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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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행정구역}} | {{후쿠시마}}{{평안도행정구역}} | ||
== 개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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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安州''' | ||
동쪽으로 [[개천군]], [[순천군]], 남쪽은 [[평원군]], 북쪽은 [[청천강]]건너 [[박천군]]과 [[영변군]], 서쪽은 황해와 접하고 있다. [[8.15 광복]]직후 시점으로 1읍 7면 169리로 구성되어있었으며 군청은 안주읍 북문리에 있었다. | |||
[[묘향산맥]]의 지맥인 자모산맥(慈母山脈)이 본군 동면에서 뻗어내려 마두산(馬頭山, 536m), 서삼봉(西三峰, 451m), 두미산(頭尾山, 419m), 상산(上山, 528m), 원룡산(元龍山, 301m)등이 솟아나있는데 이중 자장현이남의 마두산, 삼산, 원룡산, 취라봉등은 운곡면을 인접한 대니면, 안주읍, 동면, 순천과 경계를 이루게 만들었다. 운곡면과 동면에 있는 자모산맥을 빼면 전역이 평야지대이다. | |||
== 연혁 == | |||
[[낙랑군]] 증지현이 있었다는 썰이 있다. | |||
[[수나라]] 38만 별동대를 [[을지문덕]]슨상님이 육회로 만든 [[살수대첩]]의 성지인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한 군명은... 몰라 시발. 암튼 이때 뒤진 수나라 병사의 뼈가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골적도(骨積島)라는 이름의 하중도가 안주읍근처에 있다. | |||
[[고려]]가 [[평안남도]]를 재수복, 청천강이남을 장악한뒤에는 팽원군(彭原郡)이라 불렸다. 931년 북진정책을 고수한 [[왕건]]의 지시에 따라 북방의 발해유민, [[여진족]]들을 점령하고 이들을 총괄하는 '''안북부(安北府)'''로 떡상되었고 983년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가 되어 방어사가 파견되었다. 1018년에는 영주가 빠졌고 안북대도호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구한말]]까지 북방방비의 핵심요충지로 대우를 받아왔다. | |||
[[서희]]성님이 [[강동6주]]를 받아낸 뒤로 이 강동 6주와 [[평양]]이 관할하던 [[강동군]], [[강서군]], [[중화군]]외의 평안도전지역이 안북대도호부의 관할이 되었다. | |||
1369년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가 설치되면서 지금의 이름인 '''안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평안도를 설치하면서 평양과 함께 중요도시로 취급되었다. | |||
[[조선]] 중기에는 이 고을에 전염병과 기근이 겹쳐서 씹창이 났을 때 [[이원익|오리 정승]]이 와서 단기간에 재건한 일화가 유명하다. | [[조선]] 중기에는 이 고을에 전염병과 기근이 겹쳐서 씹창이 났을 때 [[이원익|오리 정승]]이 와서 단기간에 재건한 일화가 유명하다. | ||
그냥 "오리정승 실무능력 쩌네요"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평안도 병영이 있었던 요충지라서 여기가 씹창 나면 북방 방비도 같이 씹창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다. | 그냥 "오리정승 실무능력 쩌네요"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평안도 병영이 있었던 요충지라서 여기가 씹창 나면 북방 방비도 같이 씹창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다. | ||
하지만 구한말이후부터 취급이 박해지면서 거지동네가 되기 시작했다. | |||
[[6.25 전쟁]]초기 [[평양 탈환]]이후 [[미군]]이 [[북괴군]] 수뇌부 척살과 미군포로 구출을 위해 상륙작전을 실시할 때도 안주 바로밑의 숙천에서 실시되었지 안주는 그닥... 좋은 취급을 못받았다. 그리고 마두산에선 [[빨치산]]들이 깽판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두산빨치산의 활동지는 마두산 혁명전적지라는 좆같은 이름으로 혹부리가 항일 투쟁을 했다는 주작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그거 아니고 빨치산 활동지였는데?하던 할배들은 어디 위대한 돼지새끼의 혁명과업에 지랄이야하면서 처형당하셨다. [https://www.rfa.org/korean/in_focus/nk_nuclear_talks/madoomt-08282014102127.html] | |||
