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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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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초딩 2~3학년 나이에 반강제로 왕위에 올랐다가 쫒겨난 뒤 모가지까지 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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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3일 (토) 13:40 판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ㄴ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초딩 2~3학년 나이에 반강제로 왕위에 올랐다가 쫒겨난 뒤 모가지까지 썰렸다.

고려의 역대 왕
32대 우왕 33대 창왕 34대 공양왕

고려의 33대 왕이다. 우왕의 아들. 이름은 창.

우왕이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의 책임을 지고 형식적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자 즉위했다. 당시 이성계는 창왕 말고 다른 종친을 추대하려 했으나 조민수와 이색이 게거품 무는 바람에 실패하고 창이 8살의 왕위에 올랐다.

당연히 실권 없는 왕이었는데 그나마 자신을 보호해줄 세력인 조민수, 이색은 이성계와의 정치싸움 끝에 패하여 실각했고 조정은 전부 이성계 일파가 장악해버렸다. 정도전은 창왕 재위 기간에 고려 토지 제도를 고치는 등 개혁을 했으나 당연히 창왕을 위해서 하는게 아닌 새왕조 개창을 위해 하는 사전 작업일 뿐이었다. 개혁의 성과와 이익이 현 고려왕조나 왕이 아닌 이성계 일파의 이득으로 흘러간 것은 당연.

우왕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또 폐가입진이라는 논리하에 재위한지 1년 반만에 폐위당해 강화도로 유배갔고 공양왕에 의해 9살의 나이에 반역죄로 참수당했다. 흔히 사극에선 사약 먹고 뒈짖하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론 모가지가 썰렸다. 왕씨대학살과 더불어 무신세력 이성계 일파의 잔인성을 볼 수 있는 부분. 불쌍.

이 쪽도 우왕처럼 고려사에는 '신창 열전'이라고 해서, 왕호도 못 받았다가 후세에 와서야 왕이라고 불러주는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