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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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충후함으로 전조의 자손들을 돌보고 | {{인용문|''' 충후함으로 전조의 자손들을 돌보고 | ||
(以忠厚養前代之子孫) | (以忠厚養前代之子孫) | ||
관대함으로 사대부들의 바른 기풍을 진작하며 | 관대함으로 사대부들의 바른 기풍을 진작하며 | ||
(以寬大養士人之正氣) | (以寬大養士人之正氣) | ||
다스림으로 백성들의 삶을 부양하라." | 다스림으로 백성들의 삶을 부양하라." | ||
(以節制養百姓之生理) - 송태조, 석각유훈 '''}} | (以節制養百姓之生理) - 송태조, 석각유훈 '''}} | ||
근데 적어도 송나라는 45년을 정말 끈질기에 몽골과 맞서 싸웠다. 송나라의 멸망은 자신이 통일된 중국의 황제가 되고싶어서 안달이난 쿠빌라이가 몽골의 모든 힘을 끌어다가 박치기해서 이뤄낸 것이다. | |||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6년에 걸친 양양성 공성전이 있다. 당시 송나라 국경의 주요 성인 이 양양성에 공성을 하기 위해서 무려 10만의 몽골군이 동원됐다. 숫자만 들어도 대규모인 이 병력을 6년이나 하나의 성에 꼴아박은 거다. | |||
다른 곳과 비교를 하자면, 고려라는 '나라'를 공격하는데 3만을 동원했고, 그마저도 점차 줄였다. 바람 덕분에 막은 주제에 딸딸이 존나게 치는 일본에도 3만정도만 동원했다. 그런데 주요 도시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일개 도시에 불과한 곳에 10만을, 그것도 6년간 동원했다! 송나라는 이 공성전에 정말로 처절하게 버텼다. 그리고 양양성이 함락된 이후에는 20만을 동원해서 송나라를 공격했다. | |||
그럼에도 송나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몽골에 저항했다. | |||
이건 버틴게 용하다고 해야지 병신같다고 깔 일은 아니다. | 이건 버틴게 용하다고 해야지 병신같다고 깔 일은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