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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좆만한 도시에 광주를 연결해 주시는 버스가 계신다. 바로 애미뒤진 [[나주 버스 160|160번]]이다.
이런 좆만한 도시에 광주를 연결해 주시는 버스가 계신다. 바로 애미뒤진 [[나주 버스 160|160번]]이다.


==아웃풋==
== 행정구역 ==
*성모님이 나타났다고 구라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파문제조기]]
=== 舊 나주목 지역 ===
*[[나대용]]
==== 송월동 ====
*[[기대승]]: 광산구출신이지만 당시 광산구대부분은 나주땅이었으니 여기 기재.
==== 영강동 ====
*[[권성덕|아암!!아⬆⬆⬆⬆암!!!!]]
==== 금남동 ====
*배
==== 성북동 ====
==== 영산동 ====
==== 이창동 ====
==== 문평면 ====
 
'''文平面'''
 
면적 46.99㎢. 면소재지는 안곡리.
 
안곡(安谷), 송산(松山), 북동(北洞), 동원(東院), 대도(大道), 계로(桂老), 학동(鶴洞), 학교(學橋), 국동(國洞), 옥당(玉堂), 산호(山湖), 오룡(五龍)의 12개리를 관할한다.
 
과거 거평부곡(居平部曲)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아계면(芽界面) + 용문면(用文面) + 거평면(居平面) = 문평면이 되었다. 1983년 청정리, 운봉리, 신광리가 다시면으로 이관되었다.
 
면 서남부 삼각형지역은 산호평야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산지가 많아 동부의 금성산, 옥산, 북쪽 국사봉, 남쪽 신걸산등의 산지가 발달해있다. 고막천(古幕川)과 문평천일대에 경작지가 발달되어있다.
 
학교리 방동마을은 [[누에]]를 쳐 농가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축협 나주배합사료공장이 가동중이다.
 
오룡리에 [[나대용]]의 생가, 묘, 봉강사(鳳岡祠)가 있고 북동리, 학동리에 선돌, 동원리 송재사(松齋祠)를 비롯해 20여개의 사, 제가있다. 쪽색염색을 하는 윤병운슨상님이 본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있다.
 
==== 노안면 ====
{{닉값}}
 
'''老安面'''


==행정구역==
면적 42.54㎢. 면 소재지는 금동리. 동쪽, 북쪽으로 [[광주]]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문평면, 남쪽으로는 나주시내와 다시면과 접한다.
===나주시내===
===영산포===
정의


전라남도 나주시 영강동·영산동·가야동·이창동·부덕동 지역의 영산강 남안에 있었던 하항(河港).
금동(錦洞), 장동(長洞), 학산(鶴山), 도산(道山), 유곡(柳谷), 계림(桂林), 안산(安山), 용산(龍山), 구정(九亭), 영평(永平), 금안(金安), 오정(五亭), 양천(良川)의 13개리를 관할한다.  


명칭 유래
1914년 이로면(伊老面, 現 계림리, 금동리, 양천리, 오정리) + 금안면(金安面, 現 구정리, 금안리, 안산리, 영평리, 용산리) + 복암면(伏巖面, 現 도산리, 유곡리, 장동리, 학산리) = 노안면이 되었다.


남포(南浦) 또는 금강진(錦江津)이라고도 하였다.
양천리, 오정리, 금안리등 서쪽 경계를 따라 망산(望山, 270m), 옥산(玉山, 334m), 금성산등의 구릉성산지가 많이 있다. 장성천(長城川)이 중앙을 통과해 영산강에 합류하는 하천변에 나주평야가 발달하였다. 나아아아주평야아아


자연환경
이 나아아아주평야아아는 토질이 좋고 수리시설이 잘되어있기 때문에 쌀, 보리, 무, 배추, 구릉에서 배, 복숭아등의 과일을 생산하며 특산품으로는 돌미나리와 방울토마토가 있다. 학산리에 식품제조공장과 오정리에 벽돌공장이 있다.


