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항: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2단원}} |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2단원}} | ||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 |||
姜沆 | 姜沆 | ||
2023년 7월 27일 (목) 13:56 판
姜沆
1567년 6월 23일(음력 5월 17일)~1618년 6월 27일(음력 5월 6일)
좆본에게 성리학을 전해준 사람.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이다. 고작 27밖에 안 되었을 때 과거에 급제해서 1596년엔 형조좌랑과 공조좌랑직까지 맡았다.
1597년 휴가로 고향에 내려갔는데 정유재란이 터졌다. 강항은 남원에서 명나라 장교 양원에게 군량미를 대주는 임무를 맡았는데 하필 이때 칠천량 해전이 터진 것이다.
원균 때문에 호남으로 미친듯이 진격한 일본군에 강항은 남원성에서 거세게 저항했지만 실패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영광에서 갓순신 장군니뮤 계신 곳으로 토끼기로 했다. 하지만 운빨이 드럽게 안 좋아서 일본군에게 발각되고 결국 일본으로 압송당했다. 일본군에게 붙기 싫다고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수심이 얕아서 밧줄로 도로 끌려올라왔다. 이때 자식 둘을 잃었다. 이게다 원균 때문이다. 씨발새끼 8ㅅ8
압송당한 강항은 이요 국에 정착했다. 그는 이곳에서 스님 요시히토와 교류했는데, 이때 몰래 일본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적중견문록을 조선에 보내고 교토에서 탈주한 조선인 포로 몇 명과 함께 탈출 기도를 벌였으나 발각되어서 실패한다. 그리고 교토 후시미 성으로 끌려갔다.
교토 후시미 성에서 강항은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아카마쓰 히로미치(赤松廣通)에게 성리학[1]을 가르쳤다. 결국 1600년에 오랜 애원 끝에 귀국에 성공했다.
귀국하고서 대구향교, 순천향교를 돌아다니면서 슨상일을 하다가 죽었다.
일본에 성리학을 직접 전해준 양반이라서 일본 유교탈레반들에게는 공자, 주자, 이황과 함께 엄청나게 추앙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