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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시에서 양키즈와 드라마를 공동집필하며 더더욱 극적인 순간을 많이 만들어낸 있다. 결국 [[랜디 존슨]] 버스를 타고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2001년 월시에서 양키즈와 드라마를 공동집필하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테이크를 연출해낸 있고. 결국 [[랜디 존슨]] 버스를 타고 우승반지까지 획득했다.  


사실 디비전 시리즈까진 엄청난 기세로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체력저하로 인해 월시에서 불질 한것...
사실 디비전 시리즈까진 엄청난 기세로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체력저하로 인해 월시에서 불질 한것...




나중에 보스턴에서도 받은게 하나 더 있는데 (이 땐 벤치멤버였다.)  
나중에 보스턴에서도 받은게 하나 더 있는데 (이 땐 월시엔트리 포함되지 못한 멤버였다.)  


국내복귀 후 이 반지들을 기증해달라는 야구 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나 2개 다 어디 놔뒀는지 몰라서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국내복귀 후 이 반지들을 기증해달라는 야구 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나 2개 다 어디 놔뒀는지 몰라서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관중과 기자단에서 법규를 날려대고 이치로 만화 너무 많이 봤어 드립을 비롯해 여권을 분실해 국제대회 참가가 무산되는 등
관중과 기자단을 향해서는 법규를, 이치로를 향해서는  만화 너무 많이 봤어 드립을 날려대고


커리어 내내 심지어 소속팀이 없던 몇 년 동안까지 잠시도 쉬지않고 야갤러들에게 푸짐한 소스를 제공하였으니  
여권을 분실해버려 국제대회 참가가 무산되는 등 타종목 스포츠팬들의 얼탱이마저 빼놓으며
 
커리어 내내 심지어 소속팀이 없던 몇 년 동안까지 잠시도 쉬지않고 야갤러들에게 푸짐한 소스를 제공하였으니  


가히 똘끼 넘치는 윾쾌한 야구선수의 귀감이라 하겠다.
가히 똘끼 넘치는 윾쾌한 야구선수의 귀감이라 하겠다.

2020년 4월 30일 (목) 18: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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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 체고의 씡카볼 투슌데...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여! 자 투나씡!...뙇! 유★격★수! 아앜! 뜨블플레이! 뜨블플레이! 고엥민! 고엥민! 아아앜! 우승이에여! 증대혀어어언! 하아아아아앍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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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Byung-hyun "Jot-Ki" Kim

기간테스 델 시바오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79년 1월 19일
출생지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학력 수창초-무등중-광주일고-성균관대
선수 정보
입단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투수
경력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3~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 (2011)
넥센 히어로즈 (2012~2014.4.10)
KIA 타이거즈 (2014.4.11~2016)


소개

前 메이저리거 이치로 카운터

광주일고 출신 1세대 메이저리거 3인방 중 한 명으로 (서재응, 최희섭, 김병현) 좆키, 법규, BK 등으로 불렸다.


전성기 시절엔 언더스로로 쉽게쉽게 150을 찍으며 리그 특급 마무리로 군림했었다.

참고로 애리조나 시절 김병현은 현 최강 마무리 킴브렐의 원톱시즌보다 WAR이 높다.

특히 02년도 bWAR은 리베라 활약 상위년도랑 비슷한 수준.


2001년 월시에서 양키즈와 드라마를 공동집필하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테이크를 연출해낸 바 있고. 결국 랜디 존슨 버스를 타고 우승반지까지 획득했다.

사실 디비전 시리즈까진 엄청난 기세로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체력저하로 인해 월시에서 불질 한것...


나중에 보스턴에서도 받은게 하나 더 있는데 (이 땐 월시엔트리 포함되지 못한 멤버였다.)

국내복귀 후 이 반지들을 기증해달라는 야구 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나 2개 다 어디 놔뒀는지 몰라서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관중과 기자단을 향해서는 법규를, 이치로를 향해서는 만화 너무 많이 봤어 드립을 날려대고

여권을 분실해버려 국제대회 참가가 무산되는 등 타종목 스포츠팬들의 얼탱이마저 빼놓으며

커리어 내내 심지어 소속팀이 없던 몇 년 동안까지 잠시도 쉬지않고 뭇 야갤러들에게 푸짐한 소스를 제공하였으니

가히 똘끼 넘치는 윾쾌한 야구선수의 귀감이라 하겠다.

