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
|||
| 38번째 줄: | 38번째 줄: | ||
중화민국시기에는 주가 너무 많다고 수많은 주자돌립의 행정구역들을 현자돌림으로 격하시켰다. 이게 지명으로만 전해지게 된다.(e.g 울주(蔚州)가 중화민국때 울현(蔚縣)으로 강등당한게 지금까지 이어짐) | 중화민국시기에는 주가 너무 많다고 수많은 주자돌립의 행정구역들을 현자돌림으로 격하시켰다. 이게 지명으로만 전해지게 된다.(e.g 울주(蔚州)가 중화민국때 울현(蔚縣)으로 강등당한게 지금까지 이어짐) | ||
==한국의 주== | == 한국의 주 == | ||
[[신문왕]]이 9주를 설치하기 전까진 군사행정구역에 가까웠다. 고구려의 경우 성을 그대로 | [[신문왕]]이 9주를 설치하기 전까진 군사행정구역에 가까웠다. 고구려의 경우 성을 그대로 요동성주, 북부여성주와 같은 성주(城州)로 승격시켰고 신라의 경우 요충지에다가 사벌주, 하슬라주, 실직주, 남천주등의 주를 설치했다. 이중에서 사벌주와 하슬라주는 통일이전에 설치되어서 남아있었다. 때문에 주의 머튽은 군주(軍主)라고 했다. | ||
신라가 9주 5소경을 설치한뒤로는 완전 민정행정구역이 되었다. 때문에 주의 머튽이 총관(661년에 채택)이나 도독(785년에 채택)으로 바뀌었다. | 신라가 9주 5소경을 설치한뒤로는 완전 민정행정구역이 되었다. 때문에 주의 머튽이 총관(661년에 채택)이나 도독(785년에 채택)으로 바뀌었다. 신라의 도독은 초창기 한나라의 주자사와 달리 자기가 맡은 주에선 왕과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요직이었다. | ||
발해도 5경 15부 62주를 | 발해도 5경 15부 62주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주는 신라의 군과 똑같은 급이었다. 교과서에서 주밑에 촌장들이 있네 마네 하는데, [[요사]]지리지에 발해의 주와 속현들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현령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
신라가 운지하고 시작된 [[후삼국시대]] | 신라가 운지하고 시작된 [[후삼국시대]]때는 자칭 천주절도사였던 [[의령]]태수 [[왕봉규]]처럼 태수새끼들이 군벌이 되서 [[춘천|광해주]], [[청주]], [[광주시|신주]], [[죽산군|죽주]]등 각종 주가 대거 남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어째 수습하고 등장한 [[고려]]는 [[황주군|황주]], [[진주시|진주]]같은 어째 자신들이 관리할만한 주만 주답게 냅두고 나머지는 사실상 방치하다시피했다. 물론 [[여몽전쟁]]이후 [[공양왕]]때 전국에 감무, 목등 중앙관료를 파견하여 국가재건을 하면서 어째수습이 된다만. | ||
군벌들로 인해 떼거지로 등장한 주는 [[조선]] [[태종]]이 주를 모두 산(山), 천(川), 성(城)등으로 갈아치우면서 정리되었다. | |||
이후엔 중국, 좆본처럼 지명으로만 남게된다. | 이후엔 중국, 좆본처럼 지명으로만 남게된다. | ||
2019년 5월 15일 (수) 00:11 판
행정구역 주
州, State(영어)
천조국과 독일을 비롯한 연방국가에서 쓰이는 지방행정구역단위를 한중일에선 주로 번역한다.
한중일에서도 주를 쓴적이 있다.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죄다 폐지되었다.
동일한 행정구역단위로 방(邦)이 있다. 연방할때 그 방 맞다.
중국의 주
태고시대인 삼황오제때 양주(梁州, 지금의 사천지방), 옹주(雍州, 지금의 관중지방)등의 주가 언급된다.
중국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주는 주나라가 2500개의 마을을 주로 묶은것에서 시작된다.
