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 12번째 줄: | 12번째 줄: | ||
요새 언어로는 똥별. | 요새 언어로는 똥별. | ||
이 새끼는 똥별의 기본 소양인 경솔함 + 자만감이 충만한 새끼로, 지가 북방에서 좀 날렸던 경력만 처 믿고 적의 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무리하게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병사들을 왜적의 밥이 되도록 만들어 준 병신 새끼다. | |||
좃도 아는것도 없는 졸장 새끼가 직위가 높고, 거느리는 병력이 많다고 나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다. | |||
병법의 기본은 싸움에 임하기 전에 적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러나 신립 새끼는 그 기본이 없었다. | |||
이 새끼는 적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주변에서 왜적에 대한 정보를 주어도 적을 과소 평과하며 얕보다가 제대로 쳐맞았다. | |||
임진왜란이 장기화되고 전국적으로 피해가 커진데에는 이 좃립 새끼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
정말이지 개씹새끼가 따로 없다. | |||
더 기가 막힌것은 이 졸장 똥별 새끼가 조정에대가 수군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난신적자의 한 축이라는 것이다. | |||
정말 요새 조센군 똥별들과 너무나도 흡사한 똥별계의 조상이다. | |||
그냥 간단하게 요약 = 씨발놈 | |||
2018년 1월 19일 (금) 18:54 판
| 이 문서는 똥별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전쟁은 좆도 모르는 똥별에 대해 다룹니다. 팀킬을 밥 먹듯이 하는 이들에게 무타구치 장군님께서 감탄을 하십니다. 이들에게 지휘봉 대신 마우스를 쥐여주고 스타나 하라고 하십시오. ???: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풀을 뜯어먹으며 전진하면 된다! |
| 주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존나 거품입니다. 이 문서는 인기를 끌다가 거품이 다 빠진 대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가 조만간 거품이 되어 사라져도 디시위키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모두 이 거품을 향하여 X키를 눌러 Joy를 표하고 명복을 버블빔!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 방이 어디 갔습니까? 거품입니다, 거품!" |
拙將 졸장
아래 장황한 설명 다 집어 치우고 졸장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요새 언어로는 똥별.
이 새끼는 똥별의 기본 소양인 경솔함 + 자만감이 충만한 새끼로, 지가 북방에서 좀 날렸던 경력만 처 믿고 적의 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무리하게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병사들을 왜적의 밥이 되도록 만들어 준 병신 새끼다.
좃도 아는것도 없는 졸장 새끼가 직위가 높고, 거느리는 병력이 많다고 나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다.
병법의 기본은 싸움에 임하기 전에 적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러나 신립 새끼는 그 기본이 없었다.
이 새끼는 적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주변에서 왜적에 대한 정보를 주어도 적을 과소 평과하며 얕보다가 제대로 쳐맞았다.
임진왜란이 장기화되고 전국적으로 피해가 커진데에는 이 좃립 새끼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말이지 개씹새끼가 따로 없다.
더 기가 막힌것은 이 졸장 똥별 새끼가 조정에대가 수군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난신적자의 한 축이라는 것이다.
정말 요새 조센군 똥별들과 너무나도 흡사한 똥별계의 조상이다.
그냥 간단하게 요약 = 씨발놈
신립이 충주로 데려간 군사들의 숫자
신립은 체찰사 유성룡에게 장교 80명을 받았다.
장교 80명은 한명 당 군사를 100명씩 인솔한다. 당시 서울 한성부에는 잡색군(민방위)으로 '8만명'이 있었다.
1. 활 잘 쏘는 대大,소小 한량인 기마병 8천 (삼의사 장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군대면제를 받고있었다.) 2. (한량의) 개인노비 8천 3. (한량에게) 보인종자로 지급된 시정방리인 1만6천명 4. 도성 궁가에 남아 수비대로 남을 4500+2500명(서울 아전 , 악공 악생 , 장애인,노약자,병자) (한량에게 면포를 갖다바치는 자들) 5. 서울 도성 각사 노비(서울 도성 관청 노비) 3만명 (결채하는 자들) 6. 도성 인근 고을 8천 시정악동
이중 4번 5번만 빼고 전부 충주로 데려가고 5번은 군량수송대로 삼았다.
신립은 이 병력의 질을 믿지않아 추가로 궁궐호위군 2천(도성무사재관)을 받았는데. 이들은 상번하는 군사 2천에게 고용된 대립인들이었다.
신립은 항상 직속철기 500을 데리고다녔는데. 고대일록,선조수정실록에 나온다. 결국 신립과 작전의 호흡을 같이 맞출 군사는 500 뿐이었던것이다.
