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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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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머호 (토론)님의 2017년 7월 11일 (화) 19:17 판
수년간 우려먹은 진한 사골국입니다.
이 문서는 사골을 우리다 못해 원자 단위로 사골을 우려먹은 문서입니다. 고만 좀 우려먹어라.


미군에 존재하는 바퀴벌레급 존재 2차세계대전때 쓰던 M1 개런드가 진화한 버젼이다.

개요

스프링필드와 미육군합작 7.62mm 지원화기다.

저작권은 미유뀬꼬[1]

M1을 반자동에서 완전자동으로 개량하며 BAR(브라우닝 오토 라이플)의 탄창을 결합한다는

병신같지만 멋있어은 미육군[2]이 주도한 계획인데,

세계대전 종결로 개발계획이 연기됬었다 다시 진행되며 결국 58년에 채택된 총기

서론

M14의 개량형 Mk.14 EBR

가장 성공적인 반자동 소총이라 할 수 있는 M1 개런드(이하 M1)는 미국을 2차대전에서 승리하게만든 공신이었다. 독일이 전쟁 말기에 차원이 전혀 다른 StG44 같은 돌격소총을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전쟁 내내 독일군이 사용한 주력 소총은 볼트액션식 Kar98k였다. 당연히 평균적인 미군 각개 병사의 화력이 독일보다 우세했다.

반면 소련은 미국처럼 다양한 종류의 반자동소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배를 탄 연합국이었지만 만일 미군이 SVT-40 같은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소련군과 교전을 벌인다면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무서운 가능성을 선보인 돌격소총은 장차전에서 사용할 소총이 어떤 것일지 충분히 예고했다. 미군 당국은 1930년대 제작도니 M1으로 더 이상 우세를 계속 담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당위성으로 말미암아 이후 미군이 사용할 새로운 소총이 탄생했다. 바로 미군이 사상 처음으로 채택한 자동소총인 M14 전투소총이다. M1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면서도 성능은 훨씬 뛰어난 신개념 소총이었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등장과 달리 불과 10년도 안 되어 일선 제식화기에서 물러나야 했다. 무겁고 반동이 심하다는 M1의 단점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새로운 소총에 대한 생각들

소부대간 교전 시에 M1918 BAR와 M1으로 무장한 미군이 MG 42와 Kar98k를 장비한 독일군과의 교전에서 그다지 밀리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자동소총, 즉 돌격소총으로만 무장한 소부대의 화력은 대단할 것이고 보급도 유리하리라 예상할 것이다. 사실 그런모습은 StG44를 사용한 독일군이 이미 보여주었다. 비록 적은 수량만 보급되어 전쟁의 양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StG44는 그야말로 경이적인 전투력을 선보였다.

자동소총은 총기 개발자들이 오래전부터 꿈꾸아온 소총이다. 휴대하기 편리한 기관총의 개념인데 이를 막상 구현하는 데는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다. 자동화된 총을 만드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휴대가 가능한 소총에 이를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반동과 정확성이 반감하는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권총탄을 이용한 기관단총이 그 대안으로 일부 사용되기도 했지만 오로지 근접전에서 연사가 가능한 대신 사거리, 파괴력, 정확도는 철저히 희생했다. 더불어 말단 부대 병사들의 기본화기와 사용 탄이 이러지리 나뉘는 것은 보급이나 부대 유지상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에 미군 당국은 그들이 워낙 신뢰하고 있는 M1을 완전 자동화한다면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개발이 아닌 개량

새로운 소총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미군은 2차대전이 막바리조 치닫던 1943년 말 M1을 만든 존 C. 개런드에게 자동소총 개발을 의뢰했다. 연구 끝에 개런드는 20발들이 BAR 탄창을 꼽을 수 있는 실험용 소총 T20을 1945년에 선보일 수 있었다. 사수의 선택에 따라 자동 혹은 반자동사격을 할 수 있었는데 전반적인 모양은 M1과 상당히 흡사했다.

