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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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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이전 ===
=== 고려이전 ===


지금은 제철소와 공단으로 뒤덮인 겸이포읍에서 신석시유물이 발굴되었다. 이후 심촌리, 고연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5곳이 발견되었고, 정방산에서 탁상식+기반식이 스까된 200기이상의 지석묘군에서 간석기, 세형동검, 오수전등 여러 종류의 청동기유물이 출토되었고 이때부터 주요 청동기문화 중심지가 되었고 [[고조선]]의 땅이 되었다.  
지금은 제철소와 공단으로 뒤덮인 겸이포읍에서 신석기유물이 발굴되었다. 이후 심촌리, 고연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5곳이 발견되었고, 정방산에서 탁상식+기반식이 스까된 200기이상의 지석묘군에서 간석기, 세형동검, 오수전등 여러 종류의 청동기유물이 출토되었고 이때부터 주요 청동기문화 중심지가 되었고 [[고조선]]의 땅이 되었다.  


고조선멸망이후 [[한나라]]는 지금의 흑교면지역에 둔유현(屯有縣)이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황주군 남쪽에 있는 고개인 '''자비령(慈悲嶺)'''이 평양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가 되서 그런가 [[공손강]]시기 대방군을 신설할 때, 이 현이남의 7개현지역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분리했다.  
고조선멸망이후 [[한나라]]는 지금의 흑교면지역에 둔유현(屯有縣)이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황주군 남쪽에 있는 고개인 '''자비령(慈悲嶺)'''이 평양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가 되서 그런가 [[공손강]]시기 대방군을 신설할 때, 이 현이남의 7개현지역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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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州邑'''
'''黃州邑'''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읍, 운성리 대부분, 신상리.