=============================================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계갑일록]에 보면 1번 , 2번 , 3번 , 5번 항목은 니탕개 난 당시 북방으로 출정한 경력이 있다. 니탕개 난 당시 서울의 한량인 8천은 조방장들이 이끄는 80명 용사들을 따라 북방으로 출정했다. 한량인 8천에게 말,면포를 조공바치고 출정을 면제받는 면제보인 8천명 , 같이 뒤따라가는 종군종자보인 8천+8천을 서울 시정방리인 중에서 뽑았다. 한량은 당시엔 신라의 화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후에 니탕개 난 사태가 더 위급해지자 율곡이이는 서울에서 활 잘 쏘는 자 1만명을 더 뽑았다.(율곡전서 행장)
이때 서울 5부 각방의 향도들이 이곳 저곳을 뒤지며 활을 당길수있는 사람들을 뽑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병조의 색리들은 한 사람 당 면포 5~6필을 내야만 징병면제를 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노비든 잡것이든 백성이든 가리지않고 닥치는대로 뽑게했다. 근데 이때 율곡이이는 병력의 양보단 질을 우선시했다. 그래서 전투말을 사서 바치는 자는 면제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순식간에 구름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전투말 1만여마리가 모였다. 율곡이이는 이때 활을 잘 쏘는 자 1만명을 뽑았지만 이중 활 잘 쏘는 실력을 상 , 중 , 하로 나누어 200명만 장교로 뽑고 그들에게 보인을 주고 나머지는 예비대로 삼았다. 200명 장교들은 먼저 선발대로 북방으로 출정했다. 뒤따라 출정할 부대를 뽑는데. 전투말도 면포도 바칠 능력이 없는 불쌍한 서울 도성 방리시정 백성들은 활을 못쏨에도 전부 북방전장터로 끌려가 서울 시내가 쓸쓸하게 텅텅 비고 결채하는 도성 관청 노비들도 백성들의 탈영을 감시할 보인들로 붙여져 우글우글 끌려갔다.
=====================================================
고대일록에 보면 신립의 정예병 500이 충주강물에 빠져 익사했다나옴.
선조수정실록엔 신립이 평소 직속 철기 500을 거느리고 치돌을 즐겨했다나온다.
상촌집에도 신립이 탄금대전투 때 철기 500을 거느리고 단월역 인근 평원광야에서 치돌하다 전부 뒤졌다고 나온다.
어떤 모습의 철기였을까?
이일의 병력 징집 장면
이일이 경상도순변사가 되어 경상도로 가려하는데. 기마장교 40명 궁수장교 20명을 비변사에서 받음. 그리고 도성의 금군 300명을 호위병으로 데려가려하는데. 군적을 보니 유생,역관들이 전부 차지하고있었음. 병역비리의 끔찍한 현장을 본 이일은 한숨을 쉬고 유생,역관들은 안끌려가려고 지랄하다가 결국 별장 유옥에게 전부 끌려가는데. 별장 유옥의 장교들이 집들을 일일히 뒤지며 숨은 유생,역관들을 끌고가는데 시간이 걸림. 유생,역관들은 하도 기생한테 돈을 탕진해서 말도 없이 노비들이랑 함께 걸어감.
그때 이일은 먼저 기마장교 궁수장교 60명과 함께 도성을 출발해 경기감영을 지나며 금군 300명을 호위할 조례(서울아전) 4천명을 호위병으로 징집함. 이때 호위병들의 짐을 싣고 같이 가줄 보인들도 하나씩 뽑음. 그렇게해서 전병력이 8천 300 이상이 되었을것이라 추정됨.
그렇게해서 상주로 내려갔는데. 문경을 지나면서 곡식창고 다 털음. 그리고 상주에 도착했는데. 이일은 함께 온 귀족종사관 2명과 함께 상주 읍성 북쪽 시냇가 북천으로 상주의 민병 800과 상주에 모인 경상도 장사 2천명을 데려와서 자기가 데리고온 조례병4000 보인종자 4000 장교 60 금군 300과 합체시켜 전투병 6000 이상 , 보인종자 6000이 됨.
4월 25일 충청도 조령을 방어하는 방어사 겸 조방장 변기와 종사관 1명이 충청도군현병 8천을 이끌고 이일을 후원하러 상주로 와서 이일과 합류했는데.
이들 중 민병 800만 북천시냇가에서 진법훈련을 시키는척하며 왜군의 밥으로 내어준후 나머지 군사는 전부 뒤편 숲속을 통해 변기의 도움 하에 무사히 퇴각시킴. (4월 25일)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때 상주에서 이일 변기의 연합군병력 2만을 만났는데. 이 2만 중 1천만 격파하고 나머지는 놓침.
이일이 떨구고간 역관 1명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만나 조선조정이 4월 28일 충주에서 항복하기로했으니까 어서 오셈하고 유인함.
이일과 변기는 함께 총병력 2만을 이끌고 조령을 지나 단월역 근방으로 오던 중에 급히 오는 신립 김여물과 만나서 급히 '조령작전회의'를 염.
일단 명장은 명장 맞다.
ㄴ 맹장으론 칠수있어도 명장은 무리아닌가 싶다.
하지만 기병 하나만 다룰줄 알지 다른건 그냥 평타수준.
그러나 평화속에서 병신이 되어있던 당시의 헬조선에서
기병이나마 명장급으로 다뤄줬던 신립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큰 유산이었다. 원균 같은 새끼를 봐라.
