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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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개요 == | ||
대 프랑스 혁명전쟁과 이후 일어난 [[전쟁]]을 합쳐 부르는 말로 | |||
장장 100년 가까이 지속된 프랑스의 싸움이다. | 장장 100년 가까이 지속된 프랑스의 싸움이다. | ||
명장이자 희대의 개깡패 [[나폴레옹]]이 | 명장이자 희대의 개깡패 [[나폴레옹]]이 전 [[유럽]]과 싸운 전쟁이라 나폴레옹 전쟁이라 부른다. | ||
== 프랑스 혁명 전쟁의 배경 == | == 프랑스 혁명 전쟁의 배경 == | ||
프랑스 혁명 이후 왕도 처형한 상태에서 | 프랑스 혁명 이후 왕도 처형한 상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왕비]]가 [[오스트리아]]로 연락을 했는데 | ||
이를 아니꼽게 본 오스트리아가 화아악~ 동맹을 결성해서 전쟁을 선포한다 | 이를 아니꼽게 본 오스트리아가 화아악~ 동맹을 결성해서 전쟁을 선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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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 === 경과 === | ||
제 1 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는 라인 부근에 2개군 , 이탈리아에 1를 놔서 | 제 1 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는 라인 부근에 2개군 , 이탈리아에 1를 놔서 | ||
오스트리아를 포위한다 . 이후 조약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탈퇴 , | 오스트리아를 포위한다 . 이후 조약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탈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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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차 프랑스 동맹을 재결성하여 프랑스를 또 다시 조여온다 | 하지만 2차 프랑스 동맹을 재결성하여 프랑스를 또 다시 조여온다 | ||
이럴때 프랑스 정치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란 군인이 정치를 장악한다 | 이럴때 프랑스 정치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란 군인이 [[쿠데타|정치를 장악한다]]. | ||
또다시 오스트리아 , 영국 등은 버로우 . 프랑스는 승리함 | 또다시 오스트리아 , [[영국]] 등은 버로우 . 프랑스는 승리함 | ||
아따 신나노 ㅋㅋ | 아따 신나노 ㅋ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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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정부의 생존과 승인 , 프랑스의 영토 확장 등 | 혁명정부의 생존과 승인 , 프랑스의 영토 확장 등 | ||
아미앵 조약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 돌입 , | 아미앵 조약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 돌입 , [[징병제|국민 개병제]] 실시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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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부 털려버린다.나폴레옹 즉위 1주년이던 때 | 이후 전부 털려버린다.나폴레옹 즉위 1주년이던 때 | ||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도발을 하였고 아우스터리츠 부근에서 가볍게 털어먹었다 | |||
하지만 해전에선 [[피에르 빌뇌브]] 제독이 전술의 강려크함을 견디지못하고 털리고 만것 | 하지만 해전에선 [[피에르 빌뇌브]] 제독이 전술의 강려크함을 견디지못하고 털리고 만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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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차 프랑스 동맹 === | === 제 4 차 프랑스 동맹 === | ||
프랑스가 중부 독일까지 손을 대자 겁이 난 | 프랑스가 중부 독일까지 손을 대자 겁이 난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 ||
다시 군대를 집결시켰다. 근데 아우어슈터스 부근에서 또 털린다. | 다시 군대를 집결시켰다. 근데 아우어슈터스 부근에서 또 털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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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이미 식민지를 갖고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 영국은 이미 식민지를 갖고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 ||
