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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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의 소프라노. 연인으로 알려진 김우진과 함께 대한해협에서 정사([[섹스|꼐임]]의 그 정사 말고, 연인남녀가 함께 자살한 것)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소프라노. 연인으로 알려진 김우진과 함께 대한해협에서 정사([[섹스|꼐임]]의 그 정사 말고, 연인남녀가 함께 자살한 것)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증거는 없어서,(심지어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이를 당시 기레기들이 그냥 둘이 같이 없어졌으니 둘이가 연인이라 같이 자살한거 아니냐고 추정해서 쓴것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증거는 없고,(심지어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이를 당시 기레기들이 그냥 둘이 같이 없어졌으니 둘이가 연인이라 같이 자살한거 아니냐고 추정해서 쓴것 뿐이다.


사실 두 사람이 자살한건지도 명확치는 않다. 시신도 발견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냥 두 사람이 가명을 써서 배에 탔는데 두 사람이 배에서 없어진 정황상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하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이 자살한건지도 명확치 않다. 시신도 발견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냥 두 사람이 가명을 써서 배에 탔는데 두 사람이 배에서 없어진 정황상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하는 것일 뿐.


게다가 윤심덕의 경우는 자살할 만한 동기가 차고 넘치긴 했는데(죽었을때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결혼도 안한 노처녀였다. 물론 지금이야 서른은 초혼연령 수준의 나이니 그렇게 이상해 보일건 없을것 같지만, 이 여자는 90년전 여자다. 나이 스물도 노처녀 취급받던 당시에 서른이면 지금으로써는 최소 30대 후반 내지 40대의 노처녀 정도 포지션이라고 보면 될 듯. 게다가 당시 헬조선 수준이 미개하다보니 기껏 노오오오력 해서 성악을 전공하고 와도 써먹을데가 없다보니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래서 연극쪽으로 갔는데 본인이 발연기라 실패. 노처녀긴 해도 나름 배운 여자라 서울의 부자하고 혼담이 오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실패. 게다가 마지막에 음반을 취입하러 일본에 가기 전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남자쪽은 딱히 자살할 만한 동기가 있지도 않았고 유럽 유학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자살?
게다가 윤심덕의 경우는 자살할 만한 동기가 차고 넘치긴 했는데(죽었을때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결혼도 안한 노처녀였다. 물론 지금이야 서른은 초혼연령 수준의 나이니 그렇게 이상해 보일건 없을것 같지만,  
 
이 여자는 90년전 여자다. 나이 스물도 노처녀 취급받던 시절에 서른이면 지금으로써는 최소 30대 후반 내지 40대의 노처녀 정도 포지션이라고 보면 될 듯. 그리고 그나마도 당시는 지금처럼 독신여자에게 관대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독신이라는 것으로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당시 헬조선 수준이 미개하다보니 기껏 노오오오력 해서 성악을 전공하고 와도 써먹을데가 없다보니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래서 연극쪽으로 갔는데 본인이 발연기라 실패. 노처녀긴 해도 나름 배운 여자라 이 사람 저 사람하고 혼담이 오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실패. 게다가 서울의 한 부자한테 몸 대주는거 아니냐는 스캔들도 있었다.
 
그리고 죽기 전 음반을 취입하러 일본에 가기 전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남자쪽은 딱히 자살할 만한 동기가 있지도 않았고(다만 아버지하고 불화가 있긴 했다. 아버지가 존나 잘나가는 기업 사장인데 아들내미는 이으라는 가업은 안 잇고, 글이나 써제끼고 있으니.) 유럽 유학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데 무슨 자살?


그렇다 보니 당시에는 두 사람이 죽은게 아니라 멀리 유럽으로 도망간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물론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렇다 보니 당시에는 두 사람이 죽은게 아니라 멀리 유럽으로 도망간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물론 발견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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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윤심덕이 죽은 후, 윤심덕이 부른 노래가 대박을 치자, 그 레코드회사에서 그 두 사람을 죽인거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윤심덕이 죽은 후, 윤심덕이 부른 노래가 대박을 치자, 그 레코드회사에서 그 두 사람을 죽인거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다.


90년전 미인 기준이 윤심덕의 얼굴이었는지는 몰라도 윤심덕이 미녀라고 쓴 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보고 절망하지 마라.
90년전 미인 기준이 윤심덕의 얼굴이었는지는 몰라도 윤심덕이 미녀라고 쓴 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별로 예쁘지는 않다.


어쨌든 그 배 위에서 그 두 사람은 사라졌고, 설령 그때 유럽에 갔어도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을린 없겠다.
어쨌든 그 배 위에서 그 두 사람은 사라졌고, 설령 그때 유럽에 갔어도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을린 없겠다.

2016년 12월 26일 (월) 20: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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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의 소프라노. 연인으로 알려진 김우진과 함께 대한해협에서 정사(꼐임의 그 정사 말고, 연인남녀가 함께 자살한 것)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증거는 없고,(심지어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이를 당시 기레기들이 그냥 둘이 같이 없어졌으니 둘이가 연인이라 같이 자살한거 아니냐고 추정해서 쓴것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이 자살한건지도 명확치 않다. 시신도 발견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냥 두 사람이 가명을 써서 배에 탔는데 두 사람이 배에서 없어진 정황상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하는 것일 뿐.

게다가 윤심덕의 경우는 자살할 만한 동기가 차고 넘치긴 했는데(죽었을때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결혼도 안한 노처녀였다. 물론 지금이야 서른은 초혼연령 수준의 나이니 그렇게 이상해 보일건 없을것 같지만,

이 여자는 90년전 여자다. 나이 스물도 노처녀 취급받던 시절에 서른이면 지금으로써는 최소 30대 후반 내지 40대의 노처녀 정도 포지션이라고 보면 될 듯. 그리고 그나마도 당시는 지금처럼 독신여자에게 관대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독신이라는 것으로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당시 헬조선 수준이 미개하다보니 기껏 노오오오력 해서 성악을 전공하고 와도 써먹을데가 없다보니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래서 연극쪽으로 갔는데 본인이 발연기라 실패. 노처녀긴 해도 나름 배운 여자라 이 사람 저 사람하고 혼담이 오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실패. 게다가 서울의 한 부자한테 몸 대주는거 아니냐는 스캔들도 있었다.

그리고 죽기 전 음반을 취입하러 일본에 가기 전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남자쪽은 딱히 자살할 만한 동기가 있지도 않았고(다만 아버지하고 불화가 있긴 했다. 아버지가 존나 잘나가는 기업 사장인데 아들내미는 이으라는 가업은 안 잇고, 글이나 써제끼고 있으니.) 유럽 유학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데 무슨 자살?

그렇다 보니 당시에는 두 사람이 죽은게 아니라 멀리 유럽으로 도망간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물론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윤심덕이 죽은 후, 윤심덕이 부른 노래가 대박을 치자, 그 레코드회사에서 그 두 사람을 죽인거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다.

90년전 미인 기준이 윤심덕의 얼굴이었는지는 몰라도 윤심덕이 미녀라고 쓴 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별로 예쁘지는 않다.

어쨌든 그 배 위에서 그 두 사람은 사라졌고, 설령 그때 유럽에 갔어도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을린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