기존에 M1에 사용하던 7.62x63mm 스프링필드탄 대신 이를 조금 단축하여 장약량을 줄인 7.62x51mm 나토탄을 사용하면서 반동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탄환만 바꾸고 총의 형태는 대대적인 개량이나 개선 없이 기존 M1의 모습을 그대로 담습한 것은, T20이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소총이 되기에는 결정적인 한계로 다가왔다. 다시말해 T20은 m1의 확장판에 불과했다.

M1의 장점인 강한 위력과 뛰어난 사거리를 그대로 살렸지만 조금 단축된 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자동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완벽히 제어하기는 힘들었다. 사실 7.62mm 나토탄 자체도 사격 시 반동이 강한 탄환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조준이 어려웠고 오히려 총의 무게와 길이만 늘어난 형국이었다. 사실 M1조차도 동시대 여타 소총과 비교하여 크고 무거운 편이었다.

전쟁에서 얻은 교훈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T20도 종전후 불어닥친 군비 감축의 여파로 1948년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2차대전 동안 생산된 어마어마한 물랴의 소총과 탄이 재고로 쌓여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총과 이에 맞는 총탄을 생산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드었다.

아직까지 M1은 쓸만했지만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근거리에서 난사하는 PPSh-41에 연사력이 뒤져 근접전에서 곤혹을 치른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특히 새로운 적인 중공군의 등장은 M1의 한계를 여실히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인해전술을 앞세워 공격해오는 엄청난 중공군을 상대하기에 M1은 역부족이었고 자동소총이 필요했다.

제개한 자동소총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후보 제품이 경합을 벌였는데, T20을 새롭게 디잔인 한 T44E4가 선정되어 1954년에 M14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미 육군의 제식 소총이 되었다. 경합 당시에 T48이라는 이름으로 출품된 FN FAL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외국산이어서 자존심이 상했고 기존에 M1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뢰감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T44가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계속되는 생명력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M14는 1959년 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가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전격 참전하면서 실전에 처음 투입되었다. 하지만 M14는 베트남의 밀림에서 AK-47로 무장한 베트민군과 교전을 벌일 때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이단 총이 너무 커서 밀림속에서 휴대와 사용이 불편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해병대의 기본 화기가 휴대가 간편한 M1 카빈 이었다는 점을 그새 망각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반자동사격을 목적으로 개발된 M1을 개량한 것이다보니 M14는 고질적인 반동문제로 원성이 자자했고 당연히 연사 시에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것은 AK-47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이런 고민을 안게 된 미군 당국에게 훨씬 작고 가벼우며 연사능력과 정확도가 뛰어난 M16 돌격소총의 등장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결국 M14는 10년만에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얻었다. 그것은 필연이었다.

M16은 5.56mm 나토탄을 사용하여 파괴력이 뒤졌지만 실전에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7.62mm 탄이 가지고 있는 굳은 믿음과 이를 사용하는 소총이라는 이류 덕분에 M14는 완전히 도태되지 않고 저격수용으로 개량된 M21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일부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신형인 M14 EBR은 신소재를 채택하여 무게를 대폭 줄이고 다양한 레일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개량되어 지정사수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존나 많은 형태

M14 ,M14 Battle rifle

초창기 나무소총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밀렸다


M14 DMR

베트남에서 밀린 소총을 존나큰 스코프를 달고나와서 DMR이 붙었다.


Mk 14 Enhanced Battle Rifle

겉면만 바뀐 M14다.


M1A

전쟁터에서만 보기 싫다고 생각했는지 민수용으로 파는모델이다


M21 Sniper Weapon System

M14 DMR과 비슷하게 저격용으로 개조된 모델이다


M39 Enhanced Marksman Rifle

또 개조버젼이다 영문 위키에 따르면 개머리판 조정가능 피카니티 레일장착 양각대 장착했다고 한다.

SRSS BullDog 762

이놈을 불펍형으로 개조한 것이다.

소녀전선

  1. 이 새끼는 다지깝치고 가져가선 오픈라이선스로 다바꿔서 총이 집단강간당하고 총 납품권은 NTR당한다. NTR전문회사
  2. 댕청의 상징 똥수저 미유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