[[청천강 전투]]당시 국군과 중공군간의 치열한 격전지였으나 털렸고 지 땅을 재수복한 북괴는 동부지역을 문덕군으로 분리시켰다. | |||
== 읍면 == | |||
=== 안주읍 === | |||
'''安州邑''' | |||
1914년 읍북면 + 주북면 = 주내면이 되었고 1917년 안주면으로 개명, 1931년 안주읍이 되었다. 읍소재지는 칠성리 | |||
동쪽 동면과의 경계지에 서삼봉이 솟아있고 남쪽에는 마두산이 솟아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대니면, 운곡면과 경계를 이룬다. 청천강이 읍 북쪽에 있다. | |||
고구려때 처음 만들어져 조선시대때 3중성으로 벌크업했던 안주성과 그 성내의 백상루, 칠성공원, 북문리 칠불사, 신성내 충민사가 있었지만 1952년 [[미군]]성님들이 [[네이팜탄]]을 뿌려 다 작살나버렸고 이중 안주성과 백상루는 원래위치에서 동쪽으로 500m떨어진 곳에서 복원되는 병신같은 일이 벌어졌다. | |||
1949년 안주면으로 강등되었다. | |||
북괴로 넘어간 뒤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안주읍(칠성리 + 신의리 + 청교리 + 율산리 + 남천리 + 북문리 + 건인리), 미상리(미상리 + 문봉리), 용연리(용연리 + 화양리 + 장흥리), 삼룡리(용흥리 + 용현리 + 용서리), 금성리(금성리 + 고성리), 선흥리(서산리 + 선흥리 + 도회리), 장천리(장천리 + 봉서리 + 장상리), 원풍리(북송리 + 원풍리), 차장리와 신성리는 박천으로 이관된 상태에서 2개리를 뺀 면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 |||
=== 동면 === | |||
'''東面''' | |||
면소재지는 용흥리. | |||
자모산맥이 지나가는 산악지대와 청천강빨 평야로 구성되있으며 두미산, 서삼봉이 있다. 용흥리에 용흥염직공장이 있었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용계리(맹주리 + 동맹리 + 용계리), 용흥리(용흥리 + 봉학리 + 연풍리 일부), 평률리(명학리 + 봉덕리 + 평률리 일부), 상서리(봉명리 + 상서리 + 봉상리 + 평률리 일부), 운흥리(운흥리 + 연풍리 일부 + 금천리 일부)로 개편되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 |||
=== 신안주면 === | |||
'''新安州面''' | |||
면소재지는 원흥리. | |||
1914년 청산면 + 문곡면 = 신안주면이 되었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원흥리(운흥리 + 소학리 + 봉림리), 운송리(운송리 + 동칠리 + 용운리), 창송리(창송리 + 신원리), 청송리(청송리 + 명암리 + 용계리), 송학리(송학리 + 증암리 + 오리), 남칠리(남칠리 + 상팔리 + 신성리 + 낙만리), 운학리(운학리 + 송죽리 + 신리 + 원일리)로 개편되어 면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 |||
=== 운곡면 === | |||
'''雲谷面''' | |||
면소재지는 용복리. | |||
서북쪽에 안주읍, 대니면과 경계를 이루는 마두산이 있고 반룡리에 접무봉, 원룡리에 원룡산, 그리고 자모산맥빨 여러 산때문에 다른 읍면과 분리되어있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용복리(원룡리 + 용복리), 입석리(온흥리 + 입석리 + 용서리), 반룡리(온상리 + 반룡리 + 운흥리), 구룡리(용흥리 + 어룡리 + 구룡리), 용담리(용림리 + 용담리 + 용천리), 용전리(용학리 + 재전리 + 용전리), 중흥리(중흥리 + 원흥리 + 용택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 |||
=== 대니면 === | |||
'''大尼面''' | |||
면소재지는 협흥리. | |||
1914년 대대면(大代面) + 니산면(尼山面) = 대니면이 되었다. | |||
