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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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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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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서술하는 기업은 나라, 경제도 좀먹으면서 근로자들을 열정페이로 굴려서 갈아버린 다음 노오예로 쥐어짜면서 고객을 호갱으로 바라보는 등 온갖 만행을 일삼는 기업조무사이자 회사 시늉을 하는 범죄 조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에서 근무중 이라면 지금 당장 퇴사나 추노하십시오.
이런 유사기업들은 죽창 입니다. 어서 죽창 들어서 찔러 .

17세기 아시아 무역을 위해 서유럽 일부국가의 상인들이 설립한 합자회사를 말한다. 당시 유럽에서 대아시아무역의 대명사가 대인도무역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네이밍되었다.

東인도회사인 이유는 지리알못, 인도알못인 콜럼부스가 캐리비언 해의 카리브 군도를 인도로 착각했기 때문에 이들 섬 또한 '인도'로 명명되었기 때문으로, 당시 유럽에서 이들 섬을 유럽 서쪽에 있는 인도라고 하여 西인도라고 불렀고, 오리지널 인도는 東인도라고 불렀었다. 당시 유럽에는 서인도회사도 존재했다. 다만 동인도회사가 규모로 보나 역사적으로 남긴 족적으로 보나 더 대-단해서 동인도회사가 부각되고 있는 것 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틀:헬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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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 방이 어디 갔습니까? 거품입니다, 거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무역국가 네덜란드였지만, 당시 포르투갈까지 흡수한 초강대국 스페인 제국과 경쟁할만한 무역 네트워크를 확립하기에는 국가의 기초적인 피지컬이 스페인에 대해 절대열위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 아시아로 진출한 소규모 네덜란드 함대들이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는 비효율적인 사태가 초래되자 암스테르담에 모인 무역업자들은 이 난제를 타개하기 위한 교통정리 방편으로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합자를 통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조직하게 되는데 이가 동인도회사의 시초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 군도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후추, 육두구, 메이스 등 동방의 다양한 진귀한 향신료들이 그득한 섬이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의 중추인 자바 섬의 욕야카르타에 무역거점을 설립하고 이 무역겨점을 자신들의 선조민족의 이름을 따 바타비아(Batavia)로 명명하였는데, 이 바타비아는 거의 350년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네덜란드의 식민통치거점이 된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는데, 인도네시아 각지에 곡물을 비롯한 생산작물의 공납량을 할당하고 수확되면 싼값에 매입해서 다른 나라에 팔아먹었다. 게다가 쌀의 공급을 독점하고 현지인들에게 비싼값에 팔아서 현지인들이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말루쿠 제도에서 당시 유럽에서 수요가 많았던 정향이란 향료의 경작을 제한해서 이득을 챙긴 건 덤.

당시 동남아시아에는 포르투갈이 1빠로 들어와 있었고 이들 또한 동남아시아 곳곳에 요새와 무역거점을 설립하고 무역을 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 지역의 상권 독점을 위해 포르투갈 세력에 대해 집요한 공격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공격시도 중에서는 마카오 공습전과 같은 뼈아픈 실책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는 성공하여 포르투갈은 아시아에서 그 세력이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결국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한동안 아시아 무역의 패자로 자리잡게 된다.

영국 동인도회사

틀:헬영국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회사다.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히그 매출액이 애플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매출액 이딴걸 넘어서 얘네는 사실상 기업을 넘어선 그 무언가였다. 인도 정복과 식민화도 영국 정부보다는 동인도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캐리했다고 봐야하며 1차 아편전쟁 때 중국의 후장을 턴 함대와 군대도 대부분 동인도 회사에서 보낸 병력이다. 그러니까 일개 회사 주제에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을 발라버렸다는 것이다.

한편 네덜란드의 경쟁국인 잉글랜드 또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를 파쿠리하여 잉글랜드 동인도회사(EIC)를 설립하였다. 이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운영방식을 모방하여 동부 아시아 무역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원조 동인도회사의 막강한 저력 때문에 Me-too전략은 먹히지 않았고 결국 인도의 동쪽에 있는 아시아 지역들에서부터 완전철수하는 대신 B플랜으로 인도에 집중하게 된다.