면적 41.26㎢. 읍 소재지는 황강리.  
면적 41.26㎢. 읍 소재지는 황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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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읍성, 덕월산성, 월파루, 태허루 등이 있었는데.... [[6.25 전쟁|알지?]] [[도서정리사업|어쩔 수]] [[고난의 행군|없어]].
황주읍성, 덕월산성, 월파루, 태허루 등이 있었는데.... [[6.25 전쟁|알지?]] [[도서정리사업|어쩔 수]] [[고난의 행군|없어]].
[[소련군정]]이 모든 읍을 면으로 강등시키면서 황주면으로 강등되었고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황주읍'''(덕월리 + 적벽리 + 예동리 일부 + 황강리 + 제안리 + 성남리 + 벽성리), '''운성리'''(운봉리 + 성북리), '''신상리'''(신상리 + 동천리 + 예동리 일부)로 개편되었다. 1961년 연탄군 능산리의 일부지역이 운성리에 편입되었다.
=== 주남면 ===
'''州南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산봉리, 순천리, 침촌리 일부, 대동리 일부.
면적 55.31㎢. 면 소재지는 내함리.
내함리(內咸里), 소선리(小仙里), 정방리(正方里), 순천리(順天里), 대세리(大稅里), 율목리(栗木里), 이우리(梨隅里), 금산리(金山里)의 8개리를 관할했다.
말 그래도 주의 남쪽(황주군 남부)에 있다고 하여 주남면이라 불렸고 15개리를 관할하고 있었다. 이중 창촌리와 함께 정방리로 스까된 극성리엔 군사요새인 극성진(棘城鎭)이 있었다.
면 동쪽에 삼봉산, 남쪽 [[봉산군]]과의 경계에 정방산등이 솟아있어 남부는 산악지대를 이루고 북쪽은 증산(甑山, 145m)등 일부 구릉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지였다. 면동부에 황주천의 지류가 흘렀기 때문에 곡창지대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극성진이 있었던 정방리에 정방산성, 극성진터,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 지석묘등이 있었다. 군면리 대폐합때 '''산봉리'''(금산리 + 내함리 + 소선리)<ref>마늘봉우리라고 산봉리(蒜峯里)이지만 정치병걸린 빨갱이들이 선봉리라 기록했다. </ref>, '''순천리'''(순천리 + 이우리 + 율목리), '''침촌리'''(정방리 + 청룡면 화산리 + 소곶리), '''대동리 일부'''(대열리 + 삼전면 용전리 + 영풍면 동산리)로 개편되었다. 전쟁이후 1954년 침촌리 일부가 봉산군 용림리로 편입되었다.
=== 청룡면 ===
'''靑龍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침촌리 대부분, 구포리, 청룡리, 철도리 일부,  포남리
면적 57.72㎢. 면 소재지는 소관리.
소관리(小串里), 포남리(浦南里), 포북리(浦北里), 구로리(九老里), 화산리(華山里), 상비리(上比里), 인덕리(仁德里), 청룡리(靑龍里)의 8개리를 관할했다.
동북쪽 100m 이하 구릉지역을 빼면 전지역이 평지인데 서강, 수합천에 물을 받은 재령강이 면 서남부를 북류하다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재령평야의 북부를 이루기 때문에 [[북괴]]가 말아먹기 전엔 주요 곡창지대로 통했다고 한다.
군면리 대폐합때 '''침촌리 일부'''(화산리 + 소관리 + 주남면 정방리), '''구포리'''(구로리 + 포북리 + 포남리), '''청룡리'''(청룡리 + 인덕리 + 상비리 일부), '''철도리 일부'''(상비리 일부 + 삼전면 내송리 일부 + 철도리)로 개편되었다. 1954년 침촘리의 일부가 봉산군 용림리로 편입되었고 1956년 구포리에서 폐지된 포남리가 복구되었다. 남은 구포리는 봉산군 봉의리에게 땅을 조금 떼줬다.
=== 삼전면 ===
'''三田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철도리 대부분, 내송리, 대동리 일부.
면적 48.17㎢. 면 소재지는 내송리.
내송리(內松里), 외송리(外松里), 석천리(石泉里), 용전리(龍田里), 철도리(鐵島里)의 5개리를 관할했다.
철도리 지역엔 하중도인 철도가 있었다. [[고려]]시기 철도에 살던 사람들이 육지로 올라와 황주 서부지역에 정착하자 [[충숙왕]]시기 철화현(鐵和縣)이 설치되었다. 이 철화현은 후에 폐지되었다가 1396년 원상복귀되었다가 1408년 폐지되었다.
중앙 관대산(冠帶山, 182m), 주렴산(珠簾山, 161m), 봉화산(烽火山, 216m)을 필두로 하여 면이 대체로 산악지대에 해당된다. 황주천이 면북쪽을 곡류하며 재령강이 서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에 대동강이 흘러 물로 둘러싸여있다.
군면리 대폐합 때 '''철도리'''(철도리 + 내송리 일부 + 청룡면 상비리 일ㄹ부), '''삼전리'''(내송리 일부 + 외송리 + 석천리), '''대동리 일부'''(용전리 + 영풍면 동산리 + 주남면 대열리)로 개편되었다. 이후 송림시 신량리의 일부가 삼전리에 편입되었다.
=== 청수면 ===


== 아웃풋 ==
== 아웃풋 ==
* [[박은식|태백광노]]
* [[박은식|태백광노]]

2019년 8월 22일 (목) 18:31 판

황해도의 행정구역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자치시 해주시 · 사리원시 · 송림시
자치군 벽성군 · 연백군 · 금천군 · 평산군 · 신계군 · 장연군 · 송화군 · 은율군 · 안악군 · 신천군
재령군 · 황주군 · 봉산군 · 서흥군 · 수안군 · 곡산군 · 옹진군
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밑줄: 도청소재지

개요

황해도의 군중 하나. 황해도에서 '황'자가 이 황주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황해도가 설치될 때 주요도시가 되었지만 황해도 전체가 듣보잡화되면서 인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황주는 평양권에 속한 깡촌으로 전락했다. 되려 일제강점기시기 사리원이 개발되고 황주 송림역에 겸이포 제철소가 개발되면서 황해도의 '황'자를 상징하는 대도시로 부활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때문에 예전과 같은 듣보 시골로 전락.

연혁

고려이전

지금은 제철소와 공단으로 뒤덮인 겸이포읍에서 신석기유물이 발굴되었다. 이후 심촌리, 고연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5곳이 발견되었고, 정방산에서 탁상식+기반식이 스까된 200기이상의 지석묘군에서 간석기, 세형동검, 오수전등 여러 종류의 청동기유물이 출토되었고 이때부터 주요 청동기문화 중심지가 되었고 고조선의 땅이 되었다.

