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국부}}{{존나셈}}{{역사인물}} == 프로필 == *고대 페르시아어 : Kūruš *히브리어 : כורש *라틴어 : Cyrus *페르시아어 : کوروش بزر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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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가 성인이 된것을 보고받은 하르파고스는 비밀리에 반란을 모의했고 키루스는 기적의 선동방법<ref>먼저 자신이 메디아에게서 페르시아의 왕으로 임명되었다고 구라를 친다음 주민들에게 가시덤불을 베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개같이 가시덤불을 벤 주민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니들은 일하는게 좋냐 놀고먹는게 좋냐?'라는 질문을 했다. 당연히 주민들은 '당연히 놀고먹는게 최고임'이라고 말했고 키루스는 이에 대해 내가 까라는 대로만 하면 언제든지 놀고먹을 수 있다고 한번에 주민들을 선동했다.</ref>으로 페르시아의 주민들을 선동한 뒤에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티아게스는 하르파고스를 진압군 머튽으로 보냈지만 요오시 하던 하르파고스는 통수 맛깔나게 후리고 키루스와 함께 메디아를 정복했다. 아스티아게스는 친정을 했지만 좆발리고 노예가 되었다.  
키루스가 성인이 된것을 보고받은 하르파고스는 비밀리에 반란을 모의했고 키루스는 기적의 선동방법<ref>먼저 자신이 메디아에게서 페르시아의 왕으로 임명되었다고 구라를 친다음 주민들에게 가시덤불을 베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개같이 가시덤불을 벤 주민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니들은 일하는게 좋냐 놀고먹는게 좋냐?'라는 질문을 했다. 당연히 주민들은 '당연히 놀고먹는게 최고임'이라고 말했고 키루스는 이에 대해 내가 까라는 대로만 하면 언제든지 놀고먹을 수 있다고 한번에 주민들을 선동했다.</ref>으로 페르시아의 주민들을 선동한 뒤에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티아게스는 하르파고스를 진압군 머튽으로 보냈지만 요오시 하던 하르파고스는 통수 맛깔나게 후리고 키루스와 함께 메디아를 정복했다. 아스티아게스는 친정을 했지만 좆발리고 노예가 되었다.  


=== 리디아 정복 ===
=== 리디아 + 신바빌로니아 정복 ===
 
리디아는 지금의 [[터키]] 서부지역에 있던 국가로 기병들이 존나게 무시무시한 국가로 이름이 높았다.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는 델포이에서 '리다아와 페르시아랑 싸우면 제국이 멸망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받았고<ref>크로이소스는 [[이오니아]]의 그리스국가들을 냠냠쩝쩝한다음 그리스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솔론이라는 현인과 교류했다.</ref> 크로이소스는 이 제국은 페르시아라고 해석한 다음 메디아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페르시아에게 선빵을 날렸다.<ref>참고로 크로이소스의 여동생이 아스티아게스의 마누라였기에 누이동생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페르시아를 공격했다.</ref>하지만 하르파고스가 페르시아 기병앞에 [[낙타]]기병을 때려박는 기적의 전술로 리디아의 기병을 무력화시킨다음 리디아군을 밀어버렸고<ref>말은 낙타냄새를 싫어해서 도망간다. 때문에 낙타냄새에 대해 훈련을 못받았던 리디아의 말들은 페르시아의 낙타기병을 보고 도망갔다.</ref> 리크로이소스는 놀라서 자기가 신탁에서 동맹을 맺으라고 했던 그리스 최강국이'''라고 생각했던''' [[스파르타]]<ref>사실 델포이의 신탁은 그리스 최강국은 [[아테네]]라고 말해주려했었다.</ref>와 [[이집트]], [[신바빌로니아]]에게 동맹을 요구했고 스파르타군이 실제로 하류스강으로 들어가  페르시아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크로이소스가 겨울에 전쟁을 피할려고 군머를 해산시키는 병신짓을 저지른 결과 수도 사르디스는 함락되고 본인은 포로가 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장작더미위에서 화형을 당할 뻔했지만 솔론의 말을 상기하고 [[아폴론]]의 이름을 외치더니 불타오르던 장작더미는 비가 내리면서 불이 꺼졌고 이를 보고 와 진짜 신이 도와준 놈이네 하면서 지린 키루스가 크로이소스를 자신의 책사로 삼았다....고 헤로도토스가 기록을 했다. 근데 올림피아 전차경주에서 우승 축하를 위해 만들어진 바킬리데스의 송가에는 아폴로에 의해 히페르보레이오스의 땅으로 끌려갔다고 나오고 다른 기록에선 사르디스 함락이후 크로이소스는 처형당했다고 나온다. 진실은 저너머에...
 
신바빌로니아 정복의 경우 왕 나보니두스에 대한 민심이반을 구실로 기원전 539년 10월에 한방에  밀어버렸고 당시 신바빌로니아 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유다 왕국]], [[시리아]]왕국도 같이 페르시아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유다 왕국 한정으로 바빌론에 압송되었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성전을 짓도록 허가했다.
 
=== 최후 ===
 
고대 사학자들에 따르면 키루스는 신하들 조언씹고 [[카스피해]]동쪽의 마사게타이족을 공격하다가 아들을 페르시아군에게 잃어서 분노한 마사게타이족의 여왕이 공격하는중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사후 그의 시신은 파사르가다에로 옮겨져 장사지내졌고 차기 페르시아의 황제는 아들 [[캄비세스 2세]]가 맡았다. 그의 무덤은 남아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