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두 판 사이의 차이
늬미보지 애러보지 근육보지 걸레보지 흑보지 |
병신 제거 |
||
| 8번째 줄: | 8번째 줄: | ||
ㄴ씹구라고, 사실은 농부가 귓속말로 밤일은 내가 제일 잘한다고 속삭이며 황희의 귓속에 끈끈한 혀를 넣는다 | ㄴ씹구라고, 사실은 농부가 귓속말로 밤일은 내가 제일 잘한다고 속삭이며 황희의 귓속에 끈끈한 혀를 넣는다 | ||
청백리라는 세간(과 후대의 후손들의 이미지메이킹 후빨질)의 이미지랑 다르게 [[청렴결백]] 조까시고요, 존나 해쳐먹고 권력형 비리 저질러댔는데 숨기려다가 결국 세종한테 다 걸려서 기록까지 남은 인물이다. 예전에 모 여당 인물이 디스했던게 사실 역알못이 아닌이상 맞는 말이었다는 것. 난리친 문종 후손들이 지나치게 미화와 쉴드질을 양심없게 치게 된 것이기도 하다.(인간들이 하두 멍청하거나 아니면 양심이 없다보니 살다살다 여당인물이 한 말을 편들게 되는 일도 다 있네) | |||
목줄을 손에 꽉 쥐게 된 세종은, 능력을 버리기 아까워 세종대왕님이 파직 등의 자비 대신 평생 노동교화형을 내려주셨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인물이(인재)냐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재상 캐릭터인 [[유성룡]]보다 양심으로나 인재적 측면으로나 확실히 못하다. 이 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로 세종과 수렴청정하던 문종이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장단점<ref>장점=똑똑함, 단점=똑똑함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쓰고 준법 정신이나 양심이 없음. 범죄도 저지름</ref>중 장점을 극대화 시키고 단점을 최대한 막아낼 수 있었던 것. 덕분에 황희는 성은이 망극하여 세종대왕님 돌아가시기 4개월전까지 부려먹히다 퇴직 성공하고 3년만에 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리 때문에 [[노비]]문서 쓴 걸지도. | |||
당시 사회 상태가 여말선초의 권력다툼과 혼락, 그리고 [[위화도 회군]]부터 수차례의 [[왕자의 난]]까지 수많은 전란으로 인해 인간들이 갈려나가고 이성계 이방원 부자 시기 벌어진 [[왕씨대학살]]까지 겹쳐서 한반도 인구 다수가 죽어나간 상태였다. 시기상 세종이 벌인 일은 아니었으나, 인재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생긴 고육지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의 유성룡이 등장했던 [[선조]] 시기와 비교해봐도 인재풀과 인력풀이 나오기에 [[이성계]]-[[이방원]] 시기를 거치며 온갖 내란으로 갈려나간 이후인 이 시기는 여러모로 불리한 시기였던 것. 그런 상태에서 국가를 하드캐리했다는 점에서 [[세종]]-[[문종]] 부자의 지능과 지도자로서의 발전적 능력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 |||
물론 세종이 능력있는 임금이라 똑똑하지만 양심과 인성은 글러먹은 부패관리 황희를 잘 컨트롤해서 써먹을 수 있었던 점이 나중에 황희 까지 부각되는 것 이겠지만. (재상급 신하가 유능한데 왕이 무능한 경우 왕조가 허수아비가 되거나, 능력있는데 부패한 관료가 유능하게 개짓거리를 해서 부패로 썩어들어가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들어 삼국지 시대의 한말이라던지 [[위나라]] 말기라던지 [[이성계]]에게 따인 [[고려]] 말기라던지 나중의 [[안동 김씨]]에 의한 세도정치나 애미뒤진 권신 한명회에 의한 갑질시기 등도 유사하다.) | |||
야사에선 좀 부드러워 보이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총공(攻) 스타일. 김종서가 부하 시절에 황희한테 뻑하면 개갈굼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 야사에선 좀 부드러워 보이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총공(攻) 스타일. 김종서가 부하 시절에 황희한테 뻑하면 개갈굼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 ||
고려~조선왕까지 모실정도로 오래살았다. | 고려~조선왕까지 모실정도로 오래살았다. | ||
2017년 3월 11일 (토) 18:12 판
| 주의. 이 문서는 노예에 대해 다룹니다. 일해라 일! 노력해라 노오오력! 열심히 일해서 주인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새끼들아 |
조선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재상이라고 알려졌던 인물.
