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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를 근대와 하나로 보는 경우에는 약 16세기경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중반에 끝난다. 약 16세기 부터 시작해 18세기 까지는 전기 근대([[근세]])라고 부르고 우리가 아는 근대는 [[산업 혁명]] 이후의 후기 근대다. | 근세를 근대와 하나로 보는 경우에는 약 16세기경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중반에 끝난다. 약 16세기 부터 시작해 18세기 까지는 전기 근대([[근세]])라고 부르고 우리가 아는 근대는 [[산업 혁명]] 이후의 후기 근대다. 사실 서양에도 이런 개념은 없었는데 일본 놈들이 우겨대서 근세와 근대가 나뉜 거다 카더라. | ||
여기까지만 보면 [[근세]]랑 비슷하지만 산업 혁명 버프를 추가하면 근대에 가까워 진다. | 여기까지만 보면 [[근세]]랑 비슷하지만 산업 혁명 버프를 추가하면 근대에 가까워 진다. | ||
2020년 9월 8일 (화) 22: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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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ㄹ 또는 근으로 불리고 있는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원래 이름은 ㄹ 또는 근인데 야민정음 때문에 근 또는 ㄹ이라고 많이 불리는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런 인물은 대표적으로 ㄹ혜와 ㄹ6, ㄹ평, ㄹ첩, 이ㄹ가 있습니다. |
| 이 문서가 설명하는 대상은 근대적입니다. 이 문서는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자본주의, 19세기 냄새가 심각하게 납니다. 이 문서 곳곳에 제국주의자와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똥을 쌌을 확률이 높습니다. 당신이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정상적인 현대인이라면 이 문서가 역겨울 수 있으니 빨리 탈출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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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르네상스를 걸쳐서 너도 나도 꽤 큰 배 한척 만들어서 신대륙이나 아프리카나 동남아 원주민들에게 식민지죽창을 찌르는 시대를 뜻한다.
근세를 근대와 하나로 보는 경우에는 약 16세기경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중반에 끝난다. 약 16세기 부터 시작해 18세기 까지는 전기 근대(근세)라고 부르고 우리가 아는 근대는 산업 혁명 이후의 후기 근대다. 사실 서양에도 이런 개념은 없었는데 일본 놈들이 우겨대서 근세와 근대가 나뉜 거다 카더라.
여기까지만 보면 근세랑 비슷하지만 산업 혁명 버프를 추가하면 근대에 가까워 진다.
근데 이 근대를 무덤으로 보낸 사건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 기점으로 근대시대는 끝났다. [1]
선조의 기술 등급으로 보면 6단계에 해당된다.
구분
근대를 구분하는건 갓양 기준이지만 똥양 기준으로 하면 19세기 초 부터 해당되기 땜에 좆선은 대한제국이나 조선말기 강화도 조약, 아니면 흥선대원군 집권부터 좆본은 메이지 유신부터 짱깨는 청나라 후기(디테일하게 치면 아편전쟁 이랑 태평천국운동이후.)부터다.
역사 교과서는 크게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로 나뉘는데, 중학교 교육 과정에서의 구분 기준은 이렇다.
조선:흥선대원군 집권(1863/64년)
일본:페리 제독 함선(1853년, 보통 교과서에서는 이 이후 15년의 막말기는 생략한다.)
중국:아편전쟁(1840년)
영국:명예혁명(1688년)
프랑스:프랑스 혁명(1789년)
인도:플라시 전투(1757년)
미국:독립선언(1776년)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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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왕이 없고 대통령 대신 내각책임제로 총리가 정부수반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독립했기 때문에 미국이 실시하는 대통령제를 실시했다. 무엇보다 내세울 만한 왕족도 없었고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이승만이 50년 전에 독립 협회 해산 문제로 고종을 매우 혐오했기 때문에 해외의 왕족들을 모조리 입국금지시킬 정도로 왕에 대한 인식이 나빠서이다. 정작 본인이 전주 이씨라는 것은 안 비밀.
하지만 우리나라가 민비같은 적폐새끼들을 쳐내고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대통령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조선이 근대화될 수 있었던 시나리오들을 알아보자.
흥선대원군 시절에 개항해서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흥선대원군은 쇄국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쇄국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 선교사들을 초대할 정도로 외국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국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하고 조선같은 좆밥 나라따윈 돕지 않겠다는 모습들을 보이자 개빡쳐서 병인박해로 불란서 선교사들의 모가지를 뎅겅시킨다.
하지만 이때 프랑스 선교사들이 협조적이었다면? 흥선대원군도 오오냐 하면서 프랑스와 가장 먼저 통상했을 확률이 크다.
이때 통상에 성공했다면 대충 1870년대 즈음에 프랑스 외의 다른 국가와도 좀 불평등하더라도 통상을 맺어 외부 국가들과 교역하게 된다.
그리고 김옥균 등 일본에 호의적인 인사들이 나타나서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후 근대화의 모델인 일본을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막나가는 병신이었지만 근대화 초기만 해도 메이지 유신을 토대로 국가 안정화에 성공한 국가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친일 반민족행위를 하자는 소리가 아니라 일본식 개화를 비슷하게 따라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민비는 친청파였지만 여기서는 흥선대원군의 장기집권이 성공했기 때문에 민비 나부랭이가 영향력을 미칠래야 미칠 수 없다. 게다가 흥선대원군은 친일(반민족행위 아님 ㅎ)적인 성향도 있어서 을미사변의 배후라는 설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일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고종이 성인이 되어서 흥선대원군은 물러나게 되지만 여기서는 흥선머원군이 천재적인 정치에 성공했기 때문에 고종도 흥선머원군을 따른다. 민비는 그냥 집구석에서 짜져있게 될 정도로 왕권이 드세진 상태가 된다.
