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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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황면 === | === 차황면 === | ||
=== 신등면 === | === 신등면 === | ||
'''新等面''' | |||
면적 56.90㎢. 면 소재지는 단계리. | |||
단계리(丹溪里), 양전리(陽前里), 가술리(可述里), 간공리(艮公里), 사정리(射亭里), 평지리(坪地里), 장천(長川里), 율현리(栗峴里), 모례리(慕禮里)의 9개리를 관할한다. | |||
단성현에 통폐합되었던 단계현(丹溪縣)의 옛 소재지이다. 단계현은 본래 [[신라]] 적촌현(赤村縣)이었는데 [[경덕왕]]때 단읍현(丹邑縣)으로 개명되어 궐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현종 (고려)|현종]]시기 [[합천군|합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공양왕]]때 現 단성군의 전신인 강성현의 속현이 되었고 [[세종대왕]]이 이 2개현을 통폐합하면서 단성현이 만들어졌다. | |||
그렇게 수백년이 흐르고 그 자리에 단성군 신등면(現 간공, 단계, 사정, 양전), 법물면(法勿面, 現 가술, 모례, 율현, 장천, 평지)이 만들어졌고 부군면 통폐합때 법물면이 신등면에 통폐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철수리와 상법리가 차황면으로 이관되었다. | |||
면 동남단에 갈미봉(葛味峰, 363m)이 있고 서부에 정수산, 천암산이 있으며 단계천과 면 동부를 남류하는 사정천이 단계리에서 합류, 그 지역에 소규모 평야가 만들어졌다. | |||
모례리에 정추암, 율현리에 율곡사, 평지리에 이락정, 단계리 단계석조여래좌상, 두곡서원, 장천리에 고려+조선시대 도요지가 있다. | |||
=== 생비량면 === | === 생비량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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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道里), 도전리(道田里), 화현리(禾峴里), 제보리(諸寶里), 가계리(可溪里)의 5개리를 관할한다. | 도리(道里), 도전리(道田里), 화현리(禾峴里), 제보리(諸寶里), 가계리(可溪里)의 5개리를 관할한다. | ||
본래 단성군 생비량면에 속했는데, 부군면 통폐합 때 삼가군 아곡면(阿谷面) 제보동(諸寶洞)과 면전체를 5개리로 개편되어 산청군 생비량면이 되었다. 1944년 면사무소를 가계리에서 도리로 옮겨졌다. 면 북쪽에 집현산(集賢山, 572m)과 면 남쪽의 갈마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양천강이 면 중앙을 지난다. | 본래 도산면에 속했던 도전리를 제외하면 단성군 생비량면에 속했는데, 부군면 통폐합 때 삼가군 아곡면(阿谷面) 제보동(諸寶洞)과 면전체를 5개리로 개편되어 산청군 생비량면이 되었다. 1944년 면사무소를 가계리에서 도리로 옮겨졌다. 면 북쪽에 집현산(集賢山, 572m)과 면 남쪽의 갈마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양천강이 면 중앙을 지난다. | ||
가계리에 고인돌과 [[올드보이]]가 촬영된 경남간호고등학교(舊 송계고등학교), 도전리 입암산(笠巖山)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도전리에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군상이 있다. | 가계리에 고인돌과 [[올드보이]]가 촬영된 경남간호고등학교(舊 송계고등학교), 도전리 입암산(笠巖山)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도전리에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군상이 있다. | ||
=== 신안면 === | === 신안면 === | ||
'''新安面''' | |||
면적 72.16㎢. 면 소재지는 하정리. | |||
