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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쯤 되면 면제(綿諸), 곤(緄), 적(翟), 원(豲), 의거(義渠), 대려(大荔), 오씨(烏氏), 구연(朐衍)의 서융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들의 머튽은 왕을 칭한 의거부터 시작하여 눈치를 봐가면서 중원제후국이나 쓰는 작위를 칭했고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거, 대려를 제외하면 전부 좆밥이었는지 [[진 목공]]이후 벌크업한 진나라한테 쓸려나갔고 대려가 B.C 461년, 진여공의 공격에 망했다. 이들 중 가장 강했다는 의거는 대놓고 왕을 칭하면서 진나라와 혼신의 맞다이를 뜨고 있었다. 그러나 [[소양왕]]때 머튽새끼가 좆대가리를 간수안한 덕분에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자기 친척(?)<ref>사실 진나라도 서융계통의 이민족이 세운 국가기 때문에 얘네들하고 친척사이라고 할 수 있다.</ref>들을 족친 뒤 농서군, 북지군, 상군을 설치했다.
춘추시대쯤 되면 면제(綿諸), 곤(緄), 적(翟), 원(豲), 의거(義渠), 대려(大荔), 오씨(烏氏), 구연(朐衍)의 서융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들의 머튽은 왕을 칭한 의거부터 시작하여 눈치를 봐가면서 중원제후국이나 쓰는 작위를 칭했고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거, 대려를 제외하면 전부 좆밥이었는지 [[진 목공]]이후 벌크업한 진나라한테 쓸려나갔고 대려가 B.C 461년, 진여공의 공격에 망했다. 이들 중 가장 강했다는 의거는 대놓고 왕을 칭하면서 진나라와 혼신의 맞다이를 뜨고 있었다. 그러나 [[소양왕]]때 머튽새끼가 좆대가리를 간수안한 덕분에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자기 친척(?)<ref>사실 진나라도 서융계통의 이민족이 세운 국가기 때문에 얘네들하고 친척사이라고 할 수 있다.</ref>들을 족친 뒤 농서군, 북지군, 상군을 설치했다.


이렇게 진나라한테 정복당한 많은 강족 주민들은 진여공때 무익원검(無弋爰劒)을 따라 지금의 [[청해성]]서녕지역으로 ㅌㅌ해서 그 지역에 눌러앉게 되었다. 일부는 진헌공(B.C 384~362)의 공격에 지려서 [[사천성]]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나라한테 정복당한 많은 강족 주민들은 진여공때 무익원검(無弋爰劒)을 따라 지금의 [[청해성]]서녕지역으로 ㅌㅌ해서 그 지역에 눌러앉게 되었다. 일부는 진헌공(B.C 384~362)의 공격에 지려서 [[사천성]](월수군, 광한군), [[감숙성]] 남부(무도군)등지로 이주하기도 했다. 또 옛날처럼 관중지방에 그대로 눌러앉은 이도 있었다.  


이후 한나라에 깽판을 쳤다가 한무제한테 토벌당했다. 이것때문에 [[금성군]]의 군역이 넓어짐.
이후 서녕지역에 근거한 이들은 [[한나라]]에 깽판을 쳤다가 한무제한테 토벌당했고 새로이 신설된 금성군에 내속되었다. 후한초 혼란기에 또 요오시하고 깽판을 쳤으나 또 털리고 노예가 되는 것을 반복했다.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강족들이 안정군, 한양군, 농서군, 그리고 관중지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후한초기에 서녕지역을 기반으로 깽판치다가 털리고 노예하는 것을 반복했다. 이러면서 수많은 강족들이 안정군, 한양군, 농서군, 그리고 관중지역에 정착했다.
 
또한 칭하이 말고도 [[사천성]]지역인 광한군과 월수군, [[감숙성]]남부인 무도군지역에도 살고 있었다.  


이중 관중지역의 강족들은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다가 [[오호십육국시대]]때 강족이 세운 후진이 등장했다 띨망하면서 한족에 동화되었다. 칭하이에 살던 강족들은 [[토번]]의 압박을 피해 [[영하회족자치구]], [[섬서성]]북부지역으로 이주했으나 그근처를 기반으로 한 [[서하]]가 [[몽골제국]]에게 멸망하고 인종청소를 당하면서 같이 사라졌다.  
이중 관중지역의 강족들은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다가 [[오호십육국시대]]때 강족이 세운 후진이 등장했다 띨망하면서 한족에 동화되었다. 칭하이에 살던 강족들은 [[토번]]의 압박을 피해 [[영하회족자치구]], [[섬서성]]북부지역으로 이주했으나 그근처를 기반으로 한 [[서하]]가 [[몽골제국]]에게 멸망하고 인종청소를 당하면서 같이 사라졌다.  