영산포의 주변 자연환경은 영산강을 중심으로 위로는 별봉산(168m)과 냉산(182m), 대포리봉(182m) 등이 있다. 영산강 아래로는 개산(189m), 노봉산(55m) 등이 있다. 최초 일본인 정착지 오른쪽으로 새끼내가 흐른다.
금안리에 쌍계정, 설재사(雪齋祠), 월정서원, 경렬사, 귀래정(歸來亭), 효사재(孝思齋)가 있고 영평리에는 만향정(晩香亭), 호남사(湖南祠), 경현서원이 있으며 계림리에는 영묘재(永墓齋)등이 있다.  


형성 및 변천
==== 다시면 ====
==== 동강면 ====
==== 공산면 ====
{{환빠}}


영산포가 있었던 지역 중에서 영산포의 중심지적 기능을 지녔던 곳은 영산동이다. 조선 초기에는 영산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주변 남부지방의 전세(田稅)를 거두어 이곳에 있던 영산창(榮山倉)에 모았다가 서울로 다시 운반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 이르러 이 기능이 영광의 법성창(法聖倉)으로 옮겨짐에 따라 영산창은 폐지되었다.
'''公山面'''


영산포의 조운(漕運)에 이용되던 기능은 상실되었으나, 이곳이 수운에 적당하여 주변지역 산물의 집산지 및 거래중심지로서의 기능은 지속되었다.
면적 32.32㎢. 면소재지는 금곡리.  


영산포쪽이 주요 포구가 된 것은 목포가 개항되고 일본인 미곡상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 영산강 유역의 주요 하항은 영암의 덕진포와 와우포, 무안의 사포와 학교, 함평의 고포원, 나주의 석포와 제창 및 영산포 등이었다. 1904년 동력선의 출항으로 목포와 영산포간의 운항시간이 단축되었고 결과적으로 영산포는 크게 번영하였다.
금곡(今谷), 남창(南昌), 백사(白沙), 신곡(新谷), 중포(中浦), 가송(佳松), 동촌(東村), 화성(花城), 상방(上方), 복룡(福龍)의 10개리를 관할한다.  


영산포의 시가지는 1910년 이전에 시장통을 중심으로 최초의 거리[町]인 元町 형성되기 시작했고, 교통로의 발달과 더불어 시가지는 날로 발전하여 밀집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1914년 한국인은 2,140명, 일본인은 857명이 거주하는 통계연보가 이를 증명한다. 일본인들이 조성한 산업도시가 되면서 1914년영산포는 호남선 철도와 통행료를 받는 목교가 준공되었다. 나주와 영산포구간의 침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제강점기에는 영산포의 물목부를 넓혀 홍수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하천 개수공사가 시행되기도 했다.
1914년 공수면(公水面) + 오산면(吾山面) = 공산면이 되었다. 이중 공수면은 지금의 금곡리, 복용리, 상방리, 화성리, 남창리, 동촌리이고 오산면은 그 나머지지역이다.  


1960년대까지는 포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철도교통과 도로의 건설에 의한 교통의 발달과 토사퇴적의 증가는 영산포의 하항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하였다. 현재는 이곳에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등대마저도 폐쇄되었으나, 이 등대는 2004년 12월 등록문화제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동쪽가송리와 서쪽 경계의 저산성 산지를 제외하고는 밭으로 이요되는 구릉지이다. 삼포강(三浦江)하류 화성리 일대는 넓은 충적평야인 공산평야가 발달되어있다.  


고려시대에는 영산현, 후에 영산군에 속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나주목(羅州牧)에 속하였다. 1904년에는 이 지역이 나주군 지량면(知良面)과 상곡면(上谷面)으로 나누어졌으나 합하여 양지면(良知面)이 되었다. 1927년영산포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에는 나주군 나주읍과 병합하여 금성시가 되었고 1986년나주시로 변경되었다.
, 방죽에서 나오는 [[민물새우]]가 특산품이었지만 지금은 씨가 말랐고 갈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  


현황
[[일제강점기]]때 [[금]], [[은]]이 채굴되었던 덕음광산이 신곡리에 있다.


