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20번째 줄: 20번째 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갚으라는 명을 내려 일본측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무너트리라는 명령이니 알아서 철수해라 라고 공격의도를 대놓고 보일정도로 각오하고 왔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갚으라는 명을 내려 일본측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무너트리라는 명령이니 알아서 철수해라 라고 공격의도를 대놓고 보일정도로 각오하고 왔다.  
여기 참여한 의병장들은 이미 여기가 죽을자리라는걸 알고있을 정도였다.
여기 참여한 의병장들은 이미 여기가 죽을자리라는걸 알고있을 정도였다. 권율과 곽재우도 구원을 포기했다.
 
어느정도였다면 2차 진주성 최강네임드인 황진은 원래 밖에서 도와주려 했는대 성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들어갔고 떠나기전 곽재우가 황진에계  그곳으로 가면 살기 힘들다고 했고 황진은 약속해서 할수 없다고 말했  그 권율조차 구원을 포기했다.


나름 내임드인 정기룡도 진주성으로와서 "힘내" 하고 갔다.  그러니까 여기온분들은  죽을자리 찾아 온 상남자들이시다..     
나름 내임드인 정기룡도 진주성으로와서 "힘내" 하고 갔다.  그러니까 여기온분들은  죽을자리 찾아 온 상남자들이시다..     

2015년 10월 9일 (금) 18:32 판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갓갓민 장군이 이끄신 대첩으로 3대첩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원래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군이 현명했다

화약을 충분히 마련하고 해자를 깊이 판 후 의연히 대처했다. 경상우병사가 패한 후 달려와 성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지휘권 혼란을 우려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2차 진주성 전투때 고만고만한 지휘관들의 분열이 있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투 마지막에 시체 속에서 쏜 왜군의 조총탄에 김시민 장군이 전사했지만 조선군이 크게 승리한다.

이게 1차 대첩인데...문제는 이긴건 좋은데 두번째에서 좆털린다

2차 전투

조선땅에 있던 10만 왜군이 한번에 몰려와 진주성을 공격했다. (참고로 침공군 거의 전병력이다. ) 참고로 당시 관의군 다합해 수비군은 수천명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갚으라는 명을 내려 일본측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무너트리라는 명령이니 알아서 철수해라 라고 공격의도를 대놓고 보일정도로 각오하고 왔다. 여기 참여한 의병장들은 이미 여기가 죽을자리라는걸 알고있을 정도였다. 권율과 곽재우도 구원을 포기했다.

나름 내임드인 정기룡도 진주성으로와서 "힘내" 하고 갔다. 그러니까 여기온분들은 죽을자리 찾아 온 상남자들이시다..

1차 때보다 오래 버텼지만 숫적 열세를 감당 할 수 없어 성이 함락당하고 양민 7만명이 학살당했다.


지휘관이 너무 많아 내분이 있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는대 의견일치가 안된적도 없었고. 다들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만 서예원이 경비를 재대로 안해서 성벽이 무너진거였고. 에초에 수천으로 10만 대군을 그것도 질적으로 차이나는 상황에서 막아내려는것 자체가 절망적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