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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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소스는 장작더미위에서 화형을 당할 뻔했지만 솔론의 말을 상기하고 [[아폴론]]의 이름을 외치더니 불타오르던 장작더미는 비가 내리면서 불이 꺼졌고 이를 보고 와 진짜 신이 도와준 놈이네 하면서 지린 키루스가 크로이소스를 자신의 책사로 삼았다....고 헤로도토스가 기록을 했다. 근데 올림피아 전차경주에서 우승 축하를 위해 만들어진 바킬리데스의 송가에는 아폴로에 의해 히페르보레이오스의 땅으로 끌려갔다고 나오고 다른 기록에선 사르디스 함락이후 크로이소스는 처형당했다고 나온다. 진실은 저너머에... | 크로이소스는 장작더미위에서 화형을 당할 뻔했지만 솔론의 말을 상기하고 [[아폴론]]의 이름을 외치더니 불타오르던 장작더미는 비가 내리면서 불이 꺼졌고 이를 보고 와 진짜 신이 도와준 놈이네 하면서 지린 키루스가 크로이소스를 자신의 책사로 삼았다....고 헤로도토스가 기록을 했다. 근데 올림피아 전차경주에서 우승 축하를 위해 만들어진 바킬리데스의 송가에는 아폴로에 의해 히페르보레이오스의 땅으로 끌려갔다고 나오고 다른 기록에선 사르디스 함락이후 크로이소스는 처형당했다고 나온다. 진실은 저너머에... | ||
그리고 리디아를 정복하면서 소아시아 해안지역에 있던 [[이오니아]]의 식민도시들도 단번에 쓸려나갔지만 아래에 나오는 신바빌로니아정복을 위해 키루스가 철수했기에 그리스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캄비세스 2세|아들]]의 이집트 정복이후 최강자가 된 페르시아에 집권한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를 노리면서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 |||
신바빌로니아 정복의 경우 왕 나보니두스에 대한 민심이반을 구실로 기원전 539년 10월에 한방에 밀어버렸고 당시 신바빌로니아 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유다 왕국]], [[시리아]]왕국도 같이 페르시아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유다 왕국 한정으로 바빌론에 압송되었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성전을 짓도록 허가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은 이민족의 왕인 키루스를 메시아라고 칭송하기에 이른다. | 신바빌로니아 정복의 경우 왕 나보니두스에 대한 민심이반을 구실로 기원전 539년 10월에 한방에 밀어버렸고 당시 신바빌로니아 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유다 왕국]], [[시리아]]왕국도 같이 페르시아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유다 왕국 한정으로 바빌론에 압송되었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성전을 짓도록 허가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은 이민족의 왕인 키루스를 메시아라고 칭송하기에 이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