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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일본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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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지 좆대로 역사왜곡하고 지랄 발광하는 쪽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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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뜻인가?==
==무슨뜻인가?==

2016년 12월 30일 (금) 10:21 판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쓰레기 같습니다.
이 쓰레기는 쓰레기보다 더 쓰레기 같아서 쓰레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이 문서 보고 쓰레기 생각한 당신, 당장 쓰레기한테 사과해.
주의! 이 새끼는 구라를 존나 잘 깝니다.
이 문서는 구라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밥먹듯이 까는 병신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새끼들을 보게 된다면 즉시 아갈창을 위아래로 분리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뜻인가?

알고있겠지만, 일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더 자세히

700여년 간, 한반도의 가야·백제·고구려·신라·백제에 의해 차례대로 일본열도를 정복 당했던 치욕의 왜국 역사를 숨기고, 

한반도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함으로써, 백제 31대 의자왕의 손자인 사인친왕(舍仁親王 ☜부여풍의 아들)이 왜곡편찬한 왜국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西記)를 정사화(正史化) 하려는 아주 나쁜 의도가 깔려 있다.


(9/11) 서기 660년에 멸망된 백제 31대 의자왕은 백제 백성 2만5천명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가 낙양에서 쓸쓸히 죽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 오는 '성주풀이'에 의자왕의 한이 서려 있고, 현재 의자왕의 능은  찾을 수가 없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장은 서기 663년에 백제 부흥 전쟁 실패 후에 일본으로 돌아 가 절치부심 중 임신란을 성공시켜 왜국 40대 덴무(天武) 왕이 됐고, 

그의 아들인 사인친왕은 서기 712년에 일본서기를 왜곡편찬하면서, 멸망한 치욕의 모국 백제 관련 기록을 모두 삭제 했고, 

또한 한반도 세력에 의한 왜국 통치 기록 모두 삭제·조작·왜곡을 해 놓았다.

당시 조작·왜곡이 불가능했던 부분은 "궐사 8대"라고 기록해 버렸다.

같이보기

J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