어찌나 일을 잘하던지. 세종대왕 죽기 직전까지 18년동안 영의정을 해먹었고 본인도 중간이 관두고 싶어했는데 세종대왕이 윤허를 안해서...
야사에 따르면 황희가 농부에게 검은 소랑 누런 소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냐고 묻자, 농부는 황희가 제일 잘한다고 답해따.
ㄴ씹구라고, 사실은 농부가 귓속말로 밤일은 내가 제일 잘한다고 속삭이며 황희의 귓속에 끈끈한 혀를 넣는다
청백리라는 세간(과 후대의 후손들의 이미지메이킹 후빨질)의 이미지랑 다르게 청렴결백 조까시고요, 존나 해쳐먹고 권력형 비리 저질러댔는데 숨기려다가 결국 세종한테 다 걸려서 기록까지 남은 인물이다. 예전에 모 여당 인물이 디스했던게 사실 역알못이 아닌이상 맞는 말이었다는 것. 난리친 문종 후손들이 지나치게 미화와 쉴드질을 양심없게 치게 된 것이기도 하다.(인간들이 하두 멍청하거나 아니면 양심이 없다보니 살다살다 여당인물이 한 말을 편들게 되는 일도 다 있네)
목줄을 손에 꽉 쥐게 된 세종은, 능력을 버리기 아까워 세종대왕님이 파직 등의 자비 대신 평생 노동교화형을 내려주셨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인물이(인재)냐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재상 캐릭터인 유성룡보다 양심으로나 인재적 측면으로나 확실히 못하다. 이 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로 세종과 수렴청정하던 문종이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장단점[1]중 장점을 극대화 시키고 단점을 최대한 막아낼 수 있었던 것. 덕분에 황희는 성은이 망극하여 세종대왕님 돌아가시기 4개월전까지 부려먹히다 퇴직 성공하고 3년만에 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리 때문에 노비문서 쓴 걸지도.
당시 사회 상태가 여말선초의 권력다툼과 혼락, 그리고 위화도 회군부터 수차례의 왕자의 난까지 수많은 전란으로 인해 인간들이 갈려나가고 이성계 이방원 부자 시기 벌어진 왕씨대학살까지 겹쳐서 한반도 인구 다수가 죽어나간 상태였다. 시기상 세종이 벌인 일은 아니었으나, 인재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생긴 고육지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의 유성룡이 등장했던 선조 시기와 비교해봐도 인재풀과 인력풀이 나오기에 이성계-이방원 시기를 거치며 온갖 내란으로 갈려나간 이후인 이 시기는 여러모로 불리한 시기였던 것. 그런 상태에서 국가를 하드캐리했다는 점에서 세종-문종 부자의 지능과 지도자로서의 발전적 능력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물론 세종이 능력있는 임금이라 똑똑하지만 양심과 인성은 글러먹은 부패관리 황희를 잘 컨트롤해서 써먹을 수 있었던 점이 나중에 황희 까지 부각되는 것 이겠지만. (재상급 신하가 유능한데 왕이 무능한 경우 왕조가 허수아비가 되거나, 능력있는데 부패한 관료가 유능하게 개짓거리를 해서 부패로 썩어들어가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들어 삼국지 시대의 한말이라던지 위나라 말기라던지 이성계에게 따인 고려 말기라던지 나중의 안동 김씨에 의한 세도정치나 애미뒤진 권신 한명회에 의한 갑질시기 등도 유사하다.)
야사에선 좀 부드러워 보이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총공(攻) 스타일. 김종서가 부하 시절에 황희한테 뻑하면 개갈굼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고려~조선왕까지 모실정도로 오래살았다.
- ↑ 장점=똑똑함, 단점=똑똑함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쓰고 준법 정신이나 양심이 없음. 범죄도 저지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