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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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빈(張道斌)이 ≪국사 國史≫(1916·1946)에서 ‘남북국’시대를 설정했고, 권덕규(權悳圭)의 ≪조선유기 朝鮮留記≫(1924)와 황의돈(黃義敦)의 <상고시대 上古時代>(1943)라는 글에서는 각기 ‘남북조’시대를 설정하였다.
장도빈(張道斌)이 ≪국사 國史≫(1916·1946)에서 ‘남북국’시대를 설정했고, 권덕규(權悳圭)의 ≪조선유기 朝鮮留記≫(1924)와 황의돈(黃義敦)의 <상고시대 上古時代>(1943)라는 글에서는 각기 ‘남북조’시대를 설정하였다.


해방 이후 새로운 사학의 시각에서 엮어진 역사서에는 대개 발해사를 국사의 체계에 넣어 서술하고 있으나 남북국사의 체계 자체는 거론되지 않았다. 그후 식민지사관의 극복과 민족의 주체의식이 고조되던 1970년 무렵부터 남북국시대론이 다시 거론되었다.
해방 이후 새로운 사학의 시각에서 엮어진 역사서에는 대개 발해사를 국사의 체계에 넣어 서술하고 있으나 남북국사의 체계 자체는 거론되지 않았다.


1970년 5월에 개최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이우성(李佑成)이 <삼국사기와 발해문제>라는 논문 발표를 통해 국사가 남북국사로 엮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국사학계에 자극을 주게 되어 한우근(韓㳓劤)의 ≪한국통사 韓國通史≫가 개설서로서는 처음으로 이 체계를 따랐다.
그후 [[식민지사관]]의 극복과 민족의 주체의식이 고조되던 1970년 무렵부터 남북국시대론이 다시 거론되었다.


1980년대에는 많은 개설서에서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채택하기 시작했고, 송기호(宋基豪)·한규철(韓圭哲) 등이 다시 이 용어 사용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국사 교과서에도 반영되어 한국사에서 발해사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1970년 5월에 개최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이우성(李佑成)이 <삼국사기와 발해문제>라는 논문 발표를 통해 국사가 남북국사로 엮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국사학계에 자극을 주게 되어 한우근(韓㳓劤)의 ≪한국통사 韓國通史≫가 개설서로서는 처음으로 이 체계를 따랐다.
 
1980년대에는 많은 개설서에서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채택하기 시작했고, 송기호(宋基豪)·한규철(韓圭哲) 등이 다시 이 용어 사용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국사]] 교과서에도 반영되어 한국사에서 발해사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 남북국시대라는 개념에 대한 평가 ===


근래에 남북국시대론이 수용되는 추세에 있기는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아, 아직도 발해사는 한국사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제기된 반론들은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근래에 남북국시대론이 수용되는 추세에 있기는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아, 아직도 발해사는 한국사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제기된 반론들은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대구분의 기준과 관련된 문제이다. 고병익(高柄翊)·이기백(李基白)이 제기한 것으로,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남북국시대라는 것이 왕조에 따른 시대구분이기 때문에 역사서술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 '''시대구분의 기준과 관련된 문제이다.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남북국시대라는 것이 왕조에 따른 시대구분이기 때문에 역사서술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다른 기준을 가지고 시대구분을 한다고 하더라도 왕조에 따른 시대구분 방식은 역사 서술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삼국시대란 용어나 중국사에서 남북조시대란 용어가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를 인정할 경우, 발해와 신라를 포괄해 ‘통일신라시대’라고 하는 것보다는 ‘남북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점을 덜 안고 있다. --고병익(高柄翊), 이기백(李基白) 주장.
 
*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하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한 주장이다. 이들은 한국학자들이 주장한 남북국시대론의 논리적 취약성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남북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마다 고사쿠(浜田耕策), 이성시(李成市) 주장.


그러나 다른 기준을 가지고 시대구분을 한다고 하더라도 왕조에 따른 시대구분 방식은 역사 서술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삼국시대란 용어나 중국사에서 남북조시대란 용어가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남북국시대론에 논리적 취약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반대의 논리가 타당성을 얻을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할 경우, 발해와 신라를 포괄해 ‘통일신라시대’라고 하는 것보다는 ‘남북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점을 덜 안고 있다.
반면에 중국학자나 러시아학자들은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남북국시대론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둘째,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하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한 주장이다. 하마다 고사쿠(浜田耕策)나 이성시(李成市)는 한국학자들이 주장한 남북국시대론의 논리적 취약성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남북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발해는 고구려 유민을 주체로 한 국가였으므로, 역시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북국시대론에 논리적 취약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반대의 논리가 타당성을 얻을 수는 없다. 반면에 중국학자나 러시아학자들은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남북국시대론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발해는 고구려 유민을 주체로 한 국가였으므로, 역시 수긍하기 어렵다.
* '''현재적인 입장이 강하게 투영된 주장들이다. 이것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뉜다.'''


셋째, 현재적인 입장이 강하게 투영된 주장들이다. 이것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뉜다.
① '''발해와 신라는 하나의 통일체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므로 남북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① 발해와 신라는 하나의 통일체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므로 남북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견해가 대표적인 것으로서,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 용어의 사용은 반대하고 있다.
[[북한]]의 견해가 대표적인 것으로서,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 용어의 사용은 반대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사회구성체를 바탕으로 시대구분을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더 근저에 깔린 이유는 현재의 남북한 관계와 직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이 사회구성체를 바탕으로 시대구분을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더 근저에 깔린 이유는 현재의 남북한 관계와 직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