잉글랜드 동인도회사는 1606년에 허킨슨 대위를 인도에 사절로 파견하였다. 허킨슨은 인도로 향하던 도중 포르투갈 해적을 만나서 배와 선원을 모조리 잃고 구사일생으로 인도에 도착하여 무굴 제국의 황제를 접견하는데 성공한다.

무굴 제국 황제는 이방에서 온 코쟁이 영국놈이 말하는 무역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대신 이 백형을 연회의 흥을 돋구는 게스트로 받아들여 허킨슨 대위는 무굴 제국 황제와 술친구가 되었다. 결국 황제의 허가를 받아낸 허킨슨에 의해 잉글랜드와 인도 간 정식무역관계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등의 집중 겐세이를 받았으나 꾸준히 그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18세기부터 무굴제국 상태가 맛이 가버려서 광활한 국토를 거진 잃고 소규모 국가로 전락해 버리자 인도는 다시 하나의 제국 대신 여러 왕국이 통치하는 지역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시발점이 된 곳은 벵골 왕국이었다. 벵골은 갠지스 강 하류에 위치한 지역으로 당시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요 무역거래처였다. 동인도회사는 벵골의 수도인 콜카타에 성채를 건설한 바 있는데, 새로이 벵골의 왕이 된 시라지는 동인도회사가 자신의 허락없이 성채를 건설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호구잡을 절호의 찬스를 얻은 동인도회사는 역강간을 시도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시라지를 폐위시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새로 벵골의 왕으로 임명하는데, 이가 바로 플라시 전투로 현대 인도인들에게 영국의 인도침략 제1라운드로 기억되고 있다.

벵골을 정복한 동인도회사는 당시 전국(戰國)상태에 있던 인도 영주들에게 보호를 제안하며 그들에게 접근하는 한편, 이를 이용하여 영역확장을 지속해 나갔다. 보호란 인도의 각 지방 왕국들에게 영국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대신, 그 지방 왕국의 외교권과 군사권의 대행권을 얻고 보호비를 삥뜯는 방식이다. 이는 매우 불합리한 제안으로 보이지만, 당시 인도 왕들에게 있어서는 영국보다는 당장 옆나라 왕국과의 치열한 경쟁이 더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인도의 왕국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보호'를 받았고, 동인도회사는 자사의 세력을 확장하면서도 보호비를 뜯어내 회사의 손실보전을 하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그러나 인도 세력들이 거진 정리되고 보호비를 뜯을 대상이 없어지자 동인도회사는 파산압력을 받을 규모의 막대한 손실에 처하게 된다. 동인도회사는 인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손실을 메꾸기 위해 아시아의 다른 거대시장인 중국 시장에 접근하였으나 중국인들은 영국 상인들이 들고 온 상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상품들이 팔리지 않자, 영국 동인도회사는 중국시장에서의 부진 타개책으로 아편이라는 중독성 물질을 사업 아이템으로 밀기 시작하였고, 이는 중국 시장에서 대히트를 쳤다. 그러나 중국 국내의 은이 대규모로 유출되는 것과 일해야 할 노오오오예들이 일은 안하고 아편이나 빨고 앉아있는걸 문제시한 청나라 정부가 아편을 금수하자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그랬던것처럼 또다시 호구를 잡아보고자 영국 의회에 로비를 하여 대중국 선전포고권을 얻어내 청나라를 두번이나 줘팸하고 아편수출 권리를 청나라로부터 얻어낸다.

그러나 동인도회사의 속셈과는 달리 호구는 잘 잡혀지지 않았는데, 청나라에서 아편이 합법화되자 중국 국내의 아편생산이 급증한 것은 물론 인도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의 아편 수입도 전례없이 활발하게 늘어나 중국 아편시장에서 동인도회사의 입지는 되려 축소되었다. 결국 동인도회사는 자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1870년에 파산하였으며, 동인도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인도 및 기타 식민지를 포함한)은 영국 본국 소유로 넘어가게 된다.