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행정구역 주
州
천조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 쓰이는 지방행정구역단위를 한중일에선 주로 번역한다.
한중일에서도 주를 쓴적이 있다.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죄다 폐지되었다.
중국의 주
태고시대인 삼황오제때 양주(梁州, 지금의 사천지방), 옹주(雍州, 지금의 관중지방)등의 주가 언급된다.
중국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주는 주나라가 2500개의 마을을 주로 묶은것에서 시작된다.
근데 주나라는 진작에 운지하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바람에 별로 의미가없고 한나라 한무제가 대외원정이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대륙에 13개주를 설치한 것으로 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후한에서도 그대로 13주를 세웠다. 삼국시대때도 오나라가 광주, 서진이 진주를 신설하기 전까진 분열된 형주와 양주를 제외하면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서진대가 되면서 주의 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가의 난때 화북에서 수백만의 피난민이 강남으로 내려왔는데, 이들을 좁은지역에 밀집시키다보니 군단위에서 주가 난발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남양군이 있던 자리에 관중지방의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하니까 남양군일대에 양양군추가해서 옹주(雍州)가 설치되고 진강지역에 중원의 이주민 수백만이 정착하니까 진강시만한 넓이에 남연주,남예주등의 주들이 설치되었다.
북조의 경우 전체인구가 수십만이었다가 바퀴벌레급 물량을 자랑하던 짱깨들을 갑자기 통제하느라 행정력이 딸린건지 주를 엄청 난발해댄다.
때문에 수나라가 대륙을 통일한 시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대륙에는 무려 241개의 주가 설치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주가 기존의 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중국의 지방행정제도를 주현제라고 하는것.
암튼 그렇게 쭉 살아오다가 어떤이유로 부로 승격되면 그 이름그대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명대에는 그런거 없고 주이름 그대로 부로 승격되었다. (e.g 매주부(梅州府))
중화민국시기에는 주가 너무 많다고 수많은 주자돌립의 행정구역들을 현자돌림으로 격하시켰다. 이게 지금에 이른다.(e.g 울주(蔚州)가 중화민국때 울현(蔚縣)으로 강등당한게 지금까지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