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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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투==
==2차 전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갚으라는 명을 내려 조선땅에 있던 10만 왜군이 한번에 몰려와 진주성을 공격했다.  
조선땅에 있던 10만 왜군이 한번에 몰려와 진주성을 공격했다. (참고로 침공군 거의 전병력이다. )
 
참고로 당시 관의군 다합해 수비군은 수천명
1차 때보다 오래 버텼지만 숫적 열세를 감당 할 수 없어 성이 함락당하고 양민 7만명이 학살당했다.

2015년 10월 9일 (금) 18:11 판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갓갓민 장군이 이끄신 대첩으로 3대첩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원래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군이 현명했다

화약을 충분히 마련하고 해자를 깊이 판 후 의연히 대처했다. 경상우병사가 패한 후 달려와 성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지휘권 혼란을 우려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2차 진주성 전투때 고만고만한 지휘관들의 분열이 있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투 마지막에 시체 속에서 쏜 왜군의 조총탄에 김시민 장군이 전사했지만 조선군이 크게 승리한다.

이게 1차 대첩인데...문제는 이긴건 좋은데 두번째에서 좆털린다

2차 전투

조선땅에 있던 10만 왜군이 한번에 몰려와 진주성을 공격했다. (참고로 침공군 거의 전병력이다. ) 참고로 당시 관의군 다합해 수비군은 수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