동북쪽 마두산이 안주읍, 운곡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문남리 운곡면 경계에 삼산이, 면서남쪽 소니리에 소니봉이 있다. 면전역이 평야지대이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남상계리(용흥리 + 용호리 + 남상계리), 용남리(용남리 + 문천리 + 문남리), 금계리(금계리 + 남계리 + 쌍계리), 어룡리(어룡리 + 계림리 + 백학리 + 용포리), 이서리(이서리 + 소니리 + 용봉리 + 봉명리), 만흥리(만흥리 + 발남리 + 발북리 + 만흥리), 협흥리일부(협흥일리 + 협흥이리 + 용화면 운천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 |||
=== 연호면 === | |||
'''燕湖面''' | |||
면소재지는 용흥리. | |||
1914년 연경면('''燕'''坰面) + 평호면(平'''湖'''面) = 연호면이 되었다. 청천강 하구라서 넓은 갯벌이 펼쳐져있다. | |||
1980년 [[뽀그리우스]]에 의해 간척지로 개간될려 했지만 버로울 탔다고 한다. [[이원익|오리정승]]이 뽕나무재배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여 양잠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남이리(남이리 + 남일리 + 북흥리 + 남흥리), 동사리(동사리 + 내삼리 + 용삼리 + 남사리), 상팔리(상팔리 + 용흥리), 인흥리(인흥리 + 신양리 + 신설리 + 서흥리), 동림리(동림리 + 용오리), 박비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 |||
=== 용화면 === | |||
'''龍花面''' | |||
면소재지는 용연리. | |||
1914년 용두면(龍頭面) + 갈화면(葛花面) = 용화면이 되었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상북동리(상북동리 + 응암리 + 봉학리 일부), 용중리(용남리 + 용운리 + 용중리), 용반리(용연리 + 용흥리 + 용반리), 용담리(용전리 + 약천리 + 용담리), 마산리(삼산리 + 마산리 + 봉학리 일부)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 |||
=== 입석면 === | |||
'''立石面''' | |||
1914년 누천면 + 남송면 + 남면 + 서면 = 입석면이 되었다. | |||
청천강 어귀에 태향산, 산아래 수군첨절제사가 방어진을 구축한 노강진의 옛 자취, 그위 전선포가 있었고 전역이 평야였다. | |||
연간 8만톤의 [[석탄|갈탄]]을 캐는 안주탄전이 있었다고 한다. | |||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문덕읍(용주리 + 용운리 + 신명리 + 입석리 + 연흥리), 용흥리(왕산리 + 송산리 + 용정리 + 용흥리), 서호리(서호리 + 해서리 + 남조리 + 남단리), 용림리(남상리 + 원북리 + 중흥리 + 용담리 + 용림리), 성법리(동호리 + 용지리 + 성법리), 신리(내동리 + 인풍리 + 신리), 용북리(기산리 + 호남리 + 상공삼리 + 용북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 |||
==아웃풋== | ==아웃풋== | ||
2019년 4월 6일 (토) 18: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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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
자치시 | 신의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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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 ||||||||||||||||||||||||||||||||||||||||||||||||||||||||||||||||||||||||||||||||||||||||||||||||||
개요
安州
동쪽으로 개천군, 순천군, 남쪽은 평원군, 북쪽은 청천강건너 박천군과 영변군, 서쪽은 황해와 접하고 있다. 8.15 광복직후 시점으로 1읍 7면 169리로 구성되어있었으며 군청은 안주읍 북문리에 있었다.
묘향산맥의 지맥인 자모산맥(慈母山脈)이 본군 동면에서 뻗어내려 마두산(馬頭山, 536m), 서삼봉(西三峰, 451m), 두미산(頭尾山, 419m), 상산(上山, 528m), 원룡산(元龍山, 301m)등이 솟아나있는데 이중 자장현이남의 마두산, 삼산, 원룡산, 취라봉등은 운곡면을 인접한 대니면, 안주읍, 동면, 순천과 경계를 이루게 만들었다. 운곡면과 동면에 있는 자모산맥을 빼면 전역이 평야지대이다.
연혁
낙랑군 증지현이 있었다는 썰이 있다.
