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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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그동안 마산 의거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자 고려대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가장한 집단 시위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자유당이 경찰 뿐만 아니라 임화수 등 정치깡패들을 대동해서 진압하려고 하자 시민들까지 시위까지 가세하고 말았다. 경찰에 발포명령에 죽은 대학생도 있었다. 고대생은 아니지만. | 4월 18일. 그동안 마산 의거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자 고려대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가장한 집단 시위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자유당이 경찰 뿐만 아니라 임화수 등 정치깡패들을 대동해서 진압하려고 하자 시민들까지 시위까지 가세하고 말았다. 경찰에 발포명령에 죽은 대학생도 있었다. 고대생은 아니지만. | ||
이윽고 4월 19일.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들고 | 이윽고 4월 19일.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들고 일어나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날만 찝어서 피의 화요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울에서 100여명이 죽었고, 부산에서 13명, 광주에서 6명이 죽었다. | ||
그리고 광주에 높은 분 새끼들은 4.19만큼은 마산보다 3시간 먼저 일어났다며 지들이 원조라고 지자체 차원에서 우겨대는대 위에 설명대로라면 원조는 경상도고 4.19의 시작은 서울대고 참여는 전국이니까 닥치고 있어라 홍어새끼들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