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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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은 일국사회주의론인데, 공산권에서 엘리트였던 트로츠키의 트로츠키주의는 전 세계를 공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나 스탈린은 일단 소련부터 잘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 스탈린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은 일국사회주의론인데, 공산권에서 엘리트였던 트로츠키의 트로츠키주의는 전 세계를 공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나 스탈린은 일단 소련부터 잘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 ||
=== 마오주의 === | |||
이때부터 코미디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 |||
[[마오쩌둥|쩌둥]]이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산업화가 아닌 농업화를 강조했다. 쩌둥이가 살던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시대는 농업 중심 사회인 지역이 많았고 1930년대에 쩌둥이가 한창 설치고 다닐 때 농민들에게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쩌둥이의 사상은 농업 중심적이다. | |||
그리고 소련이 스탈린 시대일 때 중국이 공산화되었기 때문에 쩌둥이는 초창기에 스탈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스탈린식 강력한 독재에서 자기의 그 농업화 중심주의를 합쳐서 마오주의가 되었다. | |||
마오주의는 이런 경향 때문에 산업화와 엘리트들을 지나치게 경시했고 산업화에 대한 경시가 [[대약진운동]]이라는 실패로 이어졌으며 엘리트들에 대한 경시는 반지성주의로 이어져 [[문화대혁명]]이라는 유례없는 학살과 약탈로 이어졌다. | |||
=== 김일성주의([[주체사상]]) === | |||
공산주의의 좆같은 점들만 다 모아놓은 뒤 민족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등을 싹 다 짬뽕해서 일성이가 자기가 영원히 해쳐먹기 위해 만들어낸 사상. | |||
초기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고 김일성의 권한도 무지막지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1956년 8월 종파 사건 이후 김일성 일인 독재 경향이 강해지자 스탈린주의에서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를 가져왔다. 정작 당시 소련은 스탈린을 깎아내리는 흐루쇼프가 지배하고 있었고, 다행히도 김일성이 빨아대던 인물 중 쩌둥이가 중국에서 우상화를 해쳐먹고 있었기에 그 영향을 받았다. | |||
김일성은 지가 6.25를 일으켰다가 역관광당해 북한 멸망 직전까지 간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강대국들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있었고 공산권의 거두인 중국과 소련마저도 의심했다. 결국 김일성의 권력욕과 강대국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 '우리식'이라 쓰고 우덜식이라 읽는 자칭 북한식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만들어냈다. | |||
당연히 지가 해쳐먹고는 싶으나 할 말이 없었으니 우리식을 내세웠던 것이고, 우리식을 내세우다 보니 공산주의에서 배척하는 민족주의의 영향까지 받게 되고, 결국 일제식 군국주의까지 전부 짬뽕하여 1972년 탄생한 이념이 주체사상이다. | |||
김일성의 부모가 기독교 신자였던 영향 때문에 김일성의 배교 이후에도 신에 대한 개념이 김일성의 뇌리에 남아있었으며 이는 우상화를 넘어선 김일성의 신격화로 이어졌다. | |||
당연히 신격화와 군국주의, 우리식 등이 짬뽕되었으니 김일성이 죽고 나면 그 자리는 자칭 신의 자식인 김일성, 김정은 순서대로 세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세습제를 채택하게 된 과정이다. | |||
== 중심개념 == | == 중심개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