영산포는 과거의 수운 기능은 상실했지만, 호남선과 여러 국도·지방도 등이 이 지역을 지나고 있어 육상교통의 주요지역이며 교통요지로서의 기능은 현재도 수행하고 있다.
가송리, 남창리, 백사리, 상방리, 중포리에 48기의 고인돌이 산재해있으며 화성리와 중포리에 6기의 고분이 있다. 또한 가송리에는  영효재(永孝齋)를 포함한 10개의 재가 있으며 남창리에는 원사정(遠思亭)등 3개의 정자가 있다.  


옛 영산포 선창에서 정미소 거리까지 7백50여 미터에 당시 형성된 시가지 모습과 일본식 가옥, 상가 등 1백여 채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경관은 지역 사람들의 문화, 생활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지역의 자산이 되고 있다. 1950년 이전에 건축된 일식상가건물, 주거건물, 정미소건물, 창고 등이 있어 과거를 느낄 수 있지만 그 근대 건축물도 최근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주몽#2007년 대유행한 주작드라마|환뽕드라마]]가 촬영된 세트장이 있다.


한편 황산포 주변은 홍어로 유명하다. 신안이나 목포 등에서 실은 홍어가 영산포에 이를 때쯤 맛이 제일이라 이곳에 홍어집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먹거리를 간직한 영산포 주변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 반남면 ====


[네이버 지식백과] 영산포 [榮山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潘南面'''


===남평읍===
면적 20.35㎢. 면소재지는 흥덕리.


신라때 주마다 정을 하나씩 두었는데, 전남일대에 설치된 무진주엔 이곳에 미동부리정을 두었다.  
흥덕(興德), 덕산(德山), 석천(石川), 성계(聖溪), 신촌(新村), 대안(大安), 청송(靑松)의 7개리를 관할한다.  


舊남평군의 중심지이다. [[문재인|차마 말할 수 없는 그분]]의 본관인 남평문씨가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백제]]이전까지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라 불렸고 [[신라]]때는  반남군(潘南郡)으로서 [[영암군]]에 있던 야로현(野老縣), 곤미현(昆湄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하지만 고려초에 나주의 속현으로 강등크리먹었다. [[한명회]]가 면리제를 실시함에 따라 반남ㅁ년이 되었다.


이 남평군은 남평읍, 산포면, 금천면, 빛가람동, 봉황면, 다도면에 있었다.
170대키의 성인남성 4~5명은 들어갈법한 거대한 항아리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어만든 [[마한]]식 [[옹관묘]]가 본면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흥덕리에 산재해있다. 이 옹관묘들은 나주 반남 고분군(사적 513호)로 묶여서 관리되고 있는 상태.  


===세지면===
1914년 25개리가 7개리로 개편되었다.
===왕곡면===
===반남면===


백제땐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라고 하고 신라때부터 반남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앙에 자미산(紫微山)을 비롯한 산들이 동서를 나누듯 퍼져있으나 전체적으로 구릉지와 평지가 발달되어있다. 삼포강이 동남쪽으로 북류, 대안리를 질러 서류하며, 유역에 비옥한 반남평야가 형성되어있다.  


[[안동 김씨]], 풍양조씨 못지않게 많은 왕후, 왕세자빈을 배출한 반남박씨가 이곳을 관향으로 삼고 있다.  
상기한 옹관묘외에도 신촌리 반계정(潘溪亭), 반남서원(潘南書院), 흥덕리 자미정(紫微亭), 상로재(霜露齋), 석실묘, 청송리 영사재(永思齋), 대안리 자미산성, 석천리 석천사(石泉寺)등이 있다.  


마한식 옹관묘문화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신촌리 고분군과 국립나주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장동 김씨]], 풍양 조씨 못지않게 많은 왕후, 왕세자빈을 배출한 [[반남 박씨]]의 관향인 만큼 그들과 관련된 문화재도 여럿있다.  


