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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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9일 (금) 11: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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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나가 맙소사! 누가 이렇게 끔찍한 혼종을 만들었단 말인가! 갸아악 구와아악!! 이 문서는 끔찍한 혼종에 대해 다룹니다. 마! 붓싼 사람들은 일케 맛난거 있음 다 스까서 같이 노나 묵는다 아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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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3대 대선에서 김대중(평화민주당)에게 통수를 얼얼하게 맛본 김영삼(통일민주당)이 노태우(민주정의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김종필(신민주공화당)과 함께 합체한 사건. 지금으로 치면 1과 3과 4가 합당한 것과 같다. 다만 이념만으로 보자면 2+3+4가 더 적합함.
배경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면 어차피 민정당은 6월 항쟁으로 인해 정치생명이 끝난 것이었다. 그게 4자 필승론으로 인해 잠깐 연장된거고 결국 끝장날 거니 노태우가 최대한 목숨줄 연장해보겠다고 야당에게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과정
당시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은 재차 4자 필승론을 생각하며 KAL 폭파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확실히 조진다며 일단 노태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서 노태우는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며 두번째로 김영삼에게 제안을 걸자 김영삼은 얼른 받아들인다.
그리고 신민주공화당도 내각제 개헌을 약속받으면서 합당
당시 김영삼이 배신한 거라며 당내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그때 반대해서 명성치가 오른게 노무현이다.(이렇게 떨어져 나간것이 이른바 꼬마 민주당)
어쨌든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탄생했고 이걸로 신군부 애들은 더 이상 권력의 정점은 못올라도 목숨줄은 보전하게 되었구나 생각했지만...
결과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자 12.12 군사반란의 책임을 묻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다. 거기에 결정타로 두번다시 군사반란을 못 일으키게 하려고 하나회를 군에서 광속같이 제거.
장영자같은 년이 또 나오지 않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신군부 세력을 정치판에서 완전히 쫓아낸다.
요약하자면 김대중 병신 땡삼이 한수둠
의의
3당 합당이라는 과정이야 지저분했지만 결국 김영삼은 민주화를 완전히 성공시킨 거다.
좆동권이랑 깨시민들, 특히 좆동권은 3당합당을 진짜 존나게 증오한다. 3당합당 때문에 반쪽짜리 민주화로 그쳤고 지역주의가 민주화를 대체했다나?
뭐 일리가 1%도 없는 말은 아니긴한데 개소리인건 변하지 않으니 걍 좆동권,깨시민 새끼들의 터진 대가리 수준이 저렇구나 생각하면 됨
멍청한 애들은 조선총독부 폭파로 지지율이 미친듯이 높았다고 하지만
실제 김영삼의 지지율은 저 신군부 세력을 벼락같이 조져버린데서 나온 거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