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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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원나라가 고려에게서 평안도를 상납받은뒤 설치한 통치기관인데 원사 지리지에는 동녕로(東寧路)로 나온다.
1269년 최탄(崔坦)이 전교위 이연령등과 함께 지 고향인 삼화와 용강, 함종주민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고 서경유수 최년을 비롯한 서경의 높으신 고위관료들을 쳐죽이고 자비령이북 북계 54성 + 황해도에 속했던 6성을 포함해 원나라로 토끼는 씨발짓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1271년 쿠빌라이 칸은 서경을 동녕부로 개명하면서 최탄을 총관으로 삼았다. 원종이 딥빡해서 직접 대도까지 올라가서 반환을 요구했지만 쿠빌라이 칸은 쿨하게 씹었고 이후 1275년 동녕로총관부(東甯路總管府)로 올리면서 동녕로로 불리게 되었다. 이중 압록강 일대에 있던 정주[1], 의주, 인주[2], 위원진[3]은 요령성 봉성에 치소를 두었던 파사부(婆娑府)[4]에 소속시켰다.
이후에도 끊임없는 반환요청에 따라 1290년에 결국 모든 땅을 상납받는데 성공했고 동녕부는 요양근처로 옮겨지게 되었다. 참고로 요양시 태자하구에는 동녕위향(東寧衛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