이외에 대안리고분군과 덕산리고분군이 있다.
==== 왕곡면 ====


===공산면===
'''王谷面'''
{{환빠}}


나주부 공수면과 오산면이 스까되어서 만들어졌다.  
면적 30.12㎢. 면소재지는 덕산리.


[[주몽#2007년 대유행한 주작드라마|역사왜곡드라마]]가 촬영된 세트장이 있다.
덕산(德山), 본량(本良), 옥곡(玉谷), 송죽(松竹), 월천(月川), 화정(化丁), 행전(杏田), 신원(新院), 양산(良山), 장산(長山), 신가(新佳), 신포(新浦)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동강면===
1914년 마산면(馬山面) + 욱곡면(郁谷面) + 전왕면(田旺面) = 왕곡면이 되었다.
===다시면===
호남선 열차가 정차한다


===문평면===
서남쪽 공산면과의 경계를 제외하면 전지역이 평지다. 논과 밭의 비율이 2:1이며, 쌀, 보리, 원예작물, 과일, 인초, 유채, 생강의 특용작물이 재배된다. 이곳의 인초는 나주전체 인초생산량의 3분지 1이상을 차지하며 장산리 공장에서 인초가 돗자리로 가공된다.
===노안면===
===금천면===


1914년 남평군 금마산면과 어천면이 합쳐져서 금천면이 되었다. 나주배의 본산이며 나주배 말고도 수많은 과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 일대를 제외한 빛가람동 대부분이 금천면 관할이었다.
[[금]]과 은이 채굴되는데, 신포리에 세봉광업소가 있다.  


===산포면===
신포리 봉련사(鳳連寺), 추원재(追遠齋), 두봉사(斗峰祠), 경앙당(景仰堂), 지석묘, 송죽리 금사정(錦社亭), 사모재(思慕齋), 김효병가옥, 화정리 영모재, 옥곡리 모선당(慕先堂)이 있다. 장산리에는 공산면 토지사건으로 일어한 항일 농민운동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다도면===
나주호


===봉황면===
==== 세지면 ====
===빛가람동 (혁신도시)===
===舊 남평군 지역===
==== 빛가람동 ====
{{수도}}
{{수도}}
ㄴ공기업이 몰려있다.
ㄴ공기업이 몰려있다.
24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주인구의 23%가 여기산다
24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주인구의 23%가 여기산다


공기업 본사 16개가 이곳에 있다.
공기업 본사 16개가 이곳에 있다.
==== 남평읍 ====
신라때 주마다 정을 하나씩 두었는데, 전남일대에 설치된 무진주엔 이곳에 미동부리정을 두었다.
舊남평군의 중심지이다. [[문재인|차마 말할 수 없는 그분]]의 본관인 남평문씨가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이 남평군은 남평읍, 산포면, 금천면, 빛가람동, 봉황면, 다도면에 있었다.
==== 금천면 ====
1914년 남평군 금마산면과 어천면이 합쳐져서 금천면이 되었다. 나주배의 본산이며 나주배 말고도 수많은 과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 일대를 제외한 빛가람동 대부분이 금천면 관할이었다.
==== 산포면 ====
==== 봉황면 ====
==== 다도면 ====


==음식==
==음식==
배,홍어,곰탕으로 유명하다.국밥 빼먹지 말아
배,홍어,곰탕으로 유명하다.국밥 빼먹지 말아
==아웃풋==
*성모님이 나타났다고 구라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파문제조기]]
*[[나대용]]
*[[기대승]]: 광산구출신이지만 당시 광산구대부분은 나주땅이었으니 여기 기재.
*[[권성덕|아암!!아⬆⬆⬆⬆암!!!!]]
*배
[[분류:전라남도]]
[[분류:전라남도]]

2019년 4월 27일 (토) 21:12 판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좆퇴물입니다!!

오래 전 퇴물이 됐거나 진행 중인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딴 새끼들은 고민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갖다 버립시다!!
다만 대상이 각성하여 예토전생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서는 예토전생했습니다!
이 문서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오랫동안 사망했다가 최근 다시 살아났습니다!
???: 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ㄴ 나주 혁신도시 덕분에 인구가 서서히 늘어나는 중이라 카더라.

