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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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이다.


호는 고하이므로 전직 바셀린 장수랑 헷갈리면 걍 고하라고 하자.
호는 고하이므로 전직 바셀린 장수랑 헷갈리면 걍 고하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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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우파 성향이라서 여운형이 제안한 [[좌우합작위원회]]도 거절한다.
증도우파 성향이라서 여운형이 제안한 [[좌우합작위원회]]도 거절한다.


근데 친일파는 아님 뭐, 친구 [[김성수]]는 친일파지만
근데 친일파는 아님 뭐, 친구 [[김성
 
ㄴ이것도 반론이 있다. 김성수가 반민특위에 잡혔을 때,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협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형을 거의 언도 받지 않았다. 대충 생계형 친일인.
 
새누리와 더민당의 선조되시는 [[한민당]]의 당수였으나 이후 [[김구]]한테 암살당했다는 의혹이 있다-
 
ㄴ 적절하지 않다. 암살범 한현우는 [[백의사]] 소속이었다. 백의사는 김구 휘하가 아닌 신익희 휘하에 있던 조직이다.
 
ㄴ 강준만에 의하면 백의사는 신익희와 김구의 모두의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봐라.
 
1945년 12월 27일 카이로에서 한반도 분할 신탁통치 의견이 나왔다.
 
다들 반탁을 하다가 구소련에서 찬탁으로 돌아서자 [[박헌영]] 등은 찬탁을 주장했다. 근데 그전에 동아일보가 박헌영이 찬탁이라고 오보를 했다.
 
신탁통치에 김구는 결사 반대했고 [[송진우]]는 미국과 소련이 힘으로 하는 것은 어쩔수 없으니 일단 수용하고 3년~5년 정도 기다리자 라고 말했다. 신탁통치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한 [[안재홍]]이나 [[김규식]]도 역적으로 지목됐다.
 
45년 12월 29일의 경교장 회의에서 [[송진우]]는 신탁통치가 우리 뜻으로 거부할수 없는 힘이라고 말했다가 30일 오전 6시반 원서동 집에 들이닥친 한현우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한현우는 끝내 자신을 사주한 사람 입을 열지 않고 투옥됐다.
 
[[브루스 커밍스]]는 문적 몇개를 조사한 뒤 한현우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ref>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87페이지</ref>
 
[[장택상]]도 [[송진우]]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고<ref>[http://shindonga.donga.com/3/all/13/102998/1 ]</ref> [[조병옥]]도 김구가 송진우 암살범이라고 지목,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는 중도주의자인 송진우를 김구가 암살한 사실과 이유를 안다면서 반탁 문제를 언급했다.<ref>리처드 로빈슨, 미국의 배반:미군정과 남조선 (정미옥 역, 과학과 사상, 1988) 77페이지</ref>
 
결국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 때문에 46년 1월 1일 소환되어 중단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같은 날 또 불려가서 송진우 암살 문제로 경고를 받았다.
 
여담으로 한현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줬기 때문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22200209222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2-22&officeId=00020&pageNo=22&printNo=22093&publishType=00020</ref>

2020년 4월 18일 (토) 16:50 판

호는 고하이므로 전직 바셀린 장수랑 헷갈리면 걍 고하라고 하자.

증도우파 성향이라서 여운형이 제안한 좌우합작위원회도 거절한다.

근데 친일파는 아님 뭐, 친구 [[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