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대학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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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일 (토) 00:10 판
| 주의! 정말 극혐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태조 무황제의 칙어(勅語) : 서주는… 어… 그거는 황고(皇考)[1]를 장명(戕命)[2]한 하나의 폭동이야. 근데 그니까 짐이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로써 위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잖아?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후한의 충신 조조가 서주에서 악덕군주 도겸에게 고통받는 수십만 주민을 강물이 막혀댈때까지 자비롭게 쳐죽인 사건.
조조빠 새끼들은 이 사건마저도 "아버지가 죽은 분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실드치더라. 아니 그럼 문제를 벌인 도겸만 조지라고.
남의 아버지 죽은 사건 때문에 조조빠 새끼들도 괜히 뒤져보면 정신차릴듯
여담으로, 이 사건으로 원래 서주에 살았던 제갈량네 가문이 형주와 강남으로 이주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 때 서주에 있던 명사와 인재들이 형주나 동오로 흘러들어가서 나중에 조조의 남방정벌을 파토내는 데 한몫한다.
길게 내다보면 사실상 조조가 천하통일을 못하게 된 것도 이 사건이 원인.
짧게 봐도, 서주에서 이 지랄 하느라 진궁하고 여포가 통수의 진수를 보여주게끔 빌미를 제공해서 이거 진압하느라 한 삽질.
위빠들의 입을 다물게할 마법의 단어다. 촉빠, 오빠들은 숙지하도록
- ㄴ 위빠들의 카운터 단어로는 촉빠에겐 유선, 오빠에겐 이궁의 변이 있다.
- ㄴ 이궁의변이야 그렇다 쳐도 유선은 암군이긴 했어도 최소한 백성들 학살은 안했다 어디서 서주대학살에 비비나.
- ㄴ 원래 옛날위인은 무능한새끼가 나쁜놈보다 욕더처먹는 법이다 칭기즈칸 사람많이 죽였는데 정복질로 유능해서 아직까지 빨리는거 보면 모르냐
- ㄴ 칭기즈칸이 몽골에서나 빨리지 타국입장에서는 그냥 흑사병 그 자체구만 ㅉㅉ
화북인의 대규모 강남이주 스타트가 이거때문에 발생했다. 상기한대로 서주에서 조조새끼가 강물이 막혀대고 쥐새끼조차 종범할정도로 학살쳐해대자 수십만의 서주사람들이 동오, 형주로 내려온거. 광릉국의 확실히 10만이 조조새끼를 피해 내려온게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