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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의 따까리였다. 보통 동탁의 따까리는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동탁이 서량 시절부터 동탁을 섬겨온 이각 곽사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하진의 부하였다가 동탁에게 흡수된 장료 무리였다. | [[동탁]]의 따까리였다. 보통 동탁의 따까리는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동탁이 서량 시절부터 동탁을 섬겨온 이각 곽사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하진의 부하였다가 동탁에게 흡수된 장료 무리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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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비 전투에서 10만 오나라 대군을 이긴건 레알 실화며 료 라이라이(료래료래)라는 말도 이 때문에 탄생했다. | 합비 전투에서 10만 오나라 대군을 이긴건 레알 실화며 료 라이라이(료래료래)라는 말도 이 때문에 탄생했다. | ||
나중에 오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강도([[장쑤성]] 양저우)에 갔다가 거기서 병사했다. | |||
[[분류:삼국지 인물]] | [[분류:삼국지 인물]] | ||
2018년 6월 17일 (일) 15:18 판
| 이 문서는 三國志에 관련된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역사가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역사적 사실에 각종 구전 민담, 전설 등을 섞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로 구분됩니다. 三國志演義는 단지 재미를 위한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는 中國 소설로 받아들이면 빛이 되지만 역사서 正史三國志처럼 받아들이면 어둠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국지 시대의 中國人과 현재 中共人은 종족, 언어만 빼면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니 삼국지에 심취해 中뽕으로 흑화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169?~222
합비에서 말뚝 박은 사람. 손제리의 천적이다. 오자양장 장악우장서전의 장이 장료이다.
산서성 삭주시 출신이다(안문군 마읍현)
동탁의 따까리였다. 보통 동탁의 따까리는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동탁이 서량 시절부터 동탁을 섬겨온 이각 곽사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하진의 부하였다가 동탁에게 흡수된 장료 무리였다.
장료는 원래 하진의 부하 종사관이었다. 그런데 하진의 명령을 받고 정원에게 파견나갔었는데 이 때 정원이 데려온 여포가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순하는 바람에 장료는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뜬금포 동탁의 부하가 되었다.
동탁이 여포한테 살해당한 후 장료는 여포의 부하로서 이각, 곽사와 싸우지만 여포와 같이 패하고 도망친다. 이 때부터 여포의 유랑생활이 시작되는데 여포는 원소의 부하로 들어가보기도 하고 서주에 가서 유비와 같이 살기도 하는 등 유랑생활을 하는데도 장료는 끝까지 야반도주 안하고 여포를 따랐다.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를 깨뜨리자 장료는 자신의 군을 이끌고 투항했다. 중랑장에 임명되고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장료는 조조에게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최훈이라는 사생팬이 있다고 한다. 료!! 라이라이!!
오빠들이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떠는 존재, 그래서 이 문서도 한때는 장료 폄하적으로 적혀 있었다. 사실 장료의 활약상은 오자양장 문서에서 보는게 더 낫다.
연의 때문에 위나라 최강자로 아는 새끼들이 많지만 최강자는 아니었다.(위나라 최강자는 조인) 물론 하후돈이랑은 다르게 실제로 굉장히 잘싸웠다.
합비 전투에서 10만 오나라 대군을 이긴건 레알 실화며 료 라이라이(료래료래)라는 말도 이 때문에 탄생했다.
나중에 오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강도(장쑤성 양저우)에 갔다가 거기서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