하정리(下丁里), 신기리(新基里), 청현리(靑峴里), 문대리(文대里), 장죽리(長竹里), 소이리(所耳里), 외고리(外古里), 갈전리(葛田里), 안봉리(安峰里), 외송리(外松里), 신안리(新安里), 중촌리(中村里)의 12개리를 관할한다. | |||
부군면 통폐합때 단성군 북동면(北洞面)의 12개리가 갈전, 신안, 안봉, 외송, 중촌의 5개리로, 단성군 도산면(都山面)이 도전리가 생비량면에 넘어가고 단성군 오동면(悟洞面, 現 신기, 청현, 하정리)이 통폐합되었다. 1928년 4월 1일 이렇게 개편된 도산면과 북동면이 신안면으로 합병되었다. 면 서북부에 둔철산, 남부에 백마산이 있으며 양천이 면 동부를 흐르고 경호강이 서부 경계를 흘러 하천유역에 평지가 만들어졌다. | |||
하정리에 적벽산, 안봉리에 수월폭포, 적병강 절벽위에 있던 백마산성, 신안리에 도천서원신안사상재, 백마사노산성자, [[문익점]]묘, 신계서원제기, 중촌리에 가야 + 통일신라시기 고분군, | |||
=== 단성면 === | === 단성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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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城面''' | |||
면적 108.65㎢. 면 소재지는 성내리. | |||
성내리(城內里), 강루리(江樓里), 방목리(放牧里), 청계리(淸溪里), 운리(雲里), 입석리(立石里)·남사리(南沙里), 사월리(沙月里), 묵곡리(默谷里), 소남리(召南里), 관정리(官亭里)·창촌리(倉村里), 길리(吉里), 호리(虎里), 당산리(堂山里), 백운리(白雲里), 자양리(紫陽里)의 17개리를 관할한다. | |||
부군면 통폐합때 폐지된 단성군의 중심지....긴 한데 본래 강성현(江城縣)이 있던 곳이다. 강성현은 신라 때 궐지군(闕支郡)이라 불렸는데 [[경덕왕]]때 궐성군(闕城郡)으로 개명되고 단읍현, 산음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때 강성현으로 격하되었다가 훗날 군이 되었는데 [[현종 (고려)|현종]]치세에 [[진주시|진주]]의 속군이 되었다. 이후 [[공민왕]]때 감무가 파견되었다. [[문익점]]이 강성군 출신이지만 무덤이 단계현에 있다는게 코미디. | |||
[조선]]건국직후 1399년, [[거제도]]의 명진현(溟珍縣)이 [[왜구]]를 피해 강성현으로 교치되면서 진성현(珍城縣)이 되었지만 [[세종대왕]]이 왜구를 토벌하고 거제군을 복구하면서 명진은 거제로 예속되었고 강성현은 단계현과 짬뽕되어 단성현이 되었다. | |||
[[부군면 통폐합]]때 단성군 현내면(縣內面, 現 강누리, 방목리, 성내리, 청계리), 원당면(元堂面, 現 입석리, 묵곡리, 사월리), 산청군 파지면(巴只面, 現 관정리, 소남리), 사월면(沙月面, 現 길리, 남사리, 운리), 백곡면(柏谷面, 現 당산리, 호리), 금만면(金萬面, 現 백운리, 자양리, 창촌리)가 통폐합되면서 단성면이 만들어졌다. | |||
면 남부에 망해봉(望海峰, 257m), 면 북단에 웅석봉과 감투봉이 있으며 중앙에 석대산(石岱山, 535m)이 있다. 면 동쪽 경계를 따라 경호강이 남류, 중앙에 남강의 상류가 흐르며 서부에는 덕천강 상류가 남류한다. 묵곡리에 강변유원지, [[성철 스님]]이 태어난 겁외사, 강루리에 단성향교, 사월리에 변화시배지 + 배산서원, 운리 단속사터가 있다. | |||
=== 시천면 === | === 시천면 === | ||
=== 삼장면 === | === 삼장면 === | ||
=== 금서면 === | === 금서면 === | ||
=== 생초면 === | === 생초면 === | ||
==아웃풋== | ==아웃풋== | ||
*[[문익점]] | *[[문익점]] | ||
2019년 10월 17일 (목) 12:29 판
| 경상도의 광역자치단체 | ||||
|---|---|---|---|---|
대구광역시 |
부산광역시 |
울산광역시 |
경상북도 |
경상남도 |
|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
어쩌면 경남에서도 인구가 가장 적을지도 모르는 동네로 3만9천명밖에 안된다. 정말 답없는 깡촌. 철도가 안지나간다. 국도도 3가지밖에없다.
큰 사거리는 하나고, 신호등도 그 사거리에만 있지 다른 보도는 전부 횡단보도 뿐이다...
그런 주제에 1914년이전에는 산청군, 단성군으로 나뉘던 동네였고, 고려이전까진 현이 3개나 되는 곳이었다. 친히 진주시에게 통폐합되는게 답인 깡촌
ㄴ진주는 차라리 사천을 먹으려고하지, 산청은 아웃오브안중이다.
