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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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 |||
몇몇 급식충들과 역알못 새끼들이 착각하는게 3.15 부정선거는 대통령 부정선거가 아니라 부통령 부정선거였다. 당시 이승만은 단독출마로 이미 당선 됐고 자유당에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앉히기 위해 각종 수법을 동원해 부정선거를 치뤘다. 이승만이 부정선거가 일어난걸 몰랐다는 이야기도 있고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3.15 부정선거를 계획한건 이승만 단독이 아닌 자유당에서 꾸민 일인거는 확실하다. | |||
1960년 4월 [[이승만]]의 독재에 분노하던 시민들이 3.15 부정선거에 야마돌아서 [[죽창]]들고 일어나 이승만에게 민주주의의 참교육을 시전한 사건. 이승만은 여기에 놀라서 [[하와이]]로 도망갔다 객사했다 | 1960년 4월 [[이승만]]의 독재에 분노하던 시민들이 3.15 부정선거에 야마돌아서 [[죽창]]들고 일어나 이승만에게 민주주의의 참교육을 시전한 사건. 이승만은 여기에 놀라서 [[하와이]]로 도망갔다 객사했다. | ||
적어도 이때 청년들은 [[노예]]의식은 없었던거같다. [[틀딱충|근데 이 청년들이 현재...]]<ref>이때청년들이 사회에 부조리에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 노땅노예꼰대새끼들이 되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현재에는 70대 중반의 노인들이 되었다. 왜 그리 되었냐면, 그 뒤로 계속 탄압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 대표적으로 경상도가 진보 세력이였고, 반대로 전라도가 보수였었는데, 이 게 차츰 차츰 탄압으로 인해, 바뀌게 된다. 4.19가 대구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ㄴ마산 3.15의거부터 시작된거 아니냐? 2.28은 연계성이 좀 부족한거 같은데? 2.28로 반승만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하다가 3.15의거로 터지기 시작한거 아니냐? 머구놈들 정신승리 시</ref> | |||
쉽게말해서 [[탈조센]]스러운 사건이였다. (유럽은 졷같으면 맨날들고일어난다. 대신에 유럽 경찰의 공권력은... 말 안해도 알지? 그나라 경찰들은 말타고 곤봉으로 진압한다. 우리나라였으면 폭력경찰이라고 난리가 날꺼다) | |||
씨앗은 1950년대 초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법때 뿌려졌다. 1946년 북한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형식의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자 남한 쪽 농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미군정은 이 틈을 좌익 세력이 파고들 것을 우려해 소작료를 낮추는 등 갈등의 불씨를 잠재우고자 노력한다. | 씨앗은 1950년대 초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법때 뿌려졌다. 사실 '가카가 농지개혁을 이룩해서 공산주의 세력을 막았어'라고 줄창 떠들어대는 놈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 ||
1946년 북한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형식의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자 남한 쪽 농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미군정은 이 틈을 좌익 세력이 파고들 것을 우려해 소작료를 낮추는 등 갈등의 불씨를 잠재우고자 노력한다. | |||
그리고 1948년 제헌의회 수립 후 이승만 정권은 대지주들이 주 지지세력이었던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약화시킬 필요를 느꼈다. | 그리고 1948년 제헌의회 수립 후 이승만 정권은 대지주들이 주 지지세력이었던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약화시킬 필요를 느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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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환경의 혜택을 본 집안의 장남들이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여 4.19 혁명의 주역이 된다. | 이러한 환경의 혜택을 본 집안의 장남들이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여 4.19 혁명의 주역이 된다. | ||
그리고 1960년대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의 성장을 저지할 봉건적 세력 따위가 있을 리 없었으므로 |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42075 4.19 혁명유공자중 하나인 안동일 변호사는 [[김재규]]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4.19 참여자들이 박정희에 동조했다는 건 한면일 뿐이고, 다른 면은 박정희 반대에 동조하거나 찬성하기도 했고 안동일 변호사가 그 예다.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42075 4.19 혁명유공자중 하나인 안동일 변호사는 [[김재규]]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4.19 참여자들이 박정희에 동조했다는 건 한면일 뿐이고, 다른 면은 박정희 반대에 동조하거나 찬성하기도 했고 안동일 변호사가 그 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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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가 이 혁명의 가장 큰 도화선인데 왜 이야기가 없는가! | |||
4번이나 대통령을 해먹고 싶었던 싱먼 리는 이기고 싶어서 59년부터 각종 공작을 펼쳐대었고 3.15일 부정선거로 병크정점을 찍었다. | |||
ㄴ이새낀 역알못 새끼네 3.15 선거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부통령 선거였다. 이승만은 단독 출마로 이미 대통령 당선 확정이었음 | |||
물론 이에 반대하는 각종 시위는 있어왔지만 헬조선 답게 그런일 없다 하고 두들겨 패잡는것으로 마무리 지어왔다. 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기 전까진. | 물론 이에 반대하는 각종 시위는 있어왔지만 헬조선 답게 그런일 없다 하고 두들겨 패잡는것으로 마무리 지어왔다. 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기 전까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