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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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김돼지 왕가 붕괴이후 강원도가 옛날모습으로 확장될 경우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북괴령 양구군 대다수가 훗날 [[김화군]]으로 들어갈 창도군이나 [[회양군]]에 들어갈 금강군등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인제군]], [[철원군]]이 먹을데가 많은것과는 달리 여긴 얻을게 없어서 [[BYC]]급으로 떨어질 것이다.
북괴김돼지 왕가 붕괴이후 강원도가 옛날모습으로 확장될 경우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북괴령 양구군 대다수가 훗날 [[김화군]]으로 들어갈 창도군이나 [[회양군]]에 들어갈 금강군등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인제군]], [[철원군]]이 먹을데가 많은것과는 달리 여긴 얻을게 없어서 [[BYC]]급으로 떨어질 것이다.
== 읍면 ==
=== 양구읍 ===
면적 173.62㎢, 2011년 11월 기준 12,183명.
양구군의 중심지. 1895년 양구현을 양구군으로 바꾸면서 현내면이 아닌 군내면으로 불렸고 1914년 서면의 8개리를 흡수하여 19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17년 양구면으로 개명되었다.
양구군은 군 전역이 [[38선]]이북에 있어 전역이 북괴령이었지만 [[6.25 전쟁]]때 본읍제외 남면, 방산면, 동면, 해안면 전역과 수입면 극히일부를 수복했다.
1962년 11월 21일 북면 공수리, 도사리, 군량리, 월명리, 상무룡리의 5개리를 흡수하여 총 21개리를 관할하고 있다.
=== 남면 ===
면적 135.26㎢, 2011년 11월 3,884명.
1914년 하남면과 하동면이 스까되면서 남면으로 개편되었다. 전쟁당시 주요 격전지가 되어서 원주민들은 요단강티켓을 끊거나 어딘가로 피난을 갔고 1954년 4월 1일부터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군정실시, 11월 17일에 민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1971년 1월 1일 상수내리와 하수내리는 인제군으로 들어갔고 1973년 7월 1일 인제군 남면 두무리를 편입했다.
=== 동면 ===
면적 123.62㎢, 2015년 6월 30일 기준 2,383명.
본래 동쪽위에 있다고 상동면이라 했는데 1914년 동면으로 개명되었다.
1978년 7월 1일부터 1983년 2월 15일까지 해안면에 통폐합되었다.
=== 방산면 ===
면적 206.7㎢, 2015년 6월 30일 기준 1,637명.
고구려 삼현현(三峴縣), 혹은 밀파혜(密波兮)라 불리다 신라때 삼령현(三嶺縣), 고려때 방산현(方山縣)으로 개명된 방산현이 있던 곳이다.
전방과 매우 가까워서 1954년 11월 17일까지 군정이 실시되었고 1971년 송현리와 행정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 해안면 ===
면적 61.52㎢, 2015년 6월 30일 기준으로 1,423명.
6.25 전쟁당시 종군기자가 [[펀치]]담는 그릇같이 생겼다고 펀치볼마을이라는 이명을 갖게 되었다.
휴전이후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인제군 해안면이 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서화면에 통폐합되었다. 이후 73년 7월 1일 동면을 흡수하면서 부활했다가 1983년 2월 15일 분단이전모습으로 복구되었다.
1956년 전쟁으로 완전파괴된 해안면을 복구하기 위해 100세대이상의 농민들이 이곳에 정착, 재건되었다.
을지전망대와 [[북괴]] 제 4땅굴, 통일관, 양구전쟁기념관이 있다.
=== 수입면 ===
{{심플/불쌍}}{{심플/북괴}}
고구려시기 문현현(文峴縣)이라 불리다가 신라때부터 문등현(文登縣)으로 불린 문등현이 있던 곳이다.
1906년 [[회양군]]에서 양구군으로 옮겨졌는데 북괴 김혹부리우스때문에 딴면들은 죄다 머한이 수복했지만 얘만 북괴에 남게 되었다.
1952년 대정리, 천리, 인패리, 점방리, 오천리, 송거리(송거리 + 근리 + 지혜리), 문등리로 개편되어 창도군에 속했다가 전역이 2000년 11월 금강군으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