엣헴! 이 문서에 선비가 왔다 갔습니다.
이 문서는 선비님의 등장으로 인해 노잼이 되어가고 있는 문서입니다. 진지한 문서를 원하시면 위키백과로 가주십시오.

ㄴ 전라도 고을 중에서 양반이 가장 많이 나왔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신숙주와 문신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이 있다.

주의! 이 문서는으잉? 꼰대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이 문서는으잉? 카스트급 위계질서 조장하고으잉? 윗사람에겐 고개도 못 들면서으잉? 약자나 아랫사람한테는 훈장질하고으잉? 불합리에 항의하면으잉? 싸가지 없다 드립치는으잉? 개씨발새끼들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좆까 애미뒤진 꼰대새끼들아

ㄴ 어쩌면 부정적 시각이지만, 이곳은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이다. 윾교 탈레반들의 세가 엄청나서 오히려 동학군이 쫓겨나다시피 했다나.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전라도의 광역자치단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나주시

羅州市

Naju City

광역시도 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1읍 12면 7동 34법정동 448리 121통 1,289반
인구 총106,182명 (2017년 2월 기준)
남53,388명 여52,794명, 50,123세대
행정면적 608.5㎢
시장&국회의원 강인구 & 손금주
시청 소재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 1100
사이트 http://www.naju.go.kr/

개요

나아아아아아아주 평야!

원삼국시대부터 꽤나 큰 도시였고 마한백제한테 본진털리고 여기로 내려왔다. 덕분에 이곳에는 마한식 옹관묘가 바글바글하다.

하지만 신라가 전남지역을 꿀꺽한뒤 주의 치소를 무진군으로 옮겨서 좆망했다.

왕건슨상님덕분에 살아나서 광주가 도청이 되는 구한말까지 전라도의 '라'자를 담당할 정도로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중 하나였다.

덕분에 양반이 많았고 이지역 관료인 나주목은 평안감사, 과천현감과 함께 꿀보직으로 꼽혔다.

근데 여기 양반놈들이 동학농민운동때 어디 아랫놈들이 설친다며 농민국 진압을 위해 자발적으로 의병을 만들기도 했다.

광주로 몰려 인구가 7만까지 떨어지면서 사실상 시도 아닌 군취급을 받았으나 혁신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에게 뻥튀기 삥뜯는 한전과 같은 공기업들이 오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인구는 10만정도로 간신히 시라고 할 정도 --사람들 거의 시내, 영산포 빼곤 잘 안 보인다.--

그나마도 한 7만 8천까지 떨어졌다 광주전남혁신도시 개발로 10만 다시 되찾은 것.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깡촌이 나온다.

사실 시내라는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인간문화재 정관채 쪽염색장의 고향이자 거주지이다(영산고등학교에 미술선생님으로 계시기도 하신다)

참고로 나씨가 두개 있는데, 둘다 본관이 여기다.

의병때문에 원숭이들이 도청을 광주로 옮긴 이후 나주가 저꼴이 났다.

이런 좆만한 도시에 광주를 연결해 주시는 버스가 계신다. 바로 애미뒤진 160번이다.

행정구역

舊 나주목 지역

송월동

영강동

금남동

성북동

영산동

이창동

문평면

文平面

면적 46.99㎢. 면소재지는 안곡리.

안곡(安谷), 송산(松山), 북동(北洞), 동원(東院), 대도(大道), 계로(桂老), 학동(鶴洞), 학교(學橋), 국동(國洞), 옥당(玉堂), 산호(山湖), 오룡(五龍)의 12개리를 관할한다.

과거 거평부곡(居平部曲)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아계면(芽界面) + 용문면(用文面) + 거평면(居平面) = 문평면이 되었다. 1983년 청정리, 운봉리, 신광리가 다시면으로 이관되었다.