1880년대에 조선도 일본처럼 유신에 성공해서 일본, 프랑스, 영국과 친한 새 제국 대한제국이 세워지게 된다. 일본은 앞서 말했듯이 흥선대원군이 일본에 호감을 보여서 가까워지게 되고 프랑스는 맨 처음 친구를 맺었으며 영국은 그레이트 게임으로 러시아와 적대하는 상황이었는데 흥선대원군→고종은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왕국들은 항상 내각책임제 국가가 된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보통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겸하기 때문에 왕과 권위가 충돌해서 왕국에 어울리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각책임제가 실시되고 근대식 헌법을 만들게 되면 높은 확률로 김홍집과 김옥균 등이 초대 총리에 오르게 되고 이들은 현실과 다르게 근대화를 이끈 영웅으로 역사책에 길이 남게 된다. 일단 김홍집이 초대 총리로 집권한 것으로 치자.
슬슬 전제군주제를 추구하는 고종과 내각책임제를 추구하는 의회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가 되었다. 초반에는 고종이 유리하지만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서 김홍집이 이끄는 내각이 더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다.
과거의 조선은 동시대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보수적인 국가였고 이 속에서 고통받아온 백성들은 의회를 지지하고 전제군주제가 불편한 양반들도 의회를 지지하게 되면서 고종은 결국 전제군주제를 포기하고 입헌군주제가 실시된다. 이때가 1900년 전후일 것이다.
이대로 정상적으로 가면 우리나라는 최종적으로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다.
하지만 대륙에 진출하기 유리해서 추축국이 될 경우 신적 존재 취급받는 일본의 덴노와 다르게 좆집 취급받는 우리나라의 황제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쫓겨나거나 A급 전범으로 뒤지고 최종적으로 내각책임제를 실시하는 공화국으로 끝나게 된다.
임오군란 때 청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이 시나리오는 1882년부터 시작한다. 사실 임오군란은 구식 군인 일부가 일으킨 난이기 때문에 신식 군대인 별기군의 화력으로 금방 진압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민비가 지 목숨 쫄려서 청을 끌고 왔고 이것은 나비효과로 우리나라가 주변국에게 간섭받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이때 민비가 곱게 뒤지고 별기군이 정상적으로 진압하게 되었다면 일단 불쌍한 구식 군인들은 반란 주동자로 처형당하고 대우는 더 나빠질 것이다. 흥선대원군도 반란 지원 혐의로 유배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 반란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험을 늘려주게 된다. 그리고 군대의 근대화도 매우 빨라질 것이다. 이러면 실제 역사에서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급진 개화파도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내각 수립이 빨라져서 초대 총리는 박영효가 될 확률이 높다. 인물 자체는 친일파 씹새끼지만, 여기서는 개혁이 성공하기 좋은 체제이기 때문에 노골적인 친일행보를 어느 정도 버린 채 좋은 것만 받아들이려 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이놈은 개혁을 나름대로 잘해서 실제로도 갑오개혁을 이끈 적이 있다.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쳐도 빠꾸없이 개혁을 진행하며 근대 국가를 이루고 내각 지지율이 오르기 때문에 고종도 함부로 개기지 못하고 내각과 왕실이 어느 정도 견제하며 공존하는 체제가 생긴다.
민비가 뒤진 상황에서 고종은 일단 몸을 사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또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다. 하지만 첫 시나리오와 다르게 이 시나리오는 별기군의 정착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군사적 개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일본이 아직 군사적으로 넘볼 여지를 남긴다.
이미 정치적 개혁이 대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에 을사조약처럼 정치적인 식민지화는 불가능해지고 일본과 군사적인 경쟁을 할 것이다. 아무튼 군사력이 좋지 않아서 세계대전이 되어도 진출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추축국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왕권이 내각과 충돌하는 상황에서 독립협회와 같은 공화주의자들이 나타나고 15년 후에 옆나라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 왕조가 붕괴하는 걸 보면 1910년대에서 1920년대 사이에 혁명이 일어나 왕조가 붕괴할 확률이 높다.
왕조가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군사적 상황상 추축국이 될 정도도 아니기 때문에 중일전쟁에 앞서 한일전쟁이 발발할 공산도 크다.
우리나라가 중간에 일본에게 먹힌다고 해도 현실처럼 일본은 천조국을 건드렸다가 좆되기 때문에 다시 부활하면 지금의 이탈리아처럼 내각책임제 공화국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결론
그냥 외국에게 먹히는 일이 안 일어난다면 왕조가 무너지든 안 무너지든 우리나라는 순탄하게 내각 체제가 유지될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가 된 적이 있었던 나라들은 대부분 대통령제 공화국이 되어서 미국처럼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거나 우리나라나 이집트처럼 독재국가의 테크를 타게 되는데 바로 이전 왕국의 실책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이나 영국, 태국처럼 외국에게 점령당하지 않으면 전형적인 왕국들의 테크를 타서 내각책임제가 들어서고 왕조가 붕괴해도 무리하게 대통령제를 실시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성공하면 높은 확률로 내각책임제 국가가 될 것은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