수나라 38만 별동대를 을지문덕슨상님이 육회로 만든 살수대첩의 성지인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한 군명은... 몰라 시발. 암튼 이때 뒤진 수나라 병사의 뼈가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골적도(骨積島)라는 이름의 하중도가 안주읍근처에 있다.
고려가 평안남도를 재수복, 청천강이남을 장악한뒤에는 팽원군(彭原郡)이라 불렸다. 931년 북진정책을 고수한 왕건의 지시에 따라 북방의 발해유민, 여진족들을 점령하고 이들을 총괄하는 안북부(安北府)로 떡상되었고 983년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가 되어 방어사가 파견되었다. 1018년에는 영주가 빠졌고 안북대도호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구한말까지 북방방비의 핵심요충지로 대우를 받아왔다.
서희성님이 강동6주를 받아낸 뒤로 이 강동 6주와 평양이 관할하던 강동군, 강서군, 중화군외의 평안도전지역이 안북대도호부의 관할이 되었다.
1369년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가 설치되면서 지금의 이름인 안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평안도를 설치하면서 평양과 함께 중요도시로 취급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이 고을에 전염병과 기근이 겹쳐서 씹창이 났을 때 오리 정승이 와서 단기간에 재건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냥 "오리정승 실무능력 쩌네요"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평안도 병영이 있었던 요충지라서 여기가 씹창 나면 북방 방비도 같이 씹창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구한말이후부터 취급이 박해지면서 거지동네가 되기 시작했다.
6.25 전쟁초기 평양 탈환이후 미군이 북괴군 수뇌부 척살과 미군포로 구출을 위해 상륙작전을 실시할 때도 안주 바로밑의 숙천에서 실시되었지 안주는 그닥... 좋은 취급을 못받았다. 그리고 마두산에선 빨치산들이 깽판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두산빨치산의 활동지는 마두산 혁명전적지라는 좆같은 이름으로 혹부리가 항일 투쟁을 했다는 주작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그거 아니고 빨치산 활동지였는데?하던 할배들은 어디 위대한 돼지새끼의 혁명과업에 지랄이야하면서 처형당하셨다. [1]
청천강 전투당시 국군과 중공군간의 치열한 격전지였으나 털렸고 지 땅을 재수복한 북괴는 동부지역을 문덕군으로 분리시켰다.
읍면
안주읍
安州邑
1914년 읍북면 + 주북면 = 주내면이 되었고 1917년 안주면으로 개명, 1931년 안주읍이 되었다. 읍소재지는 칠성리
동쪽 동면과의 경계지에 서삼봉이 솟아있고 남쪽에는 마두산이 솟아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대니면, 운곡면과 경계를 이룬다. 청천강이 읍 북쪽에 있다.
고구려때 처음 만들어져 조선시대때 3중성으로 벌크업했던 안주성과 그 성내의 백상루, 칠성공원, 북문리 칠불사, 신성내 충민사가 있었지만 1952년 미군성님들이 네이팜탄을 뿌려 다 작살나버렸고 이중 안주성과 백상루는 원래위치에서 동쪽으로 500m떨어진 곳에서 복원되는 병신같은 일이 벌어졌다.
1949년 안주면으로 강등되었다.
북괴로 넘어간 뒤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안주읍(칠성리 + 신의리 + 청교리 + 율산리 + 남천리 + 북문리 + 건인리), 미상리(미상리 + 문봉리), 용연리(용연리 + 화양리 + 장흥리), 삼룡리(용흥리 + 용현리 + 용서리), 금성리(금성리 + 고성리), 선흥리(서산리 + 선흥리 + 도회리), 장천리(장천리 + 봉서리 + 장상리), 원풍리(북송리 + 원풍리), 차장리와 신성리는 박천으로 이관된 상태에서 2개리를 뺀 면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동면
東面
면소재지는 용흥리.
자모산맥이 지나가는 산악지대와 청천강빨 평야로 구성되있으며 두미산, 서삼봉이 있다. 용흥리에 용흥염직공장이 있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용계리(맹주리 + 동맹리 + 용계리), 용흥리(용흥리 + 봉학리 + 연풍리 일부), 평률리(명학리 + 봉덕리 + 평률리 일부), 상서리(봉명리 + 상서리 + 봉상리 + 평률리 일부), 운흥리(운흥리 + 연풍리 일부 + 금천리 일부)로 개편되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신안주면
新安州面
면소재지는 원흥리.
