면서 쓰는 사마천을 죽이진 않았다. | ||
==최후== | == 최후 == | ||
사마천의 최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노환으로 죽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효무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빡친 효무제에게 처형당했다는 설이다. 존나 아프게 고자가 되어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 첫 번째 설은 설득력이 있어보이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두 번째인 처형설에는 물증이 존재하는데, 후한 초기에 반고가 편찬한 《한서》에 있는 「사마천 열전」에 '그 재능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고통을 당했으니 그 최후가 평안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여기에 '처형당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최후가 영 좋지 못한 곳처럼 좋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리고 후한서에서 언급된 이야기에 따르면, 사기는 전한 시기에 이미 여러 차례 검열을 당해 내용이 여러 부분 지워졌으며, 후한 시기에도 사기는 금서에 속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중국학계에서는 그가 처형당했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 |||
물론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건 맞으니 상상은 자유다. | |||
상상은 자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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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3일 (목) 07:2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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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중국의 역사서인 태사공서, 즉 사기를 만든 사람이다. 물론 사기꾼의 사기가 아니다.
뿌랄을 바쳐 똥양권 최고의 역사서를 완성해낸 위대한 고자이자 연금술사. 고자되기의 선구자.
일명, 싹둑천되시겠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남자다웠던 상남자다.
태사공서의 집필을 약속하다.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담은 역사가였다. 그러나 한나라 효무제(한 무제) 가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할 때에 자기를 빼놓고 해서 멘탈이 나가고 병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웬 좆목질에 안 끼워줬다고 죽나 하는 생각 드는 사람 있을 거 같은데, 봉선 의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제사이기도 하고 여기에 참여 못하면 역사가로서 기록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보면 멘탈이 나갈 만한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사마담은 죽으면서 아들인 사마천에게 자신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역사서를 대신 완성해줄 것을 당부하고 죽게 되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사마천에겐 존나게 고통스러운 인생의 시작임을 사마천은 알았을까?
곶난
사마천은 아버지의 업을 따라 태사공서를 집필하였으나 무제의 이릉에 대한 부당한 처우[1]에 분노하여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를 산다.
무제는 사마천에게 세 가지 선택권을 주는데, 하나는 궁형과 하나는 사형 그리고 하나는 돈내고 째기였다.
하지만 가난한 문사철 집안이였던 사마천은 돈을 낼수도 없었고, 죽자니 아버지의 당부도 못지키는 딜레마에 빠지고
결국 궁형을 받아들인다. 이게 말로만 고추 자르는 거지 옛날에 고추를 잘리는 것은 곧 죽음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죽을래, (자지)자를래?"
"(ㅅㅂ 역사서 써야 되니까...)궁형이요...."
게다가 궁형을 받아들이면 짐승의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는데, 임안의 편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죽고싶지만 죽을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태사공서를 완성하다.
뿌랄을 바쳐 똥양권 최고의 역사서를 완성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사마천급의 대우를 받는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페르시아군 400만 드립을 아무렇지도 않게 친걸보면 동서양최고라해도 좋다.
더군다나 이제 사마천은 잃을 것이 없는 완벽한 객관적인 서술자였다.
그렇기에 태사공서에 집중하며 한무제도 까는 글도 썼지만, 무제는 아버지의 업을 고자까지 되가면서 쓰는 사마천을 죽이진 않았다.
최후
사마천의 최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노환으로 죽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효무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빡친 효무제에게 처형당했다는 설이다. 존나 아프게 고자가 되어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 첫 번째 설은 설득력이 있어보이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두 번째인 처형설에는 물증이 존재하는데, 후한 초기에 반고가 편찬한 《한서》에 있는 「사마천 열전」에 '그 재능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고통을 당했으니 그 최후가 평안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여기에 '처형당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최후가 영 좋지 못한 곳처럼 좋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리고 후한서에서 언급된 이야기에 따르면, 사기는 전한 시기에 이미 여러 차례 검열을 당해 내용이 여러 부분 지워졌으며, 후한 시기에도 사기는 금서에 속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중국학계에서는 그가 처형당했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건 맞으니 상상은 자유다.
평가
우리가 소위 말하는 역사는 이 사람이 만든 말이나 다름없다. 궁형에 처해서 죽고싶었어도 죽지않고
역사서를 저술하는 모습은 정말 세계에서 본 받을만한 인물이다.
고추 없다고 공산당 포기한 심영 따위랑은 비교를 하면 안된다.
- ↑ 싸움에서 패배한 진짜 졸장인 이광리란 놈은 무제 애첩의 오라비란 이유로 슬쩍 넘어가고, 적과 싸우다 중과부적 상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항복한 이릉한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