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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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다시 오스트리아에게 조약을 받아내며 승자가 누군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며 5차 동맹은 끝이 난다 | 10월 14일 다시 오스트리아에게 조약을 받아내며 승자가 누군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며 5차 동맹은 끝이 난다 | ||
== [[ | == [[러시아원정 (무리수)]] == | ||
2015년 7월 19일 (일) 20:48 판
개요
대프랑스 혁명전쟁과 이후 일어난 전쟁을 합쳐 부르는 말로
장장 100년 가까이 지속된 프랑스의 싸움이다
프랑스 혁명 전쟁의 배경
프랑스 혁명 이후 왕도 처형한 상태에서 왕비가 오스트리아로 연락을 했는데
이를 아니꼽게 본 오스트리아가 화아악~ 동맹을 결성해서 전쟁을 선포한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각처에서 전쟁이 팡팡 터지는데 예상외로 프랑스가 승리한다
경과
제 1 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는 라인 부근에 2개군 , 이탈리아에 1를 놔서
오스트리아를 포위한다 . 이후 조약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탈퇴 ,
하지만 2차 프랑스 동맹을 재결성하여 프랑스를 또 다시 조여온다
이럴때 프랑스 정치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란 군인이 정치를 장악한다
또다시 오스트리아 , 영국 등은 버로우 . 프랑스는 승리함
아따 신나노 ㅋㅋ
결과
혁명정부의 생존과 승인 , 프랑스의 영토 확장 등
아미앵 조약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 돌입 , 국민개병제 실시 등
나폴레옹 전쟁
나폴레옹이 아니꼬운 유럽의 국가들이 대대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전부 털려버린다.나폴레옹 즉위 1주년이던 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도발을 하였고 아우스터리츠 부근에서 가볍게 털어먹었다
하지만 해전에선 피에르 빌뇌브 제독이 전술의 강려크함을 견디지못하고 털리고 만것
프랑스는 이후 영국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육지 장악을 시도했고 그와 동시에
오스트리아가 또 프랑스에 조약을 찍고 굴복했다.
제 4 차 프랑스 동맹
프랑스가 중부 독일까지 손을 대자 겁이 난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다시 군대를 집결시켰다. 근데 아우어슈터스 부근에서 또 털린다.
대륙봉쇄령
영국을 고립시킬려고 대륙봉쇄령을 발령했다. 하지만 유럽 연합국들에게만 피해가 가는것이 영국은 이미 식민지를 갖고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전개
또 다시 러시아군과 프로이센군이 뭉쳐서 싸웠지만 다시 한번 털리고 찌그러지게 되었는데 계속 된 시비에 진저리가 난 프랑스가 군대를 재정비해 러시아군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린다
이로 인해 폴란드가 다시 살아나고 스웨덴도 프랑스 영향권 안에 들어가버렸다
진흙탕 싸움
원래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왕권 쟁탈전 싸움이었으나
나폴레옹이 끼워들고 게릴라와 영국이 지원하면서 싸움은
야갤에서의 홍통대전급 진흙탕싸움이 되버렸다
제 5차 프랑스 동맹
질리지도 않는지 오스트리아가 또 프랑스에 시비를 걸었다 . 그것도 카를 대공이 ㄷㄷ
이에 나폴레옹은 또 다시 격파 . 오스트리아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유일하게 패하는데 이게 카를 대공이 지휘한 전투이자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해서 패배한 전투다
그러나 다시 바그람 전투에서 승리한다
10월 14일 다시 오스트리아에게 조약을 받아내며 승자가 누군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며 5차 동맹은 끝이 난다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가까이 지내자 뿔이 난 나폴레옹이 쳐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실책을 저질르는데 러시아의 겨울을 생각치 못한것이다. 가는 도중 프랑스 병사들이 동사하는 등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지고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텅빈 도시에 멍하니 있다가 습격을 받는등 별의 별일이 다 터지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로 퇴각하는 도중에 라이프니치 전투에서 존나게 두들겨 맞고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추방된다
이후
워털루 전투에서 두들겨 맞고 복귀는 실패했다.
빈 체제 성립과 프랑스는 부르봉 왕가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