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산: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내용추가}}
{{작성가능 정치인}}
{{작성가능 정치인}}
{{야인시대 제1공화국 정치인}}
{{야인시대 제1공화국 정치인}}
35번째 줄: 34번째 줄:
[[일제강점기]] 경성고보를 다니던 시절,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자퇴하고 보성고보로 학교를 옮겼다. 1926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학교생활 잘 하다가 3학년이던시절, 독서회사건에 연루되어 이치타니 형무소에 투옥, 퇴학당했다.  
[[일제강점기]] 경성고보를 다니던 시절,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자퇴하고 보성고보로 학교를 옮겼다. 1926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학교생활 잘 하다가 3학년이던시절, 독서회사건에 연루되어 이치타니 형무소에 투옥, 퇴학당했다.  


1932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농민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민정부|중화민국]]으로 망명했다. 중화민국에 정착한 이후, [[강서성]] 남창시에서 한인회를 조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일하다가 1934년 좆본 경찰에게 잡혀 4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1935년부터 [[8.15 광복]]이전까지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하면서 [[조병옥]], [[장택상]]등과 교류하고 필명을 자기 고향인 진산으로 바꾸었다.  
1932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농민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민정부|중화민국]]으로 망명했다. 중화민국에 정착한 이후, [[강서성]] 남창(南昌)에서 한인회를 조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일하다가 1934년 좆본 경찰에게 잡혀 4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1935년부터 [[8.15 광복]]이전까지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하면서 [[조병옥]], [[장택상]]등과 교류하고 필명을 자기 고향인 진산으로 바꾸었다.  


광복이후 상경, 반공단체 흥국사를 조직하면서 부터 우익활동을 시작했고, [[김두한]]의 러브콜을 받고 [[대한민주청년동맹|대한청년회]]의 머튽으로 임했다. 이후 [[한국민주당]]에서 활동하면서 민주당계 국회의원으로 지내고 1970년엔 신민당 총재로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반인반신]]과 야합해 민주당계 국회의원들에게 통수를 날리면서 정치생명이 끝장났고 결국 1974년 지병인 결장암으로 사망했다.  
광복이후 상경, 반공단체 흥국사를 조직하면서 부터 우익활동을 시작했고, [[김두한]]의 러브콜을 받고 [[대한민주청년동맹|대한청년회]]의 머튽으로 임했다. 이후 [[한국민주당]]에서 활동하면서 민주당계 국회의원으로 지내고 1970년엔 신민당 총재로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반인반신]]과 야합해 민주당계 국회의원들에게 통수를 날리면서 정치생명이 끝장났고 결국 1974년 지병인 결장암으로 사망했다.  

2019년 9월 27일 (금) 19:44 판

틀:작성가능 정치인

야인시대 정치인들 (제1공화국)
정부/자유당 이승만 이기붕 곽영주 장경근 장택상 신성모 최인규 신도환
야당 조병옥 신익희 유진산 장면 전진한 조봉암 김영삼 김성수
진산(柳珍山)
이명 본명 유영필(柳永弼), 호 옥계(玉溪)
출생 1905년 10월 18일 전라북도 진산군
사망 1974년 4월 28일 서울에서 결장암으로 사망.
국적 대한제국, 대한민국
본관 문화 류씨
학력 보성고등보통학교,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가족 아버지 유경덕, 어머니 김경하, 부인 김현신, 아들 유한열[1]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전 국회의원.

위의 프로필에서 볼 수 있듯 본명은 유영필이었지만 자신의 고향이었던 진산을 그대로 호로 가져왔을 정도로 금산에 대한 애향심이 깊었다.

일제강점기 경성고보를 다니던 시절,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자퇴하고 보성고보로 학교를 옮겼다. 1926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학교생활 잘 하다가 3학년이던시절, 독서회사건에 연루되어 이치타니 형무소에 투옥, 퇴학당했다.

1932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농민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화민국으로 망명했다. 중화민국에 정착한 이후, 강서성 남창(南昌)에서 한인회를 조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일하다가 1934년 좆본 경찰에게 잡혀 4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1935년부터 8.15 광복이전까지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하면서 조병옥, 장택상등과 교류하고 필명을 자기 고향인 진산으로 바꾸었다.

광복이후 상경, 반공단체 흥국사를 조직하면서 부터 우익활동을 시작했고, 김두한의 러브콜을 받고 대한청년회의 머튽으로 임했다. 이후 한국민주당에서 활동하면서 민주당계 국회의원으로 지내고 1970년엔 신민당 총재로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반인반신과 야합해 민주당계 국회의원들에게 통수를 날리면서 정치생명이 끝장났고 결국 1974년 지병인 결장암으로 사망했다.

별명으로 '사쿠라'가 있다.

야인시대에서도 등장했으며, 심영물에서도 요즘 들어 정치인들도 소스로 활용되서 그런지 2019년부터 종종 등장한다.

  1. 아버지의 금산 지역구를 물려받아 10~16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아버지때부터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김대중이 민주당계를 차지하자 한나라당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