근데 주나라는 진작에 운지하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바람에 별로 의미가없고 한나라 한무제가 대외원정이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대륙에 13개주를 설치한 것으로 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후한에서도 그대로 13주를 세웠다. 삼국시대때도 오나라가 광주, 서진이 진주를 신설하기 전까진 분열된 형주와 양주를 제외하면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에서 주의 대빵인 자사는 말이 좋아 대빵이지 군 태수보다 의전서열, 대우등 모든것이 떨어지는 병신에 불과했다. 이에 대한 시정을 위해 잠깐 어느정도 군권을 가진 주목(州牧)이 파견되긴 했지만 바로 황건적의 난터져서 좆망크리 ㅅㄱ
하지만 황건적의 난 이후 헬중국 각지에서 할거한 군웅들중 도겸, 원소, 쬬, 윾가놈같이 복수의 군을 거느린 대군벌들이 표면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군의 호족들이 통수때리고 빤쓰런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 똘마니들을 자사, 혹은 도독XX제군사등의 관직을 임명하면서 이전까지 얼굴마담에 불과한 주는 확실한 군보다 급이 높은 행정구역이 되었다.
오호십육국시대 강남으로 수백만의 실향민들이 월남하고 선비족과 같은 오랑캐들이 주를 난립하면서 주가 엄청늘어났다.
예를 들어서 남양군이 있던 자리에 관중지방의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하니까 남양군일대에 양양군추가해서 옹주(雍州)가 설치되고 진강지역에 중원의 이주민 수백만이 정착하니까 진강시만한 넓이에 남연주,남예주등의 주들이 설치되었다.
북조의 경우 전체인구가 수십만이었던 오랑캐들이 바퀴벌레급 물량을 자랑하던 짱깨들을 갑자기 먹어서 행정력이 딸린건지 주를 난발해댔다.
대표적으로 북위대에 병주에는 5개의 주가 신설되었을 정도였다.
때문에 수나라가 대륙을 통일한 시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대륙에는 무려 241개의 주가 설치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주가 기존의 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중국의 지방행정제도를 주현제라고 하는것.
암튼 그렇게 쭉 살아오다가 어떤이유로 부로 승격되면 그 이름그대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명대에는 그런거 없고 주이름 그대로 부로 승격되었다. (e.g 매주부(梅州府))
중화민국시기에는 주가 너무 많다고 수많은 주자돌립의 행정구역들을 현자돌림으로 격하시켰다. 이게 지명으로만 전해지게 된다.(e.g 울주(蔚州)가 중화민국때 울현(蔚縣)으로 강등당한게 지금까지 이어짐)
한국의 주
신문왕이 9주를 설치하기 전까진 군사행정구역에 가까웠다. 고구려의 경우 성을 그대로 요동성주, 북부여성주와 같은 성주(城州)로 승격시켰고 신라의 경우 요충지에다가 사벌주, 하슬라주, 실직주, 남천주등의 주를 설치했다. 이중에서 사벌주와 하슬라주는 통일이전에 설치되어서 남아있었다. 때문에 주의 머튽은 군주(軍主)라고 했다.
신라가 9주 5소경을 설치한뒤로는 완전 민정행정구역이 되었다. 때문에 주의 머튽이 총관(661년에 채택)이나 도독(785년에 채택)으로 바뀌었다. 신라의 도독은 초창기 한나라의 주자사와 달리 자기가 맡은 주에선 왕과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요직이었다.
발해도 5경 15부 62주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주는 신라의 군과 똑같은 급이었다. 교과서에서 주밑에 촌장들이 있네 마네 하는데, 요사지리지에 발해의 주와 속현들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현령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신라가 운지하고 시작된 후삼국시대때는 자칭 천주절도사였던 의령태수 왕봉규처럼 태수새끼들이 군벌이 되서 광해주, 청주, 신주, 죽주등 각종 주가 대거 남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어째 수습하고 등장한 고려는 황주, 진주같은 어째 자신들이 관리할만한 주만 주답게 냅두고 나머지는 사실상 방치하다시피했다. 물론 여몽전쟁이후 공양왕때 전국에 감무, 목등 중앙관료를 파견하여 국가재건을 하면서 어째수습이 된다만.
군벌들로 인해 떼거지로 등장한 주는 조선 태종이 주를 모두 산(山), 천(川), 성(城)등으로 갈아치우면서 정리되었다.
이후엔 중국, 좆본처럼 지명으로만 남게된다.
일본의 주
율령국 한두개를 묶어서 주라고 불렀다. 큐슈도 이렇게 9개 율령국을 9주로 불렀기때문에 큐슈가 된 것.
물론 짱깨, 좆선과 함께 좆본에서도 지명으로만 전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