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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클레망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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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 소개 ==
[[프랑스]]의 총리를 번이나 겸임한 새끼. 근데 이새끼가 평범한 프랑스 총리였다면 디시위키에 올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인, 언론인. 프랑스 제 3공화국 수상(재임기간 1906~1909, 1917~1920 차례)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정치활동에 투신, 초기에는 언론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다 1870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 초기에 [[파리 코뮌]]을 지지하는 등 좌파 성향을 보이긴 했지만 [[보불 전쟁]]이후로는 군비 증강과 독일에 대한 외교적 고립정책을 강하게 주장하는 등 애국주의적인 성향 또한 강하게 드러내면서 [[장 조레스]]등의 사회주의자들과는 일찍부터 멀어졌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당시 자신이 주필로 있던 잡지 [새벽 L'Aurore]을 통해 군부와 우익을 비판하고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는 등 기본적으로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에도 반대하는 리버럴의 입장에 가까웠다.
 
1906년~1909년 1차 집권 뒤 물러나 노령으로 사실상 은퇴상태였으나 1917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 프랑스의 전쟁수행능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76세의 나이로 총리로 컴백. 서부전선을 [[페르디낭 포슈]]와 [[앙리 필리프 페탱]]을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강력한 전쟁수행 의지를 보이면서 전시내각을 이끌었다.  


이 개미친싸이코 새끼는 [[1차 세계대전]] 때에 "무조건 전쟁, 죽어도 전쟁, 세상 끝까지 전쟁!" 이라면서 미친 전쟁광 호로소리를 했으며, 덕분에
결국 미국의 참전과 함께 서부전선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낸 독일이 내부붕괴하면서 1차 대전은 연합국의 승리. 프랑스 수상 클레망소는 [[베르사유 조약]]의 연합국 리더 중 하나로 독일에 대한 천문학적 배상과 군사력 억제를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베르사유 조약 직후 노령으로 은퇴하여 회고록 집필등으로 소일하다 1929년 88세로 사망했다.
우라 돌격+반자이 돌격 버금가는 개막장 돌격인 엘랑 비탈 돌격으로 수많은 프랑스 청년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독일이랑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 인간들은 죄다 총살시켜버리고, 감옥에 쳐넣는 개막장 독재를 했다! 이 정도면 거의 1차대전판 [[스탈린]] 이라
해도 할 말 없다. 소속 당도 좌익당이였고, 공산주의가 극좌인 것을 감안해볼 때, 더욱 둘이 비슷하다. 어찌보면 [[빌헬름 2세]]보다 더 미친놈이다.
그나마 이새끼 업적은 프랑스의 사회복지 수준을 크게 높였고,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한 것과 드레퓌스 사건에서 억울하게 사형당할 뻔한 드레퓌스를 구한
것이 있는데, 나중가면 지가 괜한 사람 다 사형시키는 개막장 독재를 한다.
아무튼 이 새끼 집권 시절, 프랑스에서 독일을 조금이라도 옹호하거나, 약간 게르만 냄새나는 행동 했다간 바로 모가지 날라갔다. 니 모가지만 날아가는게
아니라 집안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뭘 모르는 병신들은 이 새끼 이거 극우+우익 아니냐고 할텐데, 클레망소 그새끼 분명한 좌ㅃ..아니 좌익이였다. 근데 지가 무슨 스탈린이라도 되는 냥
== 기타 ==
국정을 운영했다.
이전 버전에서 어쩐 이유에선지 이양반을 프랑스의 [[스탈린]]으로 왜곡하고 있었는데, 클레망소는 1차 대전 막바지에 1년간 수상을 맡았을 뿐이며 실제로 전시내각 수상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프랑스 내부의 유화파들을 억압하긴 했지만 무슨 반대파를 무차별 체포 처형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 화평파였던 조제프 카요 전 총리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것이 클레망소가 반대파에 취한 유일한 실질적 탄압.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민주적 원칙에는 위배되는 결정이긴 했지만 당시 붕괴 직전이었던 프랑스의 내부상황을 생각하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  