하지만 당시 유럽대륙에서 영국공산품의 수요가 어마어마해서 | 하지만 당시 유럽대륙에서 영국공산품의 수요가 어마어마해서 이게 차단되어서 영국에도 타격이 심했다. | ||
또한 |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농업국가로서 농산물을 수출해서 먹고살았는데 그게 막힌거다. | ||
그리고 | 그리고 영국 공산품의 자리를 프랑스 공산품이 메꾸어 프랑스의 공업만 미친듯이 발전하게해주니 | ||
다른 유럽나라들이 반불감정으로 | 다른 유럽나라들이 반불감정으로 똘똘 뭉치는것도 당연하다. | ||
=== 전개 === | === 전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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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리가 난 프랑스가 군대를 재정비해 러시아군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린다 | 진저리가 난 프랑스가 군대를 재정비해 러시아군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린다 | ||
이로 인해 | 이로 인해 [[폴란드]]가 다시 살아나고 [[스웨덴]]도 프랑스 영향권 안에 들어가버렸다 | ||
== 진흙탕 싸움 == | == 진흙탕 싸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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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끼워들고 게릴라와 영국이 지원하면서 싸움은 | 나폴레옹이 끼워들고 게릴라와 영국이 지원하면서 싸움은 | ||
[[야갤]]에서의 홍통대전급 | [[야갤]]에서의 홍통대전급 진흙탕 싸움이 되버렸다 | ||
== 제 5차 프랑스 동맹 == | == 제 5차 프랑스 동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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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 러시아가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가까이 지내자 뿔이 난 나폴레옹이 쳐들어갔다 | ||
여기서 그는 실책을 저질르는데 러시아의 겨울을 생각치 못한것이다. 가는 도중 프랑스 병사들이 동사하는 등 | 여기서 그는 실책을 저질르는데 러시아의 겨울을 생각치 못한것이다. 가는 도중 프랑스 병사들이 동사하는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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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 | === 이후 === | ||
나폴레옹은 |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서 탈출한다. | ||
나폴레옹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연합군들은 그의 탈출을 듣자마자 즉시 연합군을 편성하고 워털루에서 싸운다. | 나폴레옹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연합군들은 그의 탈출을 듣자마자 즉시 연합군을 편성하고 워털루에서 싸운다. | ||
급조된 | 급조된 프랑스 군인데다가 나폴레옹 본인도 건강이 상병신이라 제대로 지휘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끝차이로 워털루에서 진 걸 보고 개 쫄은 연합국은 | ||
ㄴ 병사들은 베테랑이었음. 선임 근위대도 건재하다. 근데 참모진에서 빵꾸남 | ㄴ 병사들은 베테랑이었음. 선임 근위대도 건재하다. 근데 참모진에서 빵꾸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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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9일 (화) 02:51 판
나폴레옹의 가장 위대한 승리,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묘사한 그림. 프랑스 항목에도 등판한다.
| “ |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
” |
개요
대 프랑스 혁명전쟁과 이후 일어난 전쟁을 합쳐 부르는 말로
장장 100년 가까이 지속된 프랑스의 싸움이다.
명장이자 희대의 개깡패 나폴레옹이 전 유럽과 싸운 전쟁이라 나폴레옹 전쟁이라 부른다.
프랑스 혁명 전쟁의 배경
프랑스 혁명 이후 왕도 처형한 상태에서 왕비가 오스트리아로 연락을 했는데
이를 아니꼽게 본 오스트리아가 화아악~ 동맹을 결성해서 전쟁을 선포한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각처에서 전쟁이 팡팡 터지는데 프랑스군의 높은 사기로 인해 많은 곳에서 프랑스가 승리한다
경과
제 1 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는 라인 부근에 2개군 , 이탈리아에 1를 놔서
오스트리아를 포위한다 . 이후 조약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탈퇴 ,
하지만 2차 프랑스 동맹을 재결성하여 프랑스를 또 다시 조여온다
이럴때 프랑스 정치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란 군인이 정치를 장악한다.