극소수의 기병대로 5배 이상 되는 니탕개의 난을 기병으로 진압했을 때는 선조가 직접 신립에게 곤룡포를 입혀줄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받기까지 했다.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존나 강해서 류성룡이 대조총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신립에게 숙제를 내줬으나 신립은 류성룡을 비웃었다.
물론 이해가 가기는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책상공무원 새끼가 국방부장관한테 전술에 대해 야부리 터는 꼴이니깐.
아무튼 임진왜란이 터진뒤 선두타자 이일이 좆본군한테 개털리자 그다음 타자로 파견되었다.
이 때 신립의 절친인 선조가 자신의 직속 호위부대와 자신의 명검인 상방검까지 쥐어주며 신립에게 홈런치고 와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신립은 충주에 도착하자 새재가 아닌 탄금대로 내려가서 싸웠다. 그결과 신립의 조선군은 벌집핏자가 되었다. 내야뜬공 시발아 빼타 아웃
그 탓에 근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개병신 쓰레기 공갈명장 취급 받았으나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함.
일단 가장 잘 다루는 병과가 기병인데다가 기병이 주력인 북방에서 싸웠던지라 일본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
둘째로 새재에서 싸우려고 하면 왜군이 딴 지방으로 돌아가서 한양을 조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당시 신립은 조선이 동원할 수 있는 전 병력을 끌고 온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자신이 뚫리면 그 뒤는 변변한 방어병력도 없는 무주공산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로선 어떻게든 여기서 일본군을 격파하거나 최소한 붙들어 놓기라도 해야했다.
셋째로 조총이라는 무기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조총의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약점인 장전시간동안 달려가 짓밟아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당시 일본군은 열도내에서 집안싸움으로 조총의 운용과 관련전술로는 거의 만렙을 찍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당시 신립이 한양 경군까지 다 빼서 동원한 병력이 최대치로 잡아도 8천이 안되는데, 고니시의 본대가 끌고온 병력은 최소로 잡아도 이 1.5배 이상으로 추정되게 때문이다. 질적으로도 상대조차 안되는데 양적으로까지 밀렸다는 소리다.
ㄴ 문경새재는 행주산성, 진주성하고 비교가 안되는 천해의 요새다. 신립의 패배는 마속의 등산이나 비슷한 삽질이다.
그외로 김여물과는 2대에 걸쳐 친구지간이었는데 여기서는 신립이 주장, 김여물이 부장이었으나 능양반정때는 김류(김여물의 아들)가 주장, 신경진(신립의 아들)이 부장이었다.
이길 수 있는 전투였는가
우선 당시 신립이 보유하던 군대는 아무리 최대치로 잡아도 8천이 넘지 않았을것으로 추론된다.
심지어 선조가 자기 호위병들까지 다 빼서 내어준 병력수가 이 지경이다.
ㄴ 근데 선조가 빼준병력은 갑사로 궁기경에 죄다 정예병력이였다. 그리고 진주대첩이나 행주대첩은 일본군의 1/10으로 정예병은커녕 백성데려다 막은 전투다.
정상적으로라면 이 대여섯배정도가 소집되어야 하는데, 죄다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 사원들이었다.
그만큼 조선의 관리체계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상황이었다.
한편 고니시유키나가의 군대는 선발대 5천에 후발 1만여명에 합쳐 신립군과 두배 가량의 차이가 난다.
군사의 질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수준차이다.
신립이 문경새재에 도달하기 직전 고니시군은 기민하게 움직여 이미 새재와 유기적으로 붙어있는 주변성채까지 점거하며 턱밑까지 도달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농민징집군과 다름없는 병력의 질로 신립이 할 수 있는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지경이다.
조령에서의 전투는 매복전의 양상으로 전개해야 하는데,
무전기도 야투경도 아무것도 없는 그 미개한 시대에서 야간 매복전이란 어지간히 전쟁터에서 굴러먹어봐야 할수있는 고난이도 전법이다.
ㄴ 현재지도를 봐도 새재 빼고는 돌아갈곳도 마땅찮은 지형이다. 괜히 새도 못넘는다는 의미로 조령이라는 말이 붙은게 아니다.
아마 추측컨데 거의 할 수 있는게 없는 신립은 반쯤 맨붕해서 걍 지가 자신있는 전술(기병개돌)에 모든걸 걸고 자폭한게 아닐까 싶다.
ㄴ 신립의 전적을 보면 사실상 지휘관이라기보단 돌격대장에 가깝다. 그저 할줄아는게 돌격밖에 없는 장수의 한계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뭐 어찌되었건 그 당시 전황이 신립이나 조선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고, 그 상황에서 신립장군의 선택범위가 매우 협소하긴 했으나, 지방의 근왕군이 상경하기 전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단기간에 대군을 완파당했기 때문에 재평가는 앞으로도 힘들듯 하다.
다만 그 수만의 근왕군이 나중에 와키자카의 천5백명에게 작살난걸 보면 흠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