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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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드립}}{{멋있음}}{{역사인물}}{{심플/성인}}{{심플/영웅}}{{명장}}{{심플/문무겸비}}{{궁극강캐}}{{갓한민국}}{{갓얀도}}{{대한민국해군그자체}}{{애국지사}}{{대한민국 9대 명장}}
[[파일:손원일 제독.jpg]]
{{대사|'''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 몸을 삼가 바치나이다.'''}}<br>
{{대사|'''우리는 드디어 오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정의와 자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 개시를 기다리는 장병들에게 손원일 제독이 전한 훈시}}
1909년 6월 22일 ~1980년 2월 15일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육해공 중에서 해군이 가장 먼저 창설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1945년 11월 11일)
해군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셔서 친히 부인과 함께 전세계 해외 동포들에게 서신을 보내서 바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모아서 창설하였다.
그의 아버지 손정도 목사는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며 손원일 역시 독립 운동 혐의로 투옥된 적이 있지만 자료가 부족해서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참군인이다. 이 분은 까지 말자.
ㄴ 제독님 사랑에 목이 메여 깔 곳이 없다.
그나마 비교할 인물이 능력으로 보면 [[백선엽]] 정도가 있겠지만 그 양반은 친일부역자라...
ㄴ공교롭게도 둘다 [[강서군]]출신이다. 면이 달라서 그렇지.<ref>백선엽은 강서면 덕흥리, 손 장군님은 평양 출신인데 손정도가 강서군 증산면 오흥리 출생이라서 강서군을 고향으로 치는 쪽이 주류.</ref>
광복 이후 미군이 준 좆만 한 배와 쪽바리가 버리고 간 쪽배 몇 척밖에 없는 해군의 초라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함정건조각출위원회'를 조직해 모금 운동을 벌이셨고 해군 장병들과 국민들의 모금으로 신생 대한민국 해군은 [[백두산함|제대로 된 군함]]을 갖출 수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ref>김일성 뒤질 뻔한 거 구해준 사람이 손정도였다. 근데 아빠가 구해줬더니 침략을 해? 시발 [[배은망덕]]에서도 역대 톱이다. 덕분에
종북 단체에서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손정도가 추대받는다. ㅅㅂ...</ref>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이 새끼가 쳐들어왔을 때 장군님이 천신만고 끝에 구매한 [[백두산함|그 군함]]은 북괴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냈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될 때 기함 함교에서 참관하지 않고 장병들과 함께 소총 들고 돌격하여 사기를 높여주었다.
육군과 다르게 해군 창설자는 훌륭하신 분인데 후대의 물개 스타들은 양친을 갈아서 군함에 처넣었는지 국군 방산비리의 주축이 되어서 대일본제국 해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도 모자라 이 분의 얼굴에 거하게 먹칠을 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7/2015072703040.html?Dep0=twitter&d=2015072703040]
당시 우리나라엔 제대로 된 군가가 없어서 일본 군가에 가사만 우리말로 바꿔서 부르는 현실이었는데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손원일 제독께서 친히 작사하시고 그의 부인이신 홍은혜 권사께서 작곡하시어 우리나라 최초의 군가인 [[바다로 가자]]를 작곡하셨다.
[[분류: 독립운동가]]

2020년 7월 11일 (토) 02:40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