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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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귀동과 풍룡동에서 민무늬토기, 흑도, 반달돌칼, 돌도끼, 청공과가 발견되었고 노남동에서 명도전이 나온거랑 강건너에 [[고구려]] 국내성이 있었고 [[동천왕]]이 [[관구검]]에게 털린뒤 수도를 옮긴 평양성(平襄城)이 여기로 추정된다는 것말고는 쓸거없다.
공귀동과 풍룡동에서 민무늬토기, 흑도, 반달돌칼, 돌도끼, 청공과가 발견되었고 노남동에서 명도전이 나온거랑 강건너에 [[고구려]] 국내성이 있었고 [[동천왕]]이 [[관구검]]에게 털린뒤 수도를 옮긴 평양성(平襄城)이 여기로 추정된다는 것말고는 쓸거없다.
[[발해]] 서경압록부 환주에 속했다가 발해멸망이후 [[여진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고려말기 [[공민왕]]이 북진하면서 수복되었고 1361년 독로강만호를 설치하면서 [[평안도]]에 편입되었다. 1369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만호부를 설치한다음 지방군으로 진변(鎭邊)ㆍ진성(鎭成)ㆍ진안(鎭安)ㆍ진녕(鎭寧)의 사군(軍)을 두고 상부천호가 이군을 관리하게 했다.  
고려말기 [[공민왕]]이 북진하면서 수복되었고 1361년 독로강만호를 설치하면서 [[평안도]]에 편입되었다. 1369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만호부를 설치한다음 지방군으로 진변(鎭邊)ㆍ진성(鎭成)ㆍ진안(鎭安)ㆍ진녕(鎭寧)의 사군(軍)을 두고 상부천호가 이군을 관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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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소련군정]]에서 [[자강도]]가 분리되자 자강도의 중심지가 되었고 [[6.25 전쟁]]때 [[북괴군]]이 [[인천상륙작전]]이후 좆발리고 [[평양 탈환]]으로 평양까지 털리자 [[강계군]]의 지하에 임시수도를 두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도 강계에는 공격을 대비한 지하공장들과 지하 만리장성들이 많다고 한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을 하면서 시중군, 장강군, 전천군, 만포군, 용림군등 [[울산시]]정도만한크기의 군들로 공중분해되면서 면적이 많이 쪼그라들었다.
해방직후 [[소련군정]]에서 [[자강도]]가 분리되자 자강도의 중심지가 되었고 [[6.25 전쟁]]때 [[북괴군]]이 [[인천상륙작전]]이후 좆발리고 [[평양 탈환]]으로 평양까지 털리자 [[강계군]]의 지하에 임시수도를 두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도 강계에는 공격을 대비한 지하공장들과 지하 만리장성들이 많다고 한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을 하면서 시중군, 장강군, 전천군, 만포군, 용림군등 [[울산시]]정도만한크기의 군들로 공중분해되면서 면적이 많이 쪼그라들었다.


지금은 [[혜산군]], [[무산군]]만큼은 아니지만 강변인데다 인구도 많아서 [[탈북]]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금은 [[혜산군]], [[무산군]]만큼은 아니지만 강변인데다 인구도 많아서 [[탈북]]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 읍면 ==
== 읍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