또다시 오스트리아 , 영국 등은 버로우 . 프랑스는 승리함
아따 신나노 ㅋㅋ
결과
혁명정부의 생존과 승인 , 프랑스의 영토 확장 등
아미앵 조약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 돌입 , 국민 개병제 실시 등
나폴레옹 전쟁
나폴레옹이 아니꼬운 유럽의 국가들이 대대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전부 털려버린다.나폴레옹 즉위 1주년이던 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도발을 하였고 아우스터리츠 부근에서 가볍게 털어먹었다
하지만 해전에선 피에르 빌뇌브 제독이 전술의 강려크함을 견디지못하고 털리고 만것
프랑스는 이후 영국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육지 장악을 시도했고 그와 동시에
오스트리아가 또 프랑스에 조약을 찍고 굴복했다.
제 4 차 프랑스 동맹
프랑스가 중부 독일까지 손을 대자 겁이 난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다시 군대를 집결시켰다. 근데 아우어슈터스 부근에서 또 털린다.
대륙봉쇄령
영국을 고립시킬려고 대륙봉쇄령을 발령했다. 하지만 유럽 연합국들에게만 피해가 가는것이 영국은 이미 식민지를 갖고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유럽대륙에서 영국공산품의 수요가 어마어마해서 이게 차단되어서 영국에도 타격이 심했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농업국가로서 농산물을 수출해서 먹고살았는데 그게 막힌거다. 그리고 영국 공산품의 자리를 프랑스 공산품이 메꾸어 프랑스의 공업만 미친듯이 발전하게해주니 다른 유럽나라들이 반불감정으로 똘똘 뭉치는것도 당연하다.
전개
또 다시 러시아군과 프로이센군이 뭉쳐서 싸웠지만 다시 한번 털리고 찌그러지게 되었는데 계속 된 시비에 진저리가 난 프랑스가 군대를 재정비해 러시아군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린다
이로 인해 폴란드가 다시 살아나고 스웨덴도 프랑스 영향권 안에 들어가버렸다
진흙탕 싸움
원래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왕권 쟁탈전 싸움이었으나
나폴레옹이 끼워들고 게릴라와 영국이 지원하면서 싸움은
야갤에서의 홍통대전급 진흙탕 싸움이 되버렸다
제 5차 프랑스 동맹
질리지도 않는지 오스트리아가 또 프랑스에 시비를 걸었다 . 그것도 카를 대공이 ㄷㄷ
이에 나폴레옹은 또 다시 격파 . 오스트리아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유일하게 패하는데 이게 카를 대공이 지휘한 전투이자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해서 패배한 전투다
그러나 다시 바그람 전투에서 승리한다
10월 14일 다시 오스트리아에게 조약을 받아내며 승자가 누군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며 5차 동맹은 끝이 난다
러시아가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가까이 지내자 뿔이 난 나폴레옹이 쳐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실책을 저질르는데 러시아의 겨울을 생각치 못한것이다. 가는 도중 프랑스 병사들이 동사하는 등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지고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텅빈 도시에 멍하니 있다가 습격을 받는등 별의 별일이 다 터지고 있었다
이걸 기회로 그동안 존나 처맞고 웅크리고 있던 다른 나라놈들이 다시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연합해서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존나게 두들겨 팼다.
물론 개깡패 나폴레옹과 정면에서 싸우면 승산이 없기 때문에 나폴레옹 본대와의 교전을 최대한 피하고 프랑스 본국을 휘젓고 다닌다.
결국 견딜 수 없던 프랑스놈들이 나폴레옹을 포기하고, 보급이 안되니 나폴레옹은 좆망하고 엘바 섬으로 추방된다
이후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서 탈출한다.
나폴레옹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연합군들은 그의 탈출을 듣자마자 즉시 연합군을 편성하고 워털루에서 싸운다.
급조된 프랑스 군인데다가 나폴레옹 본인도 건강이 상병신이라 제대로 지휘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끝차이로 워털루에서 진 걸 보고 개 쫄은 연합국은
ㄴ 병사들은 베테랑이었음. 선임 근위대도 건재하다. 근데 참모진에서 빵꾸남
나폴레옹을 대서양의 절해고도인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보낸다.
연합국은 빈 체제를 성립해 프랑스를 부르봉 왕가로 되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