2020년 1월 8일 (수) 02:50 판

듕귁소수민족. 헬중국에서 고대의 북방계 소수민족들 상당수는 짱깨 인구빨에 동화크리먹어서 사라진 경우가 많았는데, 예네들은 즈어기 은나라때부터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살아있다.

양을 기르면서 밭농사를 부업으로 했던 유목민들로 씨족의 명칭은 딱히 없고 12세이후에 혼인을 했으며 형사취수제를 시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력이 커지면 스스로가 분열되고 세력이 병신이면 좀더 센놈밑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지형빨을 타서 산과 골짜기에서의 싸움은 잘하는데 야전에선 개병신이었다고 한다.

또한 굳세고 강하며 용감하고 사나웠으며 바이킹처럼 싸우다 죽는 것을 길하게 여겼다.

역사

고대 강족은 감숙성, 섬서성, 청해성, 하남성서부[1]와 같이 중국 서부지방에 흩어져 살았다고 하며 융(戎)이라고도 불렸다. 한마디로 고대 강족은 서융의 원조라고 보면 된다.

은나라시절엔 은나라의 인신공양제물로 쓰이거나, 불알이 따인 다음 왕의 노예가 되거나(환관의 효시로 보임)로 부려지는 등 은나라의 빵셔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섬서, 감숙등 은나라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이들은 이래저래 정착촌을 형성하고 자신들만의 국가를 형성했다.

춘추시대쯤 되면 면제(綿諸), 곤(緄), 적(翟), 원(豲), 의거(義渠), 대려(大荔), 오씨(烏氏), 구연(朐衍)의 서융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들의 머튽은 왕을 칭한 의거부터 시작하여 눈치를 봐가면서 중원제후국이나 쓰는 작위를 칭했고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거, 대려를 제외하면 전부 좆밥이었는지 진 목공이후 벌크업한 진나라한테 쓸려나갔고 대려가 B.C 461년, 진여공의 공격에 망했다. 이들 중 가장 강했다는 의거는 대놓고 왕을 칭하면서 진나라와 혼신의 맞다이를 뜨고 있었다. 그러나 소양왕때 머튽새끼가 좆대가리를 간수안한 덕분에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자기 친척(?)[2]들을 족친 뒤 농서군, 북지군, 상군을 설치했다.

이렇게 진나라한테 정복당한 많은 강족 주민들은 진여공때 무익원검(無弋爰劒)을 따라 지금의 청해성서녕지역으로 ㅌㅌ해서 그 지역에 눌러앉게 되었다. 일부는 진헌공(B.C 384~362)의 공격에 지려서 사천성(월수군, 광한군), 감숙성 남부(무도군)등지로 이주하기도 했다. 또 옛날처럼 관중지방에 그대로 눌러앉은 이도 있었다.

이후 서녕지역에 근거한 이들은 한나라에 깽판을 쳤다가 한무제한테 토벌당했고 새로이 신설된 금성군에 내속되었다. 후한초 혼란기에 또 요오시하고 깽판을 쳤으나 또 털리고 노예가 되는 것을 반복했다.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강족들이 안정군, 한양군, 농서군, 그리고 관중지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중 관중지역의 강족들은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다가 오호십육국시대때 강족이 세운 후진이 등장했다 띨망하면서 한족에 동화되었다. 칭하이에 살던 강족들은 토번의 압박을 피해 영하회족자치구, 섬서성북부지역으로 이주했으나 그근처를 기반으로 한 서하몽골제국에게 멸망하고 인종청소를 당하면서 같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이들은 광한군과 무도군에서 지금의 아바지역인 문산군, 음평군 일대로 이주한 놈들과 월수군에 그대로 남은 놈들뿐이다.

  1. 돈황지역에 살던 애들이 육혼(陸渾, 現 하남성 쑹현)등 하남성서부까지 내려와 중원제후국을 상대로 깽판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한나라, 위나라한테 다굴쳐맞은 뒤 간쑤성일대로 빤쓰런한 일부를 제외하면 완전히 한족화, 혹은 멸족크리를 타고 망했다.
  2. 사실 진나라도 서융계통의 이민족이 세운 국가기 때문에 얘네들하고 친척사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