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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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1운동은 민중 모두가 주최자이자 행위자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가 다른 만세 운동가보다 주목받는 것은 우선 여성 차별의 시대에서 여성이, 그것도 어린 여성이었다는 점이고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했으며 법정에서 일본 판사에게 의자를 집어던진 사건도 의연함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만세운동을 한 수없이 많은 열사분들도 똑같이 숭고하지만 그 나머지 분들을 대표할 상징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관순 열사가 특별히 더 기억되는 것이고 3.1운동의 상징이 된 것이다. 당장 가까운 예시로 군사독재 시절에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 두 명이 상징적으로 기억된다고 그것을 과대포장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 사실 3.1운동은 민중 모두가 주최자이자 행위자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가 다른 만세 운동가보다 주목받는 것은 우선 여성 차별의 시대에서 여성이, 그것도 어린 여성이었다는 점이고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했으며 법정에서 일본 판사에게 의자를 집어던진 사건도 의연함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만세운동을 한 수없이 많은 열사분들도 똑같이 숭고하지만 그 나머지 분들을 대표할 상징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관순 열사가 특별히 더 기억되는 것이고 3.1운동의 상징이 된 것이다. 당장 가까운 예시로 군사독재 시절에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 두 명이 상징적으로 기억된다고 그것을 과대포장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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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7일 (일) 17:3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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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외친다. 대한독립 만세!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하던 여성 독립운동가.
국사 시간에 배운 이후로 우리의 영원한 누님.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는 거다. 찬양하자.
하지만 이화학당 출신의 친일파들이 자신의 친일행적을 덮고 이화학당을 포장하기 위해 과대포장했다는 논란 역시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뭐 그렇다고 이분이 애국열사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3.1 운동 때 희생 당한 사람은 7000명이 넘는데 철저하게 묻혔다.
사실 3.1운동은 민중 모두가 주최자이자 행위자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가 다른 만세 운동가보다 주목받는 것은 우선 여성 차별의 시대에서 여성이, 그것도 어린 여성이었다는 점이고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했으며 법정에서 일본 판사에게 의자를 집어던진 사건도 의연함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만세운동을 한 수없이 많은 열사분들도 똑같이 숭고하지만 그 나머지 분들을 대표할 상징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관순 열사가 특별히 더 기억되는 것이고 3.1운동의 상징이 된 것이다. 당장 가까운 예시로 군사독재 시절에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 두 명이 상징적으로 기억된다고 그것을 과대포장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