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봉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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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월 남부를 다스리던 무신정권 완주는 장복만이라는 간신배가 실세였다. 문제는 장복만이 워낙 무능해서 백성들의 반발이 날로 갈수록 심해졌다. | 당시 대월 남부를 다스리던 무신정권 완주는 장복만이라는 간신배가 실세였다. 문제는 장복만이 워낙 무능해서 백성들의 반발이 날로 갈수록 심해졌다. | ||
조세제도는 천문학적으로 무겁게 걷는데다가 쓸데없이 복잡하고 당시 호구조사 이상으로 높게 잡아서 도주한 사람들이 장난아니게 많았다. 장복만 지 입맛대로 정한 | 조세제도는 천문학적으로 무겁게 걷는데다가 쓸데없이 복잡하고 당시 호구조사 이상으로 높게 잡아서 도주한 사람들이 장난아니게 많았다. 장복만 지 입맛대로 정한 법과 빈번한 횡령은 덤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외부로부터는 톤부리 조의 딱신 대왕이 완주를 위협하고 있었다. | ||
이 헬-완주의 암울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서산 지역의 어느 삼걸들은 빡쳐서 농민들을 선동하고 기의를 일으킨다. | 이 헬-완주의 암울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서산 지역의 어느 삼걸들은 빡쳐서 농민들을 선동하고 기의를 일으킨다. 완악, 완혜, 완려 이 삼형제들이 일으킨 이 기의는 완주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들, 해상 짱깨세력한테도 지지를 얻었다. | ||
처음에는 세력이 미미하고 훈련 부족으로 관군들한테 얻어터졌지만, 약간 승리를 거둠에 따라 관군세력이나 지방호걸들을 설득으로 포섭함으로서 점차 서산 삼걸들의 우세로 기울어지게 된다. | |||
결국 장복만은 축출되고, 한 술 더떠서 완주 세력이 집결하던 귀인, 광의, 평순까지 서산 삼걸의 수중으로 들어오면서 대월 서산조가 탄생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