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빛과어둠}}{{춤}}{{친일파}}{{심플/북괴}}{{인성쓰레기}}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 한국 근현대무용 그자체나 다름없던 전설적인 한국...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빛과어둠}}{{춤}}{{친일파}}{{심플/북괴}}{{인성쓰레기}}
{{극과극}}{{춤}}{{친일파}}{{심플/북괴}}{{인성쓰레기}}{{심플/숙청}}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
21번째 줄: 21번째 줄:


== 망테크 -친일과 월북 ==
== 망테크 -친일과 월북 ==
{{작성중}}
{{실망}}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좆본머튽님들 돈따라 좆본군들 앞에서 여러차례 위문공연을 하면서 좆본제국을 찬양하고 헌금도 여러차례 헌납하는 친일짓을 저지르게 된다. 덕분에 이전까지 뛰어난 무용가로서의 위상에는 금이갔고 비난여론도 존나 거세졌다. 그으으으나마 남편인 [[안막]]이 좌익활동을 하면서 좆본제국에 항거했다만....
 
물론 본인도 이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이라도 한건지 1946년 중국에 고립되었다 귀국한 뒤 '그 동안에 일본에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친일을 했다는 것은 변명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나 최승희가 해방된 조국에 와서 속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코리안 발레를 창건하는 것으로 이바지하겠다'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기레기]]의 말장난때문에 친일짓하고도 개수작부린다는 인식이 확산되서 엄청난 비난여론에 시달리게 되었다. 최승희 본인은 남편이 독립운동가라서 커버쳐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충격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승희는 친일파 참교육때 자기도 썰릴까봐 나온 두려움, 이전에 [[연안파]]로서 [[소련군정]]에 있던 남편 안막 + [[김일성|애미쳐뒤진 혹부리씨발롬]]의 협박+사탕발림으로 인해 [[런승만]]마저도 수기편지를 써가며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1946년 7월 20일 [[월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1. 1946년 귀국이후 본인의 친일행적이 병신임을 인정<br>
2. 근데 기레기가 이걸 이상하게 포장해서 오보<br>
3. 본인의 삽질로 이 오보로 터진 비난여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당황함<br>
4. 대중의 인식에 친일파로서의 이미지가 존나게 박혀서 좆되기 직전임<br>
5. 근데 이상황에서 안막과 혹부리의 사탕발림 + 협박<br>
6. 월북!!!
 
이랬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안막과 최승희 사이에서 나온 딸 [[안성희]]는 엄마가 월북하면서 같이 월북을 하게 된다.
 
== 월북이후 숙청 ==
 
인성이 문제였지 무용가로서의 실력은 ㅆㅆㅅㅌㅊ였기에 당시 인텔리 모시기에 혈안이 되있던 [[김일성|애미쳐뒤진 혹부리]]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혹부리새끼는 지금 [[옥류관]]자리에 있던 3층짜리 동일관<ref>술집이었다.</ref>을 최승희에게 무용학교건물로 줬고 여기서 수제자인 [[김백복]]등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물론 이 건물은 [[6.25 전쟁]]때 [[미국|갓조국]]이 평양 초토화시키면서 통구이가 된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주은래]]의 주선으로 경극배우 [[매란방]]과 경극에 대한 담론을 존나게 주고 받았고 휴전이후 1950년대에 중국, 북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중국 [[경극]]과 북괴 초기 무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지만 1958년 혹부리새끼가 [[한설야]]를 썰기위해 카프계열 작가들을 단체로 숙청하고 댕겼는데, 이때 남편인 안막이 숙청당한다. 그리고 이전부터 혹부리와 사이가 영좋지 않았던 최승희는 혹부리의 갑작스런 집단공연요구에 빡쳐 존나 싸우다가 혹부리한테 숙청당하기 직전까지 가는 수준이 되었다.<ref>아마 이때 [[주은래]]가 아니었다면 진짜 숙청당했을 것이다.</ref>
 
하지만 [[도서정리사업]]시기 [[심영(배우)|고자]], [[무뇌봉]]과 함께 숙청당한다.
 
== 사후 ==
 
80년대 혹부리가 무의식적으로 '최승희 무용하나는 끝내줬지'하면서 복권각이 터졌고 결국 2003년 완전히 복권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