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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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나라는 그 중에서 남쪽의 커다란 주 3개가 해당되었다. 국토넓이는 삼국중 가장 넓었으나 인구밀도는 삼국 중 가장 적었다. 물론 인구 자체는 촉나라보다는 많았다. | 근데 오나라는 그 중에서 남쪽의 커다란 주 3개가 해당되었다. 국토넓이는 삼국중 가장 넓었으나 인구밀도는 삼국 중 가장 적었다. 물론 인구 자체는 촉나라보다는 많았다. | ||
* 양주: [[손견]]의 고향이 있는 곳 일대. | * 양주: [[손견]]의 고향이 있는 곳 일대. | ||
* 형주: 장사지역은 [[손견]]의 임지였다가 손견이 동탁 토벌군으로 자리를 비우자 조정에서 임명한 장사태수가 공석이 되어 [[유표(역적)|유표]]가 접수했는데, | * 형주: 장사지역은 [[손견]]의 임지였다가 손견이 동탁 토벌군으로 자리를 비우자 조정에서 임명한 장사태수가 공석이 되어 손견이 죽게 만든 왕예의 후임으로 [[유표(역적)|유표]]가 접수했는데, 사실 손견이 장사를 찾으려 하다가 뒈짖한것도 아니고 그냥 원술 명령 듣고 유표 치려다가 뒈짖. 어쨌거나 후에 손권이 이 지역을 익양대치로 탈취하여 소유했다. 근데 북부지역은 위나라한테 넘어갔다. | ||
* 교주: 오늘날의 [[베트남]]. 마치 병주마냥 있으나마나한 주이지만 병주와는 달리 면적은 존나게 넓었다. | * 교주: 오늘날의 [[베트남]]. 마치 병주마냥 있으나마나한 주이지만 병주와는 달리 면적은 존나게 넓었다. | ||
2016년 4월 7일 (목) 16:07 판
본디 한나라였으나 손책이 거점을 확보하고 난 뒤 그 거점을 손권이 물려받았는데 229년 손권이 황제에 오르면서 성립된 나라이다. 사실 손권이 유비조비손권 중 제일 늦게 제위에 올랐다.
삼국지의 영향으로 오나라하면 보통 손오를 말한다
한나라 멸망 이후 위나라 셔틀질 하던 손오가 이제 위나라에서 독립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세운 왕조이다.
오나라는 위나라나 촉나라와는 달리 중앙집권이 제대로 안되는 나라였다. 그 이유인 즉 조조가 기반을 다 닦아놓은 후 조비가 물려받은 위나라나 유비가 유장의 통수를 후리고 냠냠쩝쩝한 촉나라와는 달리 오나라는 손책이 지나칠 정도로 일찍 죽고 손권이 너무 어린 나이에 손책을 계승하는 바람에 기반을 닦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업 앞에는 강이 흐르고 맞은 편에 합비가 있다. 근데 이 강은 건너는 쪽이 지는 싸움으로 악명높아서 오나라나 위나라나 섣불리 강을 건너지 못했다. 오나라쪽에서도 연패를 거듭했는데 이 기간에 오나라에서 그나마 성공을 거둔게 감녕이다.[1]
영토
후한은 본디 총합 13개의 주가 있었다.
근데 오나라는 그 중에서 남쪽의 커다란 주 3개가 해당되었다. 국토넓이는 삼국중 가장 넓었으나 인구밀도는 삼국 중 가장 적었다. 물론 인구 자체는 촉나라보다는 많았다.
- 양주: 손견의 고향이 있는 곳 일대.
- 형주: 장사지역은 손견의 임지였다가 손견이 동탁 토벌군으로 자리를 비우자 조정에서 임명한 장사태수가 공석이 되어 손견이 죽게 만든 왕예의 후임으로 유표가 접수했는데, 사실 손견이 장사를 찾으려 하다가 뒈짖한것도 아니고 그냥 원술 명령 듣고 유표 치려다가 뒈짖. 어쨌거나 후에 손권이 이 지역을 익양대치로 탈취하여 소유했다. 근데 북부지역은 위나라한테 넘어갔다.
- 교주: 오늘날의 베트남. 마치 병주마냥 있으나마나한 주이지만 병주와는 달리 면적은 존나게 넓었다.
같이 보기
- ↑ 감녕은 본래 수적 출신이라 수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익양대치때 관우가 물을 건너지 못하게 만드리라 자신하고 합비때는 위나라 진영을 들쑤시고 다녀서 "맹덕에겐 장료가 있지만, 나에겐 흥패가 있으니, 족히 서로 상대해볼만 하다"라고 손권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