면 서남부 삼각형지역은 산호평야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산지가 많아 동부의 금성산, 옥산, 북쪽 국사봉, 남쪽 신걸산등의 산지가 발달해있다. 고막천(古幕川)과 문평천일대에 경작지가 발달되어있다.

학교리 방동마을은 누에를 쳐 농가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축협 나주배합사료공장이 가동중이다.

오룡리에 나대용의 생가, 묘, 봉강사(鳳岡祠)가 있고 북동리, 학동리에 선돌, 동원리 송재사(松齋祠)를 비롯해 20여개의 사, 제가있다. 쪽색염색을 하는 윤병운슨상님이 본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있다.

노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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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값도 좋지만 띄어쓰기부터 제대로 해라.

老安面

면적 42.54㎢. 면 소재지는 금동리. 동쪽, 북쪽으로 광주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문평면, 남쪽으로는 나주시내와 다시면과 접한다.

금동(錦洞), 장동(長洞), 학산(鶴山), 도산(道山), 유곡(柳谷), 계림(桂林), 안산(安山), 용산(龍山), 구정(九亭), 영평(永平), 금안(金安), 오정(五亭), 양천(良川)의 13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이로면(伊老面, 現 계림리, 금동리, 양천리, 오정리) + 금안면(金安面, 現 구정리, 금안리, 안산리, 영평리, 용산리) + 복암면(伏巖面, 現 도산리, 유곡리, 장동리, 학산리) = 노안면이 되었다.

양천리, 오정리, 금안리등 서쪽 경계를 따라 망산(望山, 270m), 옥산(玉山, 334m), 금성산등의 구릉성산지가 많이 있다. 장성천(長城川)이 중앙을 통과해 영산강에 합류하는 하천변에 나주평야가 발달하였다. 나아아아주평야아아

이 나아아아주평야아아는 토질이 좋고 수리시설이 잘되어있기 때문에 쌀, 보리, 무, 배추, 구릉에서 배, 복숭아등의 과일을 생산하며 특산품으로는 돌미나리와 방울토마토가 있다. 학산리에 식품제조공장과 오정리에 벽돌공장이 있다.

금안리에 쌍계정, 설재사(雪齋祠), 월정서원, 경렬사, 귀래정(歸來亭), 효사재(孝思齋)가 있고 영평리에는 만향정(晩香亭), 호남사(湖南祠), 경현서원이 있으며 계림리에는 영묘재(永墓齋)등이 있다.

다시면

동강면

공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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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제국주의, 국수주의, 파시즘 유사역사학에 빠져서 기초적인 사회 생활도 불가능한 관심종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퇴출해야 하는 쓰레기입니다!
역알못인 동시에 좆문가인 환빠들에개 마음껏 팩트폭력을 해 줍시다.

公山面

면적 32.32㎢. 면소재지는 금곡리.

금곡(今谷), 남창(南昌), 백사(白沙), 신곡(新谷), 중포(中浦), 가송(佳松), 동촌(東村), 화성(花城), 상방(上方), 복룡(福龍)의 10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공수면(公水面) + 오산면(吾山面) = 공산면이 되었다. 이중 공수면은 지금의 금곡리, 복용리, 상방리, 화성리, 남창리, 동촌리이고 오산면은 그 나머지지역이다.

동쪽가송리와 서쪽 경계의 저산성 산지를 제외하고는 밭으로 이요되는 구릉지이다. 삼포강(三浦江)하류 화성리 일대는 넓은 충적평야인 공산평야가 발달되어있다.

논, 방죽에서 나오는 민물새우가 특산품이었지만 지금은 씨가 말랐고 갈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 채굴되었던 덕음광산이 신곡리에 있다.

가송리, 남창리, 백사리, 상방리, 중포리에 48기의 고인돌이 산재해있으며 화성리와 중포리에 6기의 고분이 있다. 또한 가송리에는 영효재(永孝齋)를 포함한 10개의 재가 있으며 남창리에는 원사정(遠思亭)등 3개의 정자가 있다.

환뽕드라마가 촬영된 세트장이 있다.