== 근데 왜 빨림? ==
한마디로 2차 대전때 영국에 [[윈스턴 처칠]]이라는 걸출한 전시내각 지도자가 있었다면 1차 대전때 프랑스에는 클레망소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 오히려 정치인 클레망소는 1차대전 막바지의 몇 개월을 제외하면 처칠보다 훨씬 자유주의적이었으며 전형적인 공화주의자였다. 프랑스인들이 이전 버전 문서를 본다면 기겁할듯.
이유는 딱 하나. 1차대전에서 독일 물리치고 승리했거든. 독일과 강화하자는 새끼들 다 쳐죽이고, 패배주의자들 싹다 총살한 끝에 기어코 도길을
처바르고 독일한테 베르사유 조약 크리 멕였다.

2015년 12월 24일 (목) 22:32 판

조르주 클레망소
Georges Benjamin Clemenceau
생년월일 1841년 09월 28일 (출생)
1929년 11월 24일 (사망)
국적 프랑스 프랑스
소속 프랑스의 상원의원
(1903년)
프랑스의 총리
(1906년)
프랑스의 총리
(1917년)
정당 급진공화당(1901)

급진사회당(1901~1929

표방이념 중도좌파 ~ 좌익
프랑스 진보주의, 사회민주주의

소개

프랑스의 정치인, 언론인. 프랑스 제 3공화국 수상(재임기간 1906~1909, 1917~1920 두 차례)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정치활동에 투신, 초기에는 언론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다 1870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 초기에 파리 코뮌을 지지하는 등 좌파 성향을 보이긴 했지만 보불 전쟁이후로는 군비 증강과 독일에 대한 외교적 고립정책을 강하게 주장하는 등 애국주의적인 성향 또한 강하게 드러내면서 장 조레스등의 사회주의자들과는 일찍부터 멀어졌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당시 자신이 주필로 있던 잡지 [새벽 L'Aurore]을 통해 군부와 우익을 비판하고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는 등 기본적으로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에도 반대하는 리버럴의 입장에 가까웠다.

1906년~1909년 1차 집권 뒤 물러나 노령으로 사실상 은퇴상태였으나 1917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 프랑스의 전쟁수행능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76세의 나이로 총리로 컴백. 서부전선을 페르디낭 포슈앙리 필리프 페탱을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강력한 전쟁수행 의지를 보이면서 전시내각을 이끌었다.

결국 미국의 참전과 함께 서부전선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낸 독일이 내부붕괴하면서 1차 대전은 연합국의 승리. 프랑스 수상 클레망소는 베르사유 조약의 연합국 리더 중 하나로 독일에 대한 천문학적 배상과 군사력 억제를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베르사유 조약 직후 노령으로 은퇴하여 회고록 집필등으로 소일하다 1929년 88세로 사망했다.

기타

이전 버전에서 어쩐 이유에선지 이양반을 프랑스의 스탈린으로 왜곡하고 있었는데, 클레망소는 1차 대전 막바지에 1년간 수상을 맡았을 뿐이며 실제로 전시내각 수상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프랑스 내부의 유화파들을 억압하긴 했지만 무슨 반대파를 무차별 체포 처형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 화평파였던 조제프 카요 전 총리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것이 클레망소가 반대파에 취한 유일한 실질적 탄압.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민주적 원칙에는 위배되는 결정이긴 했지만 당시 붕괴 직전이었던 프랑스의 내부상황을 생각하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2차 대전때 영국에 윈스턴 처칠이라는 걸출한 전시내각 지도자가 있었다면 1차 대전때 프랑스에는 클레망소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 오히려 정치인 클레망소는 1차대전 막바지의 몇 개월을 제외하면 처칠보다 훨씬 자유주의적이었으며 전형적인 공화주의자였다. 프랑스인들이 이전 버전 문서를 본다면 기겁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