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대학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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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태조 무황제]]의 칙어(勅語) : 서주는… 어… 그거는 [[조숭|황고(皇考)]]<ref>임금의 죽은 아비</ref>를 장명(戕命)<ref>남의 애비나 임금을 죽인 건 시해가 아니라 장戕이라고 한다.</ref>한 하나의 폭동이야.  
{{인용문|[[조조|태조 무황제]]의 칙어(勅語) : 서주는… 어… 그거는 [[조숭|황고(皇考)]]<ref>임금의 죽은 아비</ref>를 장명(戕命)<ref>남의 애비나 임금을 죽인 건 시해가 아니라 장戕이라고 한다.</ref>한 하나의 폭동이야. <br /> 근데 그니까 짐이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로써 위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근데 그니까 짐이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로써 위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잖아?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후한의 충신 [[조조]]가 서주에서 악덕군주 [[도겸]]에게 고통받는 수십만 주민을 강물이 막혀댈때까지 자비롭게 쳐죽인 사건.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후한의 충신 [[조조]]가 서주에서 악덕군주 [[도겸]]에게 고통받는 수십만 주민을 강물이 막혀댈때까지 자비롭게 쳐죽인 사건.

2019년 9월 13일 (금) 10:20 판

주의! 정말 극혐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틀:헬중국

태조 무황제의 칙어(勅語) : 서주는… 어… 그거는 황고(皇考)[1]를 장명(戕命)[2]한 하나의 폭동이야.
근데 그니까 짐이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로써 위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잖아?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후한의 충신 조조가 서주에서 악덕군주 도겸에게 고통받는 수십만 주민을 강물이 막혀댈때까지 자비롭게 쳐죽인 사건.

조조빠 새끼들은 이 사건마저도 "아버지가 죽은 분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실드치더라. 아니 그럼 문제를 벌인 도겸만 조지라고.

남의 아버지 죽은 사건 때문에 조조빠 새끼들도 괜히 뒤져보면 정신차릴듯


여담으로, 이 사건으로 원래 서주에 살았던 제갈량네 가문이 형주와 강남으로 이주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 때 서주에 있던 명사와 인재들이 형주나 동오로 흘러들어가서 나중에 조조의 남방정벌을 파토내는 데 한몫한다.

길게 내다보면 사실상 조조가 천하통일을 못하게 된 것도 이 사건이 원인.

짧게 봐도, 서주에서 이 지랄 하느라 진궁하고 여포가 통수의 진수를 보여주게끔 빌미를 제공해서 이거 진압하느라 한 삽질.

위빠들의 입을 다물게할 마법의 단어다. 촉빠, 오빠들은 숙지하도록

ㄴ 위빠들의 카운터 단어로는 촉빠에겐 유선, 오빠에겐 이궁의 변이 있다.
ㄴ 이궁의변이야 그렇다 쳐도 유선은 암군이긴 했어도 최소한 백성들 학살은 안했다 어디서 서주대학살에 비비나.
ㄴ 원래 옛날위인은 무능한새끼가 나쁜놈보다 욕더처먹는 법이다 칭기즈칸 사람많이 죽였는데 정복질로 유능해서 아직까지 빨리는거 보면 모르냐
ㄴ 칭기즈칸이 몽골에서나 빨리지 타국입장에서는 그냥 흑사병 그 자체구만 ㅉㅉ
ㄴ 이토히로부미도 식민질에 유능했다고 한국에서 빨리던?
ㄴ촉 카운터 단어는 이릉대전 아니냐?

화북인의 대규모 강남이주 스타트가 이거때문에 발생했다. 상기한대로 서주에서 조조새끼가 강물이 막혀대고 쥐새끼조차 종범할정도로 학살쳐해대자 수십만의 서주사람들이 동오, 형주로 내려온거. 광릉국의 확실히 10만이 조조새끼를 피해 내려온게 확인된다.

사람을 어찌나 많이 죽여댔는지 장안에서 삼보의 난을 일으킨 이각 곽사 똥새끼들과 비견되는 대량학살이었고 가는 곳마다 시체가 워낙 많아서 강이 막혀서 흐르지 못하고 마을 전체가 썩는내로 아주 골이 아플 정도로 진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주에 살던 제갈량네 집은 장남인 제갈근만 평소에 친분이 있던 손책한테 가서 일하게 되었고 제갈량이 제갈씨 가문의 당주가 되어 일족을 이끌고 형주로 피난갔다. 이후 제갈근은 매달 받은 녹봉 중 일부를 떼어다 제갈량에게 배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네 살던 노숙 역시 도망친 이후 주유를 따라 손권의 부하가 된다. 문관뿐이 아니라 당대의 맹장 중 하나인 태사자에 대해서는 애초에 조조가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기 전부터 태사자에게 고구려당귀를 선물로 주고 갖은 아양을 떨었는데 그 태사자가 공융의 휘하로 들어가서도 조조는 태사자 꼬시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조조가 이 서주대학살을 벌이니 태사자는 유요가 망하자 손책의 휘하로 들어가고 조조한테 학살자 좆까를 외치며 그대로 손책 휘하로 말뚝박게 된다.

이와 같이 조조는 서주대학살을 벌인 게 선악을 떠나 엄청난 자충수가 되었는제 제갈근, 제갈량 형제와 노숙, 태사자 등 재야의 재주꾼들을 모조리 얻지 못하게 되었다.

자기가 쳐발릴거 알고도 황제폐하에게 충성을 보이겠다고 서영과 맞붙었던 그 조조와는 왜 그것과는 정반대의 짓거리를 저지른 것일까? 아무리 아버지가 죽었기로서니 꼭 학살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주

  1. 임금의 죽은 아비
  2. 남의 애비나 임금을 죽인 건 시해가 아니라 장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