1914년 청산면 + 문곡면 = 신안주면이 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원흥리(운흥리 + 소학리 + 봉림리), 운송리(운송리 + 동칠리 + 용운리), 창송리(창송리 + 신원리), 청송리(청송리 + 명암리 + 용계리), 송학리(송학리 + 증암리 + 오리), 남칠리(남칠리 + 상팔리 + 신성리 + 낙만리), 운학리(운학리 + 송죽리 + 신리 + 원일리)로 개편되어 면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운곡면
雲谷面
면소재지는 용복리.
서북쪽에 안주읍, 대니면과 경계를 이루는 마두산이 있고 반룡리에 접무봉, 원룡리에 원룡산, 그리고 자모산맥빨 여러 산때문에 다른 읍면과 분리되어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용복리(원룡리 + 용복리), 입석리(온흥리 + 입석리 + 용서리), 반룡리(온상리 + 반룡리 + 운흥리), 구룡리(용흥리 + 어룡리 + 구룡리), 용담리(용림리 + 용담리 + 용천리), 용전리(용학리 + 재전리 + 용전리), 중흥리(중흥리 + 원흥리 + 용택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대니면
大尼面
면소재지는 협흥리.
1914년 대대면(大代面) + 니산면(尼山面) = 대니면이 되었다.
동북쪽 마두산이 안주읍, 운곡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문남리 운곡면 경계에 삼산이, 면서남쪽 소니리에 소니봉이 있다. 면전역이 평야지대이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남상계리(용흥리 + 용호리 + 남상계리), 용남리(용남리 + 문천리 + 문남리), 금계리(금계리 + 남계리 + 쌍계리), 어룡리(어룡리 + 계림리 + 백학리 + 용포리), 이서리(이서리 + 소니리 + 용봉리 + 봉명리), 만흥리(만흥리 + 발남리 + 발북리 + 만흥리), 협흥리일부(협흥일리 + 협흥이리 + 용화면 운천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연호면
燕湖面
면소재지는 용흥리.
1914년 연경면(燕坰面) + 평호면(平湖面) = 연호면이 되었다. 청천강 하구라서 넓은 갯벌이 펼쳐져있다.
1980년 뽀그리우스에 의해 간척지로 개간될려 했지만 버로울 탔다고 한다. 오리정승이 뽕나무재배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여 양잠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남이리(남이리 + 남일리 + 북흥리 + 남흥리), 동사리(동사리 + 내삼리 + 용삼리 + 남사리), 상팔리(상팔리 + 용흥리), 인흥리(인흥리 + 신양리 + 신설리 + 서흥리), 동림리(동림리 + 용오리), 박비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용화면
龍花面
면소재지는 용연리.
1914년 용두면(龍頭面) + 갈화면(葛花面) = 용화면이 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상북동리(상북동리 + 응암리 + 봉학리 일부), 용중리(용남리 + 용운리 + 용중리), 용반리(용연리 + 용흥리 + 용반리), 용담리(용전리 + 약천리 + 용담리), 마산리(삼산리 + 마산리 + 봉학리 일부)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입석면
立石面
1914년 누천면 + 남송면 + 남면 + 서면 = 입석면이 되었다.
청천강 어귀에 태향산, 산아래 수군첨절제사가 방어진을 구축한 노강진의 옛 자취, 그위 전선포가 있었고 전역이 평야였다.
연간 8만톤의 갈탄을 캐는 안주탄전이 있었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문덕읍(용주리 + 용운리 + 신명리 + 입석리 + 연흥리), 용흥리(왕산리 + 송산리 + 용정리 + 용흥리), 서호리(서호리 + 해서리 + 남조리 + 남단리), 용림리(남상리 + 원북리 + 중흥리 + 용담리 + 용림리), 성법리(동호리 + 용지리 + 성법리), 신리(내동리 + 인풍리 + 신리), 용북리(기산리 + 호남리 + 상공삼리 + 용북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