반남면

潘南面

면적 20.35㎢. 면소재지는 흥덕리.

흥덕(興德), 덕산(德山), 석천(石川), 성계(聖溪), 신촌(新村), 대안(大安), 청송(靑松)의 7개리를 관할한다.

백제이전까지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라 불렸고 신라때는 반남군(潘南郡)으로서 영암군에 있던 야로현(野老縣), 곤미현(昆湄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하지만 고려초에 나주의 속현으로 강등크리먹었다. 한명회가 면리제를 실시함에 따라 반남ㅁ년이 되었다.

170대키의 성인남성 4~5명은 들어갈법한 거대한 항아리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어만든 마한옹관묘가 본면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흥덕리에 산재해있다. 이 옹관묘들은 나주 반남 고분군(사적 513호)로 묶여서 관리되고 있는 상태.

1914년 25개리가 7개리로 개편되었다.

중앙에 자미산(紫微山)을 비롯한 산들이 동서를 나누듯 퍼져있으나 전체적으로 구릉지와 평지가 발달되어있다. 삼포강이 동남쪽으로 북류, 대안리를 질러 서류하며, 유역에 비옥한 반남평야가 형성되어있다.

상기한 옹관묘외에도 신촌리 반계정(潘溪亭), 반남서원(潘南書院), 흥덕리 자미정(紫微亭), 상로재(霜露齋), 석실묘, 청송리 영사재(永思齋), 대안리 자미산성, 석천리 석천사(石泉寺)등이 있다.

장동 김씨, 풍양 조씨 못지않게 많은 왕후, 왕세자빈을 배출한 반남 박씨의 관향인 만큼 그들과 관련된 문화재도 여럿있다.

왕곡면

王谷面

면적 30.12㎢. 면소재지는 덕산리.

덕산(德山), 본량(本良), 옥곡(玉谷), 송죽(松竹), 월천(月川), 화정(化丁), 행전(杏田), 신원(新院), 양산(良山), 장산(長山), 신가(新佳), 신포(新浦)의 12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마산면(馬山面) + 욱곡면(郁谷面) + 전왕면(田旺面) = 왕곡면이 되었다.

서남쪽 공산면과의 경계를 제외하면 전지역이 평지다. 논과 밭의 비율이 2:1이며, 쌀, 보리, 원예작물, 과일, 인초, 유채, 생강의 특용작물이 재배된다. 이곳의 인초는 나주전체 인초생산량의 3분지 1이상을 차지하며 장산리 공장에서 인초가 돗자리로 가공된다.

과 은이 채굴되는데, 신포리에 세봉광업소가 있다.

신포리 봉련사(鳳連寺), 추원재(追遠齋), 두봉사(斗峰祠), 경앙당(景仰堂), 지석묘, 송죽리 금사정(錦社亭), 사모재(思慕齋), 김효병가옥, 화정리 영모재, 옥곡리 모선당(慕先堂)이 있다. 장산리에는 공산면 토지사건으로 일어한 항일 농민운동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세지면

舊 남평군 지역

빛가람동

이 문서는 특정 국가의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을 다룹니다.
변방지역을 떠나 이곳으로 왔겠지만 어차피 안 될 놈은 안 될 것입니다.

ㄴ공기업이 몰려있다.

24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주인구의 23%가 여기산다

공기업 본사 16개가 이곳에 있다.

남평읍

신라때 주마다 정을 하나씩 두었는데, 전남일대에 설치된 무진주엔 이곳에 미동부리정을 두었다.

舊남평군의 중심지이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분의 본관인 남평문씨가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이 남평군은 남평읍, 산포면, 금천면, 빛가람동, 봉황면, 다도면에 있었다.

금천면

1914년 남평군 금마산면과 어천면이 합쳐져서 금천면이 되었다. 나주배의 본산이며 나주배 말고도 수많은 과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 일대를 제외한 빛가람동 대부분이 금천면 관할이었다.

산포면

봉황면

다도면

음식

배,홍어,곰탕으로 유명하다.국밥 빼먹지 말아

아웃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