ㄴ그정도로 답이없는 동네였냐. 몰랐네
ㄴ진주랑 통합하면 면적 ㅎㄷㄷ해지겠네
ㄴ 경남에서 가장 사람 없는 곳은 의령이다
깡촌이지만 아웃풋이 깡촌답지않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자개표기가 고장나서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개표하는 막노동을 해야 했다. 여윽시 깡촌.
연혁
본래 산청은 산청읍지역의 산음현(山陰縣), 舊단성군지역의 단성현(丹城縣), 그리고 신등면 단계리의 단계현(丹溪縣)이 있었다. 이중 신라이후는 산음현지역 연혁만 따로 서술한다. ㅎ
단성면 강루리, 군내 각처에서 선돌과 고인돌, 그리고 청동기시대 마을이 발견되었다. 이후 삼국시대엔 가야계열 부족국가들이 뜨문뜨문 존재했다. 이때 흔적이 생초면 어서리, 신안면 중촌리의 고분군. 이후 머가야가 신라를 정ㅋ벅ㅋ하면서 신라땅이 되었고 지품천현(知品川縣)이 되었다. 경덕왕시기 산음현(山陰縣)으로 개명되어 단성에서 설치도니 궐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1018년 합주로 내속되었다. 1390년에 단성지역에 설치되었던 강성군의 영현으로 복귀, 산음과 강성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1413년 산음현이 합주에서 독립하면서 현감이 파견되었다. 1599년 단성현이 폐지되었다가 일부가 산음현에 편입되었다가 1613년 원상복귀되었다.
영조시기인 1767년, 송지명이란 페도새끼가 종단이라는 이름의 7살짜리 여자아이랑 결혼해서 애를 낳아 '시발 이거 페도필리아냐 이거?'라고 해서 조정이 발칵뒤집어졌다. 이 때문에 음기를 막아야 한다고 산음현에서 산청현(山淸縣)으로 개명되었다. [1]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통폐합때 단성군이 흡수되었다. 1917년 10월 1일 군월면, 지수면을 합하여 산청면을 만들었고 1928년 4월 1일 도산면과 북동면이 신안면으로 합해졌다.
읍면
산청읍
오부면
차황면
신등면
新等面
면적 56.90㎢. 면 소재지는 단계리.
단계리(丹溪里), 양전리(陽前里), 가술리(可述里), 간공리(艮公里), 사정리(射亭里), 평지리(坪地里), 장천(長川里), 율현리(栗峴里), 모례리(慕禮里)의 9개리를 관할한다.
단성현에 통폐합되었던 단계현(丹溪縣)의 옛 소재지이다. 단계현은 본래 신라 적촌현(赤村縣)이었는데 경덕왕때 단읍현(丹邑縣)으로 개명되어 궐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현종시기 합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공양왕때 現 단성군의 전신인 강성현의 속현이 되었고 세종대왕이 이 2개현을 통폐합하면서 단성현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수백년이 흐르고 그 자리에 단성군 신등면(現 간공, 단계, 사정, 양전), 법물면(法勿面, 現 가술, 모례, 율현, 장천, 평지)이 만들어졌고 부군면 통폐합때 법물면이 신등면에 통폐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철수리와 상법리가 차황면으로 이관되었다.
면 동남단에 갈미봉(葛味峰, 363m)이 있고 서부에 정수산, 천암산이 있으며 단계천과 면 동부를 남류하는 사정천이 단계리에서 합류, 그 지역에 소규모 평야가 만들어졌다.
모례리에 정추암, 율현리에 율곡사, 평지리에 이락정, 단계리 단계석조여래좌상, 두곡서원, 장천리에 고려+조선시대 도요지가 있다.
생비량면
生比良面
면적 44.0㎢. 면 소재지는 도리.
도리(道里), 도전리(道田里), 화현리(禾峴里), 제보리(諸寶里), 가계리(可溪里)의 5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도산면에 속했던 도전리를 제외하면 단성군 생비량면에 속했는데, 부군면 통폐합 때 삼가군 아곡면(阿谷面) 제보동(諸寶洞)과 면전체를 5개리로 개편되어 산청군 생비량면이 되었다. 1944년 면사무소를 가계리에서 도리로 옮겨졌다. 면 북쪽에 집현산(集賢山, 572m)과 면 남쪽의 갈마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양천강이 면 중앙을 지난다.
