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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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이 문제였지 무용가로서의 실력은 ㅆㅆㅅㅌㅊ였기에 당시 인텔리 모시기에 혈안이 되있던 [[김일성|애미쳐뒤진 혹부리]]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혹부리새끼는 지금 [[옥류관]]자리에 있던 3층짜리 동일관<ref>술집이었다.</ref>을 최승희에게 무용학교건물로 줬고 여기서 수제자인 [[김백복]]등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물론 이 건물은 [[6.25 전쟁]]때 [[미국|갓조국]]이 평양 초토화시키면서 통구이가 된다. | 인성이 문제였지 무용가로서의 실력은 ㅆㅆㅅㅌㅊ였기에 당시 인텔리 모시기에 혈안이 되있던 [[김일성|애미쳐뒤진 혹부리]]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혹부리새끼는 지금 [[옥류관]]자리에 있던 3층짜리 동일관<ref>술집이었다.</ref>을 최승희에게 무용학교건물로 줬고 여기서 수제자인 [[김백복]]등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리고 공훈배우, 인민배우라는 칭호까지 얻으면서 미친듯이 잘나가게 되었다. <ref>물론 이 건물은 [[6.25 전쟁]]때 [[미국|갓조국]]이 평양 초토화시키면서 통구이가 된다.</ref> | ||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주은래]]의 주선으로 경극배우 [[매란방]]과 경극에 대한 담론을 존나게 주고 받았고 휴전이후 1950년대에 중국, 북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중국 [[경극]]과 북괴 초기 무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주은래]]의 주선으로 경극배우 [[매란방]]과 경극에 대한 담론을 존나게 주고 받았고 휴전이후 1950년대에 중국, 북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중국 [[경극]]과 북괴 초기 무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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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가 살던 시대 헬조선은 [[똥군기]]가 사회전반에 만연했는데도 '어 이건좀... 아니지 않나요?'소리들을정도면 말다했지. | 최승희가 살던 시대 헬조선은 [[똥군기]]가 사회전반에 만연했는데도 '어 이건좀... 아니지 않나요?'소리들을정도면 말다했지. | ||
자기 제자들을 심심하면 갈궈댔다고 한다. ([[김백복]]슨상님 피셜) | 자기 제자들을 심심하면 갈궈댔다고 한다. ([[김백복]]<ref>월북이후 최승희가 양성한 제자중에서도 최고엘리트였다고 한다. 안막의 친척과 혼인했고 [[1.4 후퇴]]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해서 한국 현대무용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ref>슨상님 피셜) | ||
2018년 12월 5일 (수) 00: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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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
한국 근현대무용 그자체나 다름없던 전설적인 한국의 무용가. 무용의 경우 한국 현대무용의 시작을 최승희로 둘 만큼 거의 신에 가까운 대우를 받지만 개인으로서는 친일문제, 월북문제, 본인의 밥말아먹은 인성등으로 인해 이런저런 논란이 굉장히 많다.
초기
강원도 홍천군출신이라는 말이 많지만 카더라 통신빨 정보라서 진짜 고향은 아무도 모른다.
숙명여고[1]를 다닌뒤 슨상이 되기 위해 경성사범학교 입학시험서 7등에 등극했지만 나이제한으로 떨어졌다.
이후 방송인으로 일하던 오빠의 권유로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이시이 바쿠의 무용단에서 무용가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머튽이던 이시이 바쿠의 건강문제등으로 바쿠의 무용단이 망테크를 타자 혼자 한국으로 런해서 최승희 무용 연구소를 차리고 무용을 시작했다. 물론 당시 조선에서 최승희에 대한 부정적인 카더라 통신이 쫙 퍼져있었고 무용자체가 당시 조선에선 외계인취급이었던지라 폭망. 이후 이시이 바쿠밑에서 재수학을 한 뒤 1932년 제대로 성공한 무용가가 되기 시작했다.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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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이 중일전쟁터뜨리기 전까지는 최승희의 리즈시절로 뽑힌다. 후원자로 여운형, 설국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같은 거물을 두고 있었고, 한중일 예술인들은 물론 순회공연을 돌면서 갓조국의 찰리 채플린,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페인의 파블로 피카소등 거물급 예술인들이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광광우렀을 정도인데다 쪽숭이들이 전쟁만 안터뜨렸으면 할리우드까지 갈 수 있었던 갓-무용가가 되었다.
망테크 -친일과 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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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좆본머튽님들 돈따라 좆본군들 앞에서 여러차례 위문공연을 하면서 좆본제국을 찬양하고 헌금도 여러차례 헌납하는 친일짓을 저지르게 된다. 덕분에 이전까지 뛰어난 무용가로서의 위상에는 금이갔고 비난여론도 존나 거세졌다. 그으으으나마 남편인 안막이 좌익활동을 하면서 좆본제국에 항거했다만 빨갱이라서....
물론 본인도 이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이라도 한건지 1946년 중국에 고립되었다 귀국한 뒤 '그 동안에 일본에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친일을 했다는 것은 변명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나 최승희가 해방된 조국에 와서 속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코리안 발레를 창건하는 것으로 이바지하겠다'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기레기의 말장난과 이전부터 유명했던 최승희 본인의 밥말아쳐먹은 인성때문에 친일짓하고도 개수작부린다는 인식이 확산되서 엄청난 비난여론에 시달리게 되었다. 최승희 본인은 남편이 독립운동가라서 커버쳐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충격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승희는 친일파 참교육때 자기도 썰릴까봐 나온 두려움, 이전에 연안파로서 소련군정에 있던 남편 안막 + 애미쳐뒤진 혹부리씨발롬의 협박+사탕발림으로 인해 런승만마저도 수기편지를 써가며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1946년 7월 20일 월북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안막과 최승희 사이에서 나온 딸 안성희는 엄마가 월북하면서 같이 월북을 하게 된다.
월북이후 숙청
인성이 문제였지 무용가로서의 실력은 ㅆㅆㅅㅌㅊ였기에 당시 인텔리 모시기에 혈안이 되있던 애미쳐뒤진 혹부리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혹부리새끼는 지금 옥류관자리에 있던 3층짜리 동일관[2]을 최승희에게 무용학교건물로 줬고 여기서 수제자인 김백복등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리고 공훈배우, 인민배우라는 칭호까지 얻으면서 미친듯이 잘나가게 되었다. [3]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주은래의 주선으로 경극배우 매란방과 경극에 대한 담론을 존나게 주고 받았고 휴전이후 1950년대에 중국, 북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중국 경극과 북괴 초기 무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지만 1958년 혹부리새끼가 한설야를 썰기위해 카프계열 작가들을 단체로 숙청하고 댕겼는데, 이때 남편인 안막이 숙청당한다. 그리고 이전부터 혹부리와 사이가 영좋지 않았던 최승희는 혹부리의 갑작스런 집단공연요구에 빡쳐 존나 싸우다가 혹부리한테 숙청당하기 직전까지 가는 수준이 되었다.[4]
하지만 도서정리사업시기 고자, 무뇌봉과 함께 숙청당한다.
사후
80년대 혹부리가 무의식적으로 '최승희 무용하나는 끝내줬지'하면서 복권각이 터졌고 결국 2003년 완전히 복권되었다. 물론 최승희만 복권되었고 남편인 안막과 도서정리사업시기 세트로 숙청된 안성희의 복권? 그런거 없다.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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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해서 인성 밥말아먹은 꼰대였다. ㄹㅇ 악마의 재능
최승희가 살던 시대 헬조선은 똥군기가 사회전반에 만연했는데도 '어 이건좀... 아니지 않나요?'소리들을정도면 말다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