고조선멸망이후 한나라는 지금의 흑교면지역에 둔유현(屯有縣)이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황주군 남쪽에 있는 고개인 자비령(慈悲嶺)이 평양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가 되서 그런가 공손강시기 대방군을 신설할 때, 이 현이남의 7개현지역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분리했다.

미천왕시기 고구려를 점령하면서 고구려땅이 되었다. 한동안 둔유현이라고 불렸겠지만 시간이 지난 뒤 우동어홀(于冬於忽), 동홀(冬忽)이라고도 불렀다. 나당전쟁승리이후 대동강남쪽에 속하여 신라의 땅이 되었고 경덕왕시기 취성군(取城郡)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군이 설치된 것은 아무리 잘쳐줘도 헌덕왕시기였다.

후삼국시대가 한창인 905년, 황주(黃州)로 개편되었고 황보제공의 땅이 되었지만 패서호족들이 궁예와 함께 활동하면서 후고구려땅이 되었다가 궁예띨망이후 고려로 편입되었다. 이후에도 한동안 황보씨가 이지역의 머튽으로 군림했다.

983년 최승로의 건의로 전국 12목이 파견될 때 본주에 황주목이 파견되었고 993년 절도사가 파견되면서 천덕군절도사(天德軍節度使)가 파견되었고, 관내도에 편입되었다. 1012년 절도사가 폐지되고 안무사가 파견되었다가 1018년 목이 파견되었다. 이후 5도 양계로 지방제도가 정비되면서 서해도에 속했고 황주자체는 봉주, 신주, 토산현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1217년 거란군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고 고령군(固寧郡)으로 강등되었다가 후에 황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이때 잠깐 서북면에 속했다 말았다.

조선이후

조선시대 황주군 남쪽 봉산과의 경계에 극성진(棘城鎭)이 설치되었고 1449년 황해도병마도절제사영을 재설치하면서 이곳에 관찰사가 설치되었다. 이후 1593년 황해도병영이 재설치되면서 1601년부터 황주가 병영소재지로 정착되었다. 정묘호란이후 정방산성을 개수, 청나라의 침공에 대비했지만 병자호란시기 김자점씨발새끼때문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청나라시기엔 짱깨사신들의 주요 방문지로 속했다. 순조시기 황강현(黃岡縣)으로 강등먹었다가 황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895년 황주군으로 개편, 평양부에 속했다가 갑오개혁이후 황해도에 속하게 되었다. 송림면이 겸이포면으로 개명, 이후 분단이전 한국의 핵심 제철소였던 겸이포제철소가 건설되었다.

8.15 광복이후 38선이북에 속했기 때문에 소련군정, 북괴에 속했다. 공산치하에서 겸이포읍이 송림면에 편입되고 1947년 송림시로 독립했다. 6.25 전쟁1.4 후퇴국군이 수복하는데 실패하면서 그대로 북괴땅이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인교면, 도치면, 구락면이 서흥군 도면, 소사면, 세평면, 수안군 율계면 6개리와 함께 연탄군으로 분리되었고 천주면 1개리가 상원군으로 넘어갔으며 나머지는 그래도 황주군에 남았다.

행정구역

황주읍

黃州邑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읍, 운성리 대부분, 신상리.

면적 41.26㎢. 읍 소재지는 황강리.

황강(黃崗), 덕월(德月), 적벽(赤壁), 성남(城南), 벽성(碧城), 제안(齊安), 예동(禮洞), 동천(東天), 신상(新上), 성북(城北), 운봉(雲峰)의 11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제안면(齊安面)이라 칭했다가 이후 황주면으로 개칭되었고 1937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북쪽에 천주산이 솟아있고 그 여맥이 읍 서남으로 뻗어내려 200m 이하의 구릉이 기복되어 있고 나머지는 평지를 이룬다. 황주천(黃州川)이 면 남부를 북서류하다 여러 작은 개울이 합류해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사과와 같은 과일재배가 활발히 이뤄졌다고 한다.

황주읍성, 덕월산성, 월파루, 태허루 등이 있었는데.... 알지? 어쩔 수 없어.

소련군정이 모든 읍을 면으로 강등시키면서 황주면으로 강등되었고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황주읍(덕월리 + 적벽리 + 예동리 일부 + 황강리 + 제안리 + 성남리 + 벽성리), 운성리(운봉리 + 성북리), 신상리(신상리 + 동천리 + 예동리 일부)로 개편되었다. 1961년 연탄군 능산리의 일부지역이 운성리에 편입되었다.