가계리에 고인돌과 올드보이가 촬영된 경남간호고등학교(舊 송계고등학교), 도전리 입암산(笠巖山)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도전리에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군상이 있다.
신안면
新安面
면적 72.16㎢. 면 소재지는 하정리.
하정리(下丁里), 신기리(新基里), 청현리(靑峴里), 문대리(文대里), 장죽리(長竹里), 소이리(所耳里), 외고리(外古里), 갈전리(葛田里), 안봉리(安峰里), 외송리(外松里), 신안리(新安里), 중촌리(中村里)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부군면 통폐합때 단성군 북동면(北洞面)의 12개리가 갈전, 신안, 안봉, 외송, 중촌의 5개리로, 단성군 도산면(都山面)이 도전리가 생비량면에 넘어가고 단성군 오동면(悟洞面, 現 신기, 청현, 하정리)이 통폐합되었다. 1928년 4월 1일 이렇게 개편된 도산면과 북동면이 신안면으로 합병되었다. 면 서북부에 둔철산, 남부에 백마산이 있으며 양천이 면 동부를 흐르고 경호강이 서부 경계를 흘러 하천유역에 평지가 만들어졌다.
하정리에 적벽산, 안봉리에 수월폭포, 적병강 절벽위에 있던 백마산성, 신안리에 도천서원신안사상재, 백마사노산성자, 문익점묘, 신계서원제기, 중촌리에 가야 + 통일신라시기 고분군,
단성면
| 이 문서를 쓴 사용자나 이 문서의 대상은 닉값을 못합니다... ㅠㅠ 그렇다고 심각하게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닉 아무 생각 없이 짓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요? |
丹城面
면적 108.65㎢. 면 소재지는 성내리.
성내리(城內里), 강루리(江樓里), 방목리(放牧里), 청계리(淸溪里), 운리(雲里), 입석리(立石里)·남사리(南沙里), 사월리(沙月里), 묵곡리(默谷里), 소남리(召南里), 관정리(官亭里)·창촌리(倉村里), 길리(吉里), 호리(虎里), 당산리(堂山里), 백운리(白雲里), 자양리(紫陽里)의 17개리를 관할한다.
부군면 통폐합때 폐지된 단성군의 중심지....긴 한데 본래 강성현(江城縣)이 있던 곳이다. 강성현은 신라 때 궐지군(闕支郡)이라 불렸는데 경덕왕때 궐성군(闕城郡)으로 개명되고 단읍현, 산음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때 강성현으로 격하되었다가 훗날 군이 되었는데 현종치세에 진주의 속군이 되었다. 이후 공민왕때 감무가 파견되었다. 문익점이 강성군 출신이지만 무덤이 단계현에 있다는게 코미디.
[조선]]건국직후 1399년, 거제도의 명진현(溟珍縣)이 왜구를 피해 강성현으로 교치되면서 진성현(珍城縣)이 되었지만 세종대왕이 왜구를 토벌하고 거제군을 복구하면서 명진은 거제로 예속되었고 강성현은 단계현과 짬뽕되어 단성현이 되었다.
부군면 통폐합때 단성군 현내면(縣內面, 現 강누리, 방목리, 성내리, 청계리), 원당면(元堂面, 現 입석리, 묵곡리, 사월리), 산청군 파지면(巴只面, 現 관정리, 소남리), 사월면(沙月面, 現 길리, 남사리, 운리), 백곡면(柏谷面, 現 당산리, 호리), 금만면(金萬面, 現 백운리, 자양리, 창촌리)가 통폐합되면서 단성면이 만들어졌다.
면 남부에 망해봉(望海峰, 257m), 면 북단에 웅석봉과 감투봉이 있으며 중앙에 석대산(石岱山, 535m)이 있다. 면 동쪽 경계를 따라 경호강이 남류, 중앙에 남강의 상류가 흐르며 서부에는 덕천강 상류가 남류한다. 묵곡리에 강변유원지, 성철 스님이 태어난 겁외사, 강루리에 단성향교, 사월리에 변화시배지 + 배산서원, 운리 단속사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