애리조나 마무리 김병현

선발 하고싶다고 생난리만 안 쳤어도. 부러진 배트조각에 맞지 않았다라면 메이저리그에서 그럭저럭 선수생활을 이어갔을것이다. 라고

수많은 팬들이 아쉬워하나 사실 이와 별개로 김병현의 내구성이 못 버텨준것이 맞다고 봐야한다.


김병현이 끝끝내 선발투수를 고집한 까닭은 불펜보직이 마음에 안들어서...와 마무리 체질이 아닌것이 크다.

몸이 빨리 안 풀리는 체질이라 마무리 할때 매일 수십개 이상 던지고 올라와야 했다니까 마무리를 계속할 입장이 못 되었던 셈.

그래도 투 머치 토커께서도 "마무리로 전념했으면 한국인 최초 명예의 전당 행이었을 거다"라고 안타까워 했을 정도로 전성기의 그는 언터쳐블이었다.


150을 상회하는 직구, 메이저 최고의 마구라는 프리즈비 슬라이더, 업슛 3구질로 승부했으며

이 때 임팩트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15년이 더 넘었는데도 아직도 김병현 김병현 언급 되는 정도니....

메쟈 슨슈들의 증언을 빌리자면, 무브먼트가 아닌 구속으로 먼저 윽박지르는 언더핸드는 김병현뿐이었다나?


애리조나 입단 後 마이너에서 3달동안 루키에서 AAA까지 폭격하고 메이저로 콜업된 말도 안되는 사기캐였다.

훗날 본인 인터뷰에서 이때 마이너에서 배운 것은 그저 포수사인 읽는 법이었다니까...

마이너를 폭격하고 메이저에 콜업. 첫 등판 상대가 마이크 피아자였지만 삼진을 먹이며 짧고 굵은 쇼케이스의 서막을 알렸다.


fWAR 기준으로 아직도 김병현을 넘어서는 애리조나 불펜이 '없다'.

애리조나 구단이 건립되고나서 수많은 불펜들이 몸 담았지만 그 중 '전체 1등'이 김병현이라는 뜻이다.


즉, 애리조나 마무리 김병현은 가히 메이쟈 전체에 놓고봐도 1티어에 근접한 투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뭐 임팩트 있는 선수들은 많지만 그중 김병현 임팩트는 꽤 특별한 편이었다.


솔까 박찬호도 그랬지만 좆키도 전성기에 무브먼트 하나는 쥑여줬는데 물론 둘다 제구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행보

드디어 잃어버린 절대반지 찾았다. 반지를 찾은 이유가 무척 김병현스러운데 차 트렁크 청소하다가 찾았단다.



은퇴한 줄 알았는데 도미니카 리그에서 뛴단다.

이미 연세가 38이라 부활은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응원합니다.


이 문단은 다음 대상의 근황을 서술합니다.
이 문단은 다음 대상의 근황을 설명합니다.
물론 그 근황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 보고 있는 내용보다 더 최신의 소식을 알고 계신다면 문서에 서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디시위키가 섭종하는 바람에 이 틀은 영원히 승리 출소 짤로 고정될 예정입니다.

학교 선배인 성영재가 가르치는 고교얼라들 가르치며 개인훈련중이라 칸다. 기아에서 은퇴식...해줄라나?

한화에서 뛰며 자기 동명이인도 만날 뻔했는데 성사되었으면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공 찾아 끝까지 도전했는데 끝마무리가 꽤나 아쉬운 케이스다.


그래도 제2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아프지 마소.

2018시즌 애리조나 디백스 홈 개막전에서 시구자로 등장했다. 다른 경기도 아니고 홈개막전에서 시구자다.

애리조나의 김병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

정작 시구에선 특유의 언더스로가 아닌 오버스로로 대강 던졋는데, 그냥 똘끼부린 게 아니라 중학교 시절까지 오버스로로 던지다가 그 뒤에 언더로 전향한 거라 이런 자리에서나마 오버로 던지고 싶었던 거였다고 함.

그 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흔줄에 호주 리그에서 뛴다고 하심. 여기에서 9경기 1승 1세이브에 0점대 방어율 찍으셨는데, 메이저에서도 자기 공이 불만족스러웠는데 여기에서 겨우 제대로 공을 던진 것 같다면서 결국 공식적으로 은퇴를 시사하셨다. 그동안 수고하셧습니다.

은퇴 뒤엔 광주에 수제 햄버거집 차리셨다. 이름이 모교 이름을 딴 '光州一고'. (정말로 저리 쓰여 있더라)

사실 미국에서도 스시 체인점 크게 차려서 돈 졸라 잘버신다. 요식업에 일가견이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