주남면

州南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산봉리, 순천리, 침촌리 일부, 대동리 일부.

면적 55.31㎢. 면 소재지는 내함리.

내함리(內咸里), 소선리(小仙里), 정방리(正方里), 순천리(順天里), 대세리(大稅里), 율목리(栗木里), 이우리(梨隅里), 금산리(金山里)의 8개리를 관할했다.

말 그래도 주의 남쪽(황주군 남부)에 있다고 하여 주남면이라 불렸고 15개리를 관할하고 있었다. 이중 창촌리와 함께 정방리로 스까된 극성리엔 군사요새인 극성진(棘城鎭)이 있었다.

면 동쪽에 삼봉산, 남쪽 봉산군과의 경계에 정방산등이 솟아있어 남부는 산악지대를 이루고 북쪽은 증산(甑山, 145m)등 일부 구릉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지였다. 면동부에 황주천의 지류가 흘렀기 때문에 곡창지대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극성진이 있었던 정방리에 정방산성, 극성진터,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 지석묘등이 있었다. 군면리 대폐합때 산봉리(금산리 + 내함리 + 소선리)[1], 순천리(순천리 + 이우리 + 율목리), 침촌리(정방리 + 청룡면 화산리 + 소곶리), 대동리 일부(대열리 + 삼전면 용전리 + 영풍면 동산리)로 개편되었다. 전쟁이후 1954년 침촌리 일부가 봉산군 용림리로 편입되었다.

청룡면

靑龍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침촌리 대부분, 구포리, 청룡리, 철도리 일부, 포남리

면적 57.72㎢. 면 소재지는 소관리.

소관리(小串里), 포남리(浦南里), 포북리(浦北里), 구로리(九老里), 화산리(華山里), 상비리(上比里), 인덕리(仁德里), 청룡리(靑龍里)의 8개리를 관할했다.

동북쪽 100m 이하 구릉지역을 빼면 전지역이 평지인데 서강, 수합천에 물을 받은 재령강이 면 서남부를 북류하다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재령평야의 북부를 이루기 때문에 북괴가 말아먹기 전엔 주요 곡창지대로 통했다고 한다.

군면리 대폐합때 침촌리 일부(화산리 + 소관리 + 주남면 정방리), 구포리(구로리 + 포북리 + 포남리), 청룡리(청룡리 + 인덕리 + 상비리 일부), 철도리 일부(상비리 일부 + 삼전면 내송리 일부 + 철도리)로 개편되었다. 1954년 침촘리의 일부가 봉산군 용림리로 편입되었고 1956년 구포리에서 폐지된 포남리가 복구되었다. 남은 구포리는 봉산군 봉의리에게 땅을 조금 떼줬다.

삼전면

三田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황주군 철도리 대부분, 내송리, 대동리 일부.

면적 48.17㎢. 면 소재지는 내송리.

내송리(內松里), 외송리(外松里), 석천리(石泉里), 용전리(龍田里), 철도리(鐵島里)의 5개리를 관할했다.

철도리 지역엔 하중도인 철도가 있었다. 고려시기 철도에 살던 사람들이 육지로 올라와 황주 서부지역에 정착하자 충숙왕시기 철화현(鐵和縣)이 설치되었다. 이 철화현은 후에 폐지되었다가 1396년 원상복귀되었다가 1408년 폐지되었다.

중앙 관대산(冠帶山, 182m), 주렴산(珠簾山, 161m), 봉화산(烽火山, 216m)을 필두로 하여 면이 대체로 산악지대에 해당된다. 황주천이 면북쪽을 곡류하며 재령강이 서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에 대동강이 흘러 물로 둘러싸여있다.

군면리 대폐합 때 철도리(철도리 + 내송리 일부 + 청룡면 상비리 일ㄹ부), 삼전리(내송리 일부 + 외송리 + 석천리), 대동리 일부(용전리 + 영풍면 동산리 + 주남면 대열리)로 개편되었다. 이후 송림시 신량리의 일부가 삼전리에 편입되었다.

청수면

아웃풋

  1. 마늘봉우리라고 산봉리(蒜峯里)이지만 